희년에 떠나는 로마 IV
로마 7대 성당, 성 바오로 대성당 I
김세웅 디오니시오 | 이탈리아 공인 가이드, 쥬빌레오 로마, 저자

"나는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총에 따라 지혜로운 건축가로서 기초를 놓았고, 그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1코린 3,10-11)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출발하여 테베레강을 따라 오스티엔세 가도(오스티아 항구로 가는 길)를 걷다 보면 바오로 사도의 무덤 위에 세워진 성 바오로 대성당을 만나게 됩니다. 하느님 섭리의 표징인 도시 로마는 높낮이가 다른 두 개의 중심축이 있는데, 하나는 언덕 위의 성 베드로 대성당이고 다른 하나는 강변의 성 바오로 대성당입니다. 교회의 두 기둥인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의 행적과 순교로 인하여 로마는 새로운 예 루살렘이 되었고, 사도의 무덤을 방문하여 전구를 청할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이 도시를 방문하는 순례자들은 성 베드로 대성당의 다음가는 크기를 지닌, 또 하나의 '교황의 바실리카'를 찾아 길을 떠납니다.
https://maps.app.goo.gl/ugSJEeEkHm9r8KUt8
성 밖 성 바오로 대성전 · Rome, Metropolitan City of Rome Capital
www.google.com
사도행전에 따르면 성 바오로는 네로 황제(54-68년 재위)에게 상소하여 60년 경 몰타섬과 시칠리아섬을 거쳐 로마에 도착하였고, 군사 한 명의 감시 속에서 가택 연금 상태로 지내며 비교적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64년경 박해가 일어나 사도는 로마 시민권을 소유한 자들을 처형하는 참수터에서 순교하였고 루차나의 공동묘지에 묻혔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 324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첫 번째 성당이 세워졌고, 390년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 크게 증축된 두 번째 성당이 세워지며 이후 약 1500년 동안 완벽하게 보존됐습니다. 8세기부터는 베네딕토회 수도자들에 의해 수도원으로 사용되면서 기도와 영성의 중심지로도 자리매김한 성 바오로 대성당은 안타깝게도 1823년 화재가 발생하여 대부분 소실되었고, 이후 오랜 재건 작업을 거쳐 1854년 12월 10일 비오 9세 교황에 의해 세 번째 성당이 축성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바오로는 처음으로 그리스도교 신학의 체계를 세웠으며, 그리스도교의 보편성을 확립하여 이방인 선교를 위해 셀 수 없이 많은 위협에 자신을 내던진 최초의 선교사였습니다. 사도에게 그 기초는 의심할 여지 없이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만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사도 9,4)
바오로가 주님과 처음으로 만난 그 곳은 성벽 밖이었습니다. 자신이 박해하던 대상인 예수가 곧 자신이 그토록 기다리던 주님이심을 확인한 그는 새로운 사도가 되었고, 순교로써 생명을 바치기까지 주님을 증거하였습니다. 그의 무덤 역시 성벽 밖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순례자들에게 사도의 생애를 깊이 묵상하게 해 줍니다.


네 면이 모두 회색빛의 단일체 화강암 기둥들로 둘러싸인 사각 회 랑(回廊, quadripòrtico)의 한 가운데에는 오비치(1807-1878)가 카라 라 산 대리석으로 조각한 성 바오로 상이 있습니다. 칼자루를 쥔 오른 손을 가슴에 댄 채 칼날은 하늘을 향하고 있는데, 그분의 순교와 함께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에페 6,17)라는 말씀을 상기시킵니다. 한편, 왼손에 들고 있는 책과 머리에 쓰고 있는 베일은 새로운 모세로서 그리스도의 새로운 계약을 선포하 기 위해 성령의 시대에 등장하는 바오로를 상징합니다.
"산에서 내려올 때 모세의 손에는 증언판 두 개가 들려 있었다. 모세 는 주님과 함께 이야기하러 들어갈 때까지는, 자기 얼굴을 다시 너울 로 가리곤 하였다." (탈출 34,29.35)
고개는 땅을 향해 떨구어져 있고 눈은 거의 감고 있는 바오로 상 뒤로 서쪽을 향하는 정면부(facciata) 의 모자이크가 태양 빛을 가득히 머금습니다. 이처럼 바오로 대성당은 작은 조각(tessera)들로 이루어진 모자이크 작품들로 장식되어 있는데, 테쎄라들은 손상되지 아니하고 다른 작품을 창조하기 위해 다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마치 모자이크 조각들이 와장창 떨어지듯이,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넘어진 사울을 주님께서는 "다른 민족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사도 9,15)으로 새로이 창조하십니다. 이제 바오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작품입니다.
"사실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이며 죽는 것이 이득입니다." (필리 1,21)



정면부를 바라보며 꼭대기에는 '유일한 희망(spes unica)'이라고 쓰인 십자가가 세워져 있고, 그 아래 삼각형 공간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의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하단에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 앉아 계신 바위로부터 네 줄기의 강물이 흘러나옵니다.

