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친구들과 가보정으로 초대받아 수원갈비로 배불리고, 수원화성과 행궁을 산책한 다음, 마지막으로 가톨릭교화 '수원성지, 북수동성당'을 찾았다.
우리를 초대하고 길을 안내한 친구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 친구에게 감사와 축복의 기도를 드린다.
■수원성지와 북수동성당
1897년 알릭스 신부가 팔부자거리*의 집을 구입하고 신앙예비자들을 위한 교육장소로 삼았다. 수원 북수동성당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북수동성당은 지금도 조선시대에 팔부자집이 있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성당 출입문 위로 '천주교 수원 순교성지'과 적힌 글씨가 눈길을 끈다. 너른 성당은 옛 토포청* 터도 포함하고 있는데, 1801년 신유박해 등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가 대대적으로 시행되었을 때 체포되어 온 천주교인들이 심문을 당하고 온갖 고문 끝에 순교를 당한 곳이 바로 이 곳이었다.
지방의 치안담당 관청인 토포청(討捕廳)은 '죄인을 잡아가두는 곳'이었다. 수원유수부의 치안을 담당하던 화성 안의 토포청은 화성행궁에서 동쪽으로 멀리 떨어진 종각이 세워져 있는 십자로(종로사거리)의 종로교회와 후생병원에서부터 북쪽으로 북수동성당과 수녀원, 최근 수원성지에서 법원경매로 매입한 4층 순례의 집 건물 터에 이르는 약 천여 평의 넓은 면적이었다.
정조대왕이 죽은 이후 4대박해를 거치면서 한강이남에서부터 경기도와 충청도에 이르는 수원유수부 관할지역에서 체포된 천주교인들이 수원화성 안으로 압송되면 우선 토포청에 수감됐다.
그 가운데 양반 천주교인은 수원유수부사가 집무를 보던 화성행궁에서, 일반 천민 천주교인들은 판관이 집무를 보던 두번째 관아인 이아(貳衙, 화청관)에서 따로 심문을 받았다. 그리고 심문 후에는 형옥에 수감되거나 토포청에서 처형됐다.
그 당시 토포청 내에 미루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었다고 한다. 1970년대 만해도 종로교회 마당에 미루나무 고목 세 그루가 자라고 있었는데 그 후 주차문제로 베어버렸다는 말이 전해지며, 지금은 소음과 공해에 약한 미루나무를 도시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게 됐다. 미루나무는 키가 무척 높게 자라는 나무인데, 미루나무 꼭대기에 천주교인들을 목을 밧줄로 매달아 교수형에 처해, 멀리서도 바라볼 수 있게 하였다고 한다. 토포청 곁을 지나던 사람들은 미루나무에 매달린 천주교인들의 시신을 보며 너무도 끔찍해 치를 떨었다고 하며 따라서 수원화성에는 오늘날까지도 “무당짓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천주학쟁이만은 되지 말라”는 말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즉, ‘천주교를 믿느니 차라리 무당이 되는 편이 낫다’라는 말이었다. 수원화성 안에는 박해시대뿐만 아니라 지금도 전국에서 가장 많은 무당들이 살고 있다.(나경환 신부)
이 북수동성당이 수원화성행궁 앞에 있는 '천주교 수원성지'이다.
수원성지 본당 (옛 포도청 자리)
이곳은 정조대왕 사후 천주교 대박해가 시작되면서 수원화성으로 체포되어 온 천주교인들이 이곳에서 심문을 당하고, 백지사형(물먹인 화선지로 얼굴에 여러 겹 붙여 질식시킴), 교수형, 물고형(物故, 고문ㆍ형벌 등으로 옥사)으로 순교한 곳이며, 수원화성 천주교 순교지의 중심지인 성지본당이다.
2011. 09. 20
천주교 수원성지 (입구 안내문에서)
[네이버지도]
천주교 수원성지
경기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42
https://naver.me/F7Ik6nd4
네이버지도
천주교 수원성지
map.naver.com
*팔부자집의 특징 (구글 AI)
▪︎역사적 유래: 정조대왕이 화성 축조 당시 전국 8도에서 부자들이 모여 살도록 조성한 '팔부자 거리'의 일부였다.
▪︎현재 위치: 수원시 행궁동(구 북수동)에 위치하며, 북수동 성당 주변에 문구점들이 모여 있다.
▪︎주요 업종: 과거에는 다양한 문구와 장난감을 취급하는 문구점들이 많았으나, 현재는 그 수가 줄어들었다.
* 토포청(討捕廳)과 포도청(捕盜廳)
포도청(捕盜廳)은 조선 시대 한성부(서울)의 치안을 담당하던 관청이었으며, 토포청(討捕廳)은 지방의 치안을 담당하던 관청이었다. 두 기관은 역할은 같았으나 관할 구역에 차이가 있었다.



