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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유산의 길

국중박, 겸재 정선의 우리 강산

by 문촌수기 2026. 4. 8.

2026년 탄신 350주년을 맞은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걸작을 만나는 ‘겸재 정선: 아! 우리 강산이여!’ 전시가 국립중앙박물관 서화실에서 열렸다.
같이 근무하며 같이 공부하며 같은 여행길을 걸으며 도반이라 여겼던 친구들과 함께, 국중박을 찾고 '사유의 방'에 이어 '겸재 정선'을 찾았다.
초기작 ‘신묘년풍악도첩’부터 말년의 ‘인왕제색도’까지, 우리 산천을 독창적 화풍으로 담아낸 정선의 예술 세계를 다시 만났다.

겸재 정선
2026.2.26.~4.26.
겸재 정선, 아! 우리 강산이여!

아름답기로 유명한 우리나라의 산수는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한국 회화사를 대표하는 겸재 정선(1676-1759)은 우리 강산을 누구보다 사랑하여 이 땅의 풍경을 가장 열성적으로 담아낸 화가였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겸재 정선 탄생 350주년을 맞아 우리 강산의 아름다움을 독창적인 화풍으로 담아낸 그의 대표작을 선보입니다.

겸재 정선은 일생 동안 붓을 놓지 않고 전국을 두루 여행하며 아름다운 풍경을 그렸습니다. 그는 경치를 눈에 보이는 대로 옮기는 데 머물지 않고, 개성 넘치는 해석과 필법을 더해 이 땅의 진면목을 담은 '진경산수'를 완성했습니다. 정선의 진경산수화는 우리나라 산수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동시대와 후대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의 기념비적 초년작인 <신묘년풍악도첩>과 노년의 명작인 <박연폭포> 등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정선의 작품들은 깊은 울림을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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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내산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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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도시품첩司空圖詩品帖》중 <유동流動>

그림 정선(1676-1759)
| 글씨 이광사李匡師(1705-1777)
조선朝鮮 그림 1749년, 글씨 1751년
그림 비단에 먹과 엷은 색絹本淡彩
| 글 종이에 먹紙本墨書

<사공도시품첩>은 당唐 말의 시인인 사공도司空圖(837-908)가 지은 「시품詩品」이라는 글을 주제로 정선이 그림을 그리고 이광사가 원문을 필사한 서화첩이다. 「시품」은 시를 쓸 때 갖춰야 할 품격을 24가지로 요약한 글이다. 정선은 각 시품의 구체적인 장면이나 경물을 등장시키는 방식으로 추상적인 내용을 표현하였다. 이 그림은 사공도가 정리한 시품 중 '유동流動(거침없이 흘러감)'을 그린 것이다. 정선이 74세 되던 해에 그린 작품으로 문학에 심취했던 말년의 폭넓은 작품 세계를 보여 준다.

유동流動

(오른쪽 면)
필세는 짙으면서도 살찌지 아니하였고
筆勢濃而不肥
구도가 정리되어 잡스럽지 아니하네.
位置整而不雜
뜻이 깊고 교묘하게 꾸미지 아니하니
用意深而不巧
이 그림은 마땅히 전체 그림에서 제일간다고 하겠다.
此幅當屬第一

기사년(1749) 오월 하순 74세옹 겸재.
己巳午月下浣七十四歲翁謙齋

(왼쪽 면)
유동
물 퍼 올리는 물수레 같기도 하고
구르는 둥근 구슬 같기도 하다.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으랴.
그래서 형체를 빌려 어리석은 이들에게 남겨 둔다.
지축地軸은 황막하고
천기天機는 아득하도다.
그 단서만 찾으면
그 부합됨은 같을 것이로다.
신명神明은 초연하여
어두운 무無의 세계로 돌아가는구나.
천년을 왕래한다니
이를 두고 이르는 것인가?
流動
若納水轄
如轉丸珠
夫豈可道
假體遺愚
荒荒坤軸
悠悠天機
載要其端
載同其符
超超神明
返返冥無
來往千載
是之謂乎
신미년(1751) 윤5월 사공도 24시품을
번천樊川 견일정見一亭에서 썼다.
辛未閏夏書司空表聖詩評二十四則于樊川見一亭上
원교圓嶠(이광사의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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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석이 정선의 《구학첩>에 붙인 글
丘壑帖跋  
조영석(1686-1761)
조선1731 | 종이에 먹 | 개인소장

《구학첨丘壑帖》은 정선이 경상도 하양현감河陽縣監으로 재직하던 시기에 영남 지역과 청풍, 제천, 단양, 영춘 등 네 지역의 풍광을 그린 화첩이다. 현재 3점의 그림과 관아재 조영석이 쓴 발문跋文이 전한다. 정선의 예술적 동반자였던 조영석은 발문에서 조선 300년 이래의 대가로 조선적인 산수화는 정선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높이 평가하였다.