"강 하나가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그곳에서 갈라져 네 줄기를 이루었다." (창세 2,10)
다시 하단에는 창문 사이사이마다 왼쪽부터 이사야, 예레미아, 에제키엘, 다니엘 순으로 4대 예언자들이 각자 자신의 예언이 적혀 있는 두루마리를 든 채로 서 있습니다.

사각 회랑의 네 모퉁이 중에서 한쪽에만 사도행전의 저자로 알려진, 바오로 사도와 동행한 루카 복음사가만이 조각되어 있고 나머지 세 자리는 비어 있어 "루카만 나와 함께 있습니다."(2티모 4,11)라는 말씀이 메아리치는 듯합니다.


다음주에 성 바오로 대성당 2편이 이어집니다.
천주교인천교구
DIOCESE OF INCHEON
+더 보기>
St. Paul Outside the Walls Tour
https://youtu.be/EPwTwa34qKA?si=uTLEo-gOS7XOxy43
성 바울 대성당 이름 앞에 "성 밖의 성"이라는 이름은 로마 도시 성곽 바깥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 더 읽기> 바실리카 양식
신양란, <여행자의 성당공부>에서는 바실리카 양식으로 첫 장을 열면서 성바울 대성당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성당 건축 양식 중, 가장 이른 시기에 나타난 것이 바실리카 양식입니다.
바실리카basilica란 원래 로마 공화정 시대에 재판소나 집회장, 시장, 관 공서 등으로 사용하던 대규모 공공시설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그런 건물들은 대개 중앙의 넓은 복도를 줄지어 늘어선 기둥들이 둘러싼 구조 였지요. 바실리카는 다수의 사람들이 이용하는 큰 규모의 공공 건축물로, 천장을 높게 해서 창문을 달았고, 한쪽 끝 혹은 양쪽 끝에는 집정관이나 재판관이 앉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바실리카란 단어는 세월이 흐르면서 건물의 용도(공공시설)보다는 건물 의 형태(얼주가 늘어선 직사각형 구조)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문명을 폭넓게 받아들인 로마는 그리스 신전 양식을 받아들 여 건물을 지으면서, 그리스 신전 모양의 직사각형 건물을 바실리카라고 부른 것입니다.
이러한 바실리카는 훗날 그리스도교 시설로 사용됩니다. 콘스탄티누스 1세가 밀라노 칙령을 반포하여 그리스도교를 공인함으로써 종교의 자 유를 얻게 된 그리스도교도들은 공개적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지 만, 그들에게는 함께 모일 만한 마땅한 장소가 없었습니다. 그전까지는 박 해를 피해 소규모로 예배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할 수 없이 기존에 있던 건물을 예배 장소로 이용하는 방법을 모색했는 데, 가장 안성맞춤인 것이 바실리카였습니다. 왜냐하면 바실리카는 많은 신자들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규모가 컸고, 건물 안쪽에 위치한 집정관이 나 재판관의 자리는 중앙 제단이 놓이는 애프스apse 역할을 할 수 있었으 며, 열주들로 분리된 공간의 중앙부(신랑)와 그 양쪽의 공간(측량)에는 신 도들이 앉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기존의 바실리카를 예배 공간으로 사용하다 보니 이후에 짓는 성당 건물들도 자연스럽게 바실리카의 구조를 닮게 되었고, 그런 건축 양 식을 바실리카 양식이라고 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1세의 명으로 짓기 시 작한 옛 성 베드로 대성당'이 바실리카 양식의 건물이었습니다.
바실리카 양식은 가장 오래된 건축 양식이기 때문인지, 현재는 성당 전 체가 바실리카 양식으로 되어 있기보다는 신랑 쪽에서 바실리카 양식의 특징을 찾아볼 수 있는 경우가 더 많은 듯합니다. 바실리카 양식으로 지 어진 오래된 성당이 세월이 지나면서 증개축되는 과정에서 다른 양식이 가미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바실리카 양식은 뒤에 나타나는 로마네스크 양식이나 고딕 양식에 영 향을 미쳤습니다. 로마네스크 양식은 줄지어 선 기둥과 기둥 사이를 로마 식 둥근 아치로 연결하였고, 고딕 양식은 끝이 뾰족한 첨두아치로 연결 한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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