천주교 박해기간 때 수원에서의 박해는 특히 혹독했는데 수원성지(수원화성)의 중심에 위치한 북수동성당 일대는 순교자들의 형이 집행되었던 토포청(중영)과 심문을 하던 이아(화청관)이 있던 자리였다. 이로 인해 북수동성당은 악의 무리를 물리칠 수 있도록 주보성인을 ‘성 미카엘 대천사*’로 정했다.











지하.

■ 순교성인 유해성광
대성전 지하에는 순교 성인들의 유해가 성광안에 안치되어 있다.
성광(聖光, 라틴어: Ostensorium)은 천주교에서 성시간, 성체 강복, 성체 거동 때 성체 현시에 사용되는 전례 용구이다


*유해 성광(Reliquary Monstrance)은 성인들의 유해(성유물)를 모시기 위해 사용된다.

성 나모방 베드로 신부는 프랑스인 선교사로, 서양인 최초로 조선에 입국하여 순교한 성인이다. 그는 한국교회의 초기 신앙 공동체 형성에 힘썼고, 조선의 신학생 양성을 위해 노력했으며, 조선교구의 초기 신앙 공동체에 책임을 지고 복음을 전파했다.
앵베르 주교의 권고로 성 샤스탕 신부와 함께 자수했으며, 1839년 1월에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한국 이름은 나 백다록(羅伯多祿)이며, 순교 후에는 노고산과 삼성산 성지에 잠시 안치되었다가 명동성당으로 옮겨졌다.

성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의 유해함이다. 유해함 안에는 성인의 머리카락이 보관되어 있다.
성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은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순교한 한국의 천주교 순교자 중 한 분이다.
https://maria.catholic.or.kr/sa_ho/list/view.asp?menugubun=saint&ctxtSaintID=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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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는 신자들에게 중요한 신앙의 상징물로 여겨지며, 공경의 대상이 된다.




■십자가의 길 기도처
: 뽈리 신부가 1932년 건립한 고딕식 성당이었던 곳의 뒤편에 있다.

■소화학당(뽈리화랑)
일제 강점기에 심 뽈리 신부가 건립한 수원 최초의 고딕식성당인 옛 수원성당 복원과 함께 수원 최초의 사립 초등학교 자리인 뽈리화랑을 등록문화재로 등재하여 교육,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파란 눈의 애국지사, 뽈리 신부
1931년 5월, 대전에 있던 데시데라도 뽈리(Desideratus Polly) 신부가 북수동본당의 제 4대 주임으로 부임했다. 부임 이듬해에 어머니가 주신 돈으로 수원 최초의 고딕성당인 수원성당을 건립했고, 이로 인해 발전을 거듭해 부임 당시 60명이던 신자 수는 그가 떠날 때 3,000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특히 일제강점기 동안 성당 안에 '소화강습소'를 설립해 일본 순사들의 눈을 피해가며 한글과 조선의 역사를 가르치면서 독립운동과 신문화 개혁운동을 펼쳐나갔다. 일본 순사들이 수시로 찾아와 한글사용 금지를 강요했지만 굴복하지 않았으며, 꿋꿋하게 한글로 된 교리서로 신자들을 가르쳤다. 그는 17년 동안 북수동성당에 머무르다 해방 후인 1948년, 천안성당으로 부임했다. 얼마 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양떼를 두고 혼자만 피난을 갈 수는 없다며 성당을 지켰고, 결국 인민군에게 붙잡혀 대전에서 중살형으로 순교했다.
ㅡㅡㅡㅡㅡ
(좌대 뒷면, 신부님의 약력)
약력
1884년 프랑스 남부 비비에 교구 출생
1907년 파리외방선교회 사제 서품
1931년 5월 수원성당 제4대 주임신부 부임
1931년 명도회 조직
1932년 수원 최초의 고딕식 수원성당 건립
1934년 수원 최초의 사립 소화학당 설립
(2017년 등록문화재 제697호 등재)
1948년 8월 천안성당 주임신부 부임
1950년 8월 천안성당에서 인민군에게 피납
1950년 9월 대전에서 총살형 순교
2015년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
천주교 수원교구 수원성지

■로사리오의 길 마당
: 수원교구 순교자 2천 명을 기념하여 조성되었으며, 다산 정약용이 설계한 봉화대 모양을 띠고 있다.
성모님과 순교자들을 상징하는 야생화와 야생초들이 심어져 있고 순교자들이 교수형을 당했던 토포청의 미루나무는 세월이 지나면서 베어지고 없다.