…원백(정선)은 일찍이 백악산白岳山 아래 살면서 그림을 그릴 뜻이 서면 앞산을 마주하고 그렸다. 산의 주름을 그리고 먹을 구사함에 저절로 깨침이 있었다. 그리고 금강산 안팎을 두루 드나들고 영남을 편력하면서 여러 경승지에 올라가 유람하여 그 물과 산의 형태를 다 알았다. 또한 그가 작품에 얼마나 공력을 다했나 보면, 다 쓴 붓을 땅에 묻으면 무덤이 될 정도였다. 이리하여 스스로 새로운 화법畫法을 창출하여 우리나라 산수화가들이 한결같은 방식으로 그리는 병폐와 누습을 씻어버리니, 우리 동방의 산수화는 원백으로부터 비로소 새롭게 열렸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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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암도

우뚝 선 바위 | 立巖圖
전傳 정선(1676-1759)
조선 18세기 | 종이에 먹

1733년(영조 9) 정선이 경상도 청하清河(현재의 포항시) 현감으로 부임한 뒤 인근 경관을 그린 작품으로 여겨진다. 반변천과 청기천이 만나는 지점에 솟은 선바위를 화면 중심에 세웠는데, 마름모꼴로 쌓은 듯한 선바위와 병풍처럼 늘어선 산세는 수직준으로 표현해 강한 상승감을 만들었다. 바위 앞 물결은 엷은 먹으로 S자 선을 반복해 소용돌이치는 흐름을 나타냈다. 강 건너편 바위 위에는 경치를 바라보는 선비들이 그려져 있으며, 선바위는 이들의 시선을 따라 묘사되어 그 높이를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

屹立風濤百太奇(흘입풍도백태의)
바람 파도 속 우뚝 솟은 백 장 높이 기이한데,
堂堂柱石見於斯(당당주석견어사)
당당한 돌기둥 바로 이곳에서 보네.
今時若有憂天者(금시약유우천자)
지금 만약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는 이 있다면,
早晩扶傾舍爾誰(조만부경사이수)
조만간에 떠받칠 이
너 아니면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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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해인사 海印寺
정선鄭敾(1676-1759)
조선 18세기 | 종이에 먹과 엷은 색

해인사는 경상남도 합천 가야산 자락에 있으며, 팔만대장경을 보관해 온 명찰이다. 해인사의 풍경은 정선이 1721년부터 1726년 사이 하양현감 시절에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부채 양끝에 가야산 능선을, 그 사이 해인사를 배치하고 화면 뒤로 둥근 산을 부드럽게 둘렀다. 사찰 입구의 홍하문紅霞門부터 맨 위 대장경이 보관된 장경판전까지 계단식 가람 배치를 효과적으로 묘사했다. 짙은 먹을 묻힌 붓을 가로로 뉘어 찍은 점으로 산세를 표현하고, 군데군데 노란색과 붉은색으로 나뭇잎을 칠해 가을 정취를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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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폭포

박연폭포 | 朴淵瀑布
정선(1676-1759)
조선 18세기 | 종이에 먹
개인소장

개성의 박연폭포를 그렸다. 조선시대 문인들은 박연폭포를 중국 여산폭포에 비견할 만큼 뛰어난 명승으로 여겼다.
정선은 폭포의 장엄한 인상을 극대화하기 위해 대상을 과장해 표현하고, 폭포수는 실제보다 길게 확대하여 그렸다. 양쪽 벼랑은 짙은 먹으로 겹겹이 쌓아 흰 물줄기가 더욱 도드라지도록 했다. 화면 아래에는 범사정泛楼亭 곁에서 폭포를 감상하는 선비를 배치해 현장감을 더했다.

박연폭포는 개성 대흥산성 밖에 위치한 폭포이다. 폭포 아래에는 돌항아리처럼 생긴 연못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박진사라는 인물이 이 연못 위에서 대금大笒을 불자 그 소리에 감동한 용녀龍女가 그를 물속으로 데려가 남편으로 삼았다고 하여 폭포의 이름이 '박연'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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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폭포는 개성시 북부 박연리에 있는 폭포이다. 폭포의 높이 37m, 너비 1.5m로, 우리나라 3대 폭포의 하나이다. 성거산과 천마산 사이의 골짜기로 흘러내린 물이 박연에 모였다가 떨어지는 폭포이다. 옛날에 박진사(朴進士)가 놀러왔다가 폭포 아래 사는 용녀(龍女)에게 홀려 백년가약을 맺었는데, 아들이 떨어져 죽었다고 생각한 진사의 어머니가 떨어져 죽어서 박씨의 성을 따서 이름을 지었다는 설과 바가지와 같이 생긴 담소에서 떨어지는 폭포라고 하여 이름을 붙였다는 설이 있다. 일찍이 서경덕, 황진이와 더불어 송도삼절(松都三絶)로 알려져 왔다.

▲ 북한의 대표적 명승지 중 하나인 '박연폭포'. 왼쪽 사람들이 있는 바위가 '용바위'로 황진이가 이백의 시를 새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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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연못은 들끓고 윗 연못은 조용한데 겹겹으로 가파른 절벽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네 힘센 나라에 천년 동안 군사와 말이 내달리는 듯 위태로운 성곽의 한쪽에서 바람과 천둥이 다투는 듯 예로부터 여산의 경치에 필적하다 말해 왔는데 하늘이 베푼 삼협의 풍경은 누가 논할 것인가 나라가 위급한 때 정녕 천길 폭포 있으니 요새가 되어 서쪽 고을을 방비할 수 있으리

이병연(1671-1751), 「박연폭포朴淵瀑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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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연명의 '유유히 남산을 바라보네(悠然見南山)' 부채그림

도연명의 「음주」 중 '유유히 남산을 바라보네' 悠然見南山圖
정선(1676-1759)
조선朝鮮 18세기 | 종이에 먹紙本水墨

정선은 옛 시를 소재로 한 그림도 많이 남겼다. 그중 도연명陶淵明 (365-427)이 관직에서 물러나 몸소 농사지으며 은일하는 삶을 노래한 「귀거래사歸去來辭」와 「음주飲酒」의 시구를 그림의 소재로 자주 선택하였다. 이 작품은 '음주의 한 구절인 '동쪽 울타리 아래 국화를 꺾어 유유히 남산을 바라보네
(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국화를 든 채로 소나무를 등지고 암벽 위에 앉아 남산을 바라보는 인물이 그려져 있다. 시동으로 보이는 아이는 술잔을 건네기 위해 언덕으로 올라오고 있다. 화면 왼쪽에 있는 초가와 열린 사립문은 도연명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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夏景山水圖

여름 산수 夏景山水圖
정선(1676-1759)
조선朝鮮 18세기 전
비단에 먹과 엷은 색絹本淡彩

깊은 먹빛으로 무성한 여름 숲의 촉촉한 공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한 대작 산수화이다. 정선은 이 그림에서 자신이 가장 능숙한 기법들을 유감없이 펼쳐 보였다. 가늘고 구불구불한 선의 피마준披麻皴과 붓을 가로로 눕혀 찍은 미점米點, 먹을 대담하게 쓸어내리는 쇄찰법刷擦法을 적절하게 구사했다. 그림 위쪽에는 서화 품평을 잘했던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이 정선이 세상을 떠나고 14년 뒤 글을 남기며 "뜻을 충분히 펼친 걸작[得意作]"이라 평가했다. 기존의 여러 화법을 온전히 자기화한 50대 이후의 대표작이다.

제화시, 해석
圖中山石蒼奇 幽泉滴瀝
그림 속에는 산과 돌이 푸르고 기이하고
그윽한 샘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데,

高柳叢篁草閣紫扉
키 큰 버들과 대숲, 초가 사립문은

掩暎呑吐於烟雲
안개와 구름에 가렸다 비치고 삼켰다가 토하며

杳靄間極淋漓薈蔚之致
아득한 아지랑이 사이로 초목이 무성하고 흠뻑 젖은 모습이 지극한 정취로써

乃讓翁中年最淂意筆 眞足寶玩
곧 겸손한 어른께서 중년에 가장 득의(得意)한 붓이니
진실로 보배롭게 감상하기에 충분하다.