■순교자 현양비
: 12사도와 조선시대 신유박해 등의 순교자들을 상징하며, 오랜 인고(忍苦)의 시간을 견디어 낸 후에 무거운 열차와 철도를 받쳐낼 수 있는 12개의 철도 침목으로 수원화성의 치성(雉城) 구조처럼 'ㄷ'자 형태로 성모자상을 보호하듯 배치되어 있다. 그 앞에서 고개숙여 나는 치성(致誠)의 기도를 드린다.



수원성지 본당은 주보 성인으로 미카엘 대천사를 모셨다. 성전 지붕 맨 꼭대기에 십자가가 있고 바로 아래에 미카엘 대천사가 창칼을 들고 성전입구를 지키고 있다.
성전 지하에 성체조배실이 있다. 좌우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에 가브리엘 대천사와 라파엘 대천사* 유리성화가 있었다. 마치 부처님을 지키는 금강역사를 연상시킨다.


구글에서 '3대 천사'를 검색하니
AI 가 대답했다.
"대천사 세 분은 일반적으로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을 말하며, 이들은 가톨릭 교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공경하는 대천사입니다. 미카엘은 '누가 하느님과 같으랴?'라는 뜻으로, 하느님의 권능을 나타내며 사탄에 맞서는 존재로 알려져 있고,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사자이며, 라파엘은 토비트서에 등장하며 인간을 보호하고 돕는 역할을 합니다.
-미카엘 (Michael)
'누가 하느님과 같으랴?'라는 뜻을 가졌으며, 하느님께 충성하고 하느님의 권능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대천사입니다.
천국에서 사탄과 맞서 싸운 것으로 알려져 있어 사탄의 대적자(호적수)로도 여겨집니다.
-가브리엘 (Gabriel)
하느님의 뜻을 인간에게 전달하는 사명을 맡고 있습니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서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는 역할을 합니다.
-라파엘 (Raphael)
주로 인간을 보호하고 돕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구약성경의 토비트서에 주로 등장하며, 가톨릭 교회에서는 미카엘, 가브리엘과 함께 중요한 대천사로 공경합니다. "

* 중영(中營)과 토포청(討捕廳)

중영(中營)은 화성행궁(華城行宮)을 호위하고 화성을 호위하는 장용영외영(壯勇營外營) 군대의 사령부라 할 수 있으며 총책임자는 정3품에 해당하는 “중군”이라는 직책으로 화성유수로 화성행궁에서 근무한다. 수원지역은 중앙오군영의 하나인 총융청(摠戎廳)의 중영(中營)이 설치돼 이 지역을 방어 하도록 했으며 정조는 1793년 1월 수원도호부를 화성유수부로 승격시키면서 이 총융청의 중영을 그대로 장용영외영으로 전환시켜 새로운 화성 방어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중영은 토포청(討捕廳:포도청과 같이 치안을 맡던 곳으로 이곳에서 천주교 신자들을 체포하고 수색하던 곳)이 있던 곳이며 신유박해(辛酉迫害)시절 천주교인을 교수형(絞首刑)과 백지사형(白紙死刑:얼굴을 하늘로 향하게 한후 창호지를 여러 장 겹친후 물을 적셔 얼굴을 덮어 질식사시키는 것, 일명 도모지사형(途毛紙死刑)이라고 함)을 집행하던 장소이다. 중영(中營)의 자리는 현재 수원시의 중심부인 팔달구 종로사거리의 북수동성당 담에서 종로감리교회와 후생내과병원 자리이다.
*돌형구 - 대구 관덕정
병인박해(1866)때 천주교인을 학살하기 위하여, 흥선대원군이 '소리없이 죽이는 기계'를 만들도록 명을 내림으로써 등장한 돌혈구로 전해지고 있다. 명칭은 곳에 따라 황새바위 또는 돌형구 돌교수대 등으로 불리고 있다.
사용방법은 목에 밧줄을 걸고 돌구멍에 찢어, 잡아당겨 죽였다고 전한다.
이것은 1983년 동아쇼핑센터(옛 관덕정 자리)를 신축할때 발견된 것이며, 金在元씨가 기증한 것이다.

대구 골목투어 - 5코스 > 남산100년 향수길(가톨릭의 길)에서. https://munchon.tistory.com/m/643
대구 골목투어 - 5코스 > 남산100년 향수길(가톨릭의 길)
대구 근대 골목투어 5코스 : 가톨릭 & 남산 100년 향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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