偶淂披賞於滖滖城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도성에서 우연히 얻어 펼쳐서 감상하니

塵中衰眸頓明顧
티끌 속에서 쇠약해 진 눈동자가 갑자기 밝아지며

安淂身入此中
곧 내가 이 속으로 들어가서

與憑欄吟眺者
시를 읊으며 바라보는 사람과 함께 난간에 기대고

共榻對坐
같이 책상을 마주하고 앉아

同亨物外淸幽之樂
세상 물정 밖에서 맑고 그윽한 즐거움을 함께 누리네.

董思白題輞川圖云
동기창이 생각하며 분명히 적은 망천도에서 말하기를

此爲大忌人世之家具
‘이것은 세상을 크게 꺼리게 만드는 도구이다’라고 하였다.

執謂騾鐸馬通外更無活計
노새의 방울 소리가 말로 통하는 세상에서 다시 살아갈 방도가 없다고 누가 말했던가?
癸巳小春豹菴題
계사년 음력 10월 표암이 지었다.

* 滴瀝(적력) : 물방울이 똑똑 떨어짐, 또는 그 소리
* 淋漓(임리) : (물이나 피가)흠뻑 젖어 뚝뚝 흘러 떨어지거나 흥건한 모양, 1.(액체가) 아래로 떨어지다. 줄줄 흐르다. 2.통쾌하다. 흥을 다하다.
* 薈蔚(회울) : 초목이 무성하고 많은 모양
* 物外(물외) : 세상 물정(物情)의 밖, 속세의 밖.
* 大忌(대기) : ①매우 꺼리다 ②대금물(大禁物) ③몹시 금기하는 사물이나 일
* 人世(인세) : 인간 세상. 세상. 이 세상. 세간.
* 家具(가구) : ①가구 ②무기 ③생산 도구 ④(의지할) 수단
* 更無(갱무) : 다시 어찌 할 수 없음
* 活計(활계) : 살아갈 방도나 형편
* 小春(소춘) : 음력 10월. 음력 10월에 어떤 지역은 봄 날씨 같이 따뜻한 데서 유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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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팔경

장동의 아름다운 여덟 곳
壯洞八景帖
정선(1676-1759).

조선朝鮮 1740년 이후
| 종이에 먹과 엷은 색紙本淡彩

인왕산과 백악산(또는 북악산) 일대 장동의 아름다운 여덟 곳을 그린 화첩이다. 취미대翠薇臺, 대은암大隱崑, 독락정獨樂亭, 청송당聽松堂, 창의문彰義門, 백운동白雲洞, 청휘각晴暉閣, 청풍계淸風溪의 풍경을 차례로 담았다. 화첩 순서 또한 이러한 동선을 따라 구성했다. 화첩에 담긴 장소들은 조선 후기 한양을 대표하는 명승지로, 당시 한양에 거주한 명문가들이 별장과 정자를 세워 문화공간을 형성한 곳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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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원에서 열린 경로잔치

북원에서 열린 경로잔치

이광적의 집에서 열린 잔치를 그린 작품으로, 정선의 기년작 가운데 비교적 이른 시기에 속한다. 화면에는 모두 21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전각 안 가장 왼편에는 주요 손님들이, 가운데는 그 자제들이 자리하며, 어린이들은 그들의 손자들이다. 차분하고 절제된 필치가 돋보이는 이 작품은 기록화 성격을 지니면서도, 정선 작품 가운데 드물게 풍속화적 면모를 보여준다.

북장동 사람 정선 원백(정선의 자字)이 삼가 그리다.
北壯洞人鄭敾元伯敬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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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의 금강산 여행

1711년 늦가을, 36세의 정선은 여러 벗들과 함께 금강산을 두루 여행하고 이를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이때 그린 13점의 그림을 모아 화첩으로 엮은 것《신묘년풍악도첩辛卯年楓嶽圖帖》입니다.
본래 그림과 시를 함께 담은 서화합벽첩書畫合璧帖 이었으나, 지금 시는 전하지 않고 그림과 나중에 쓴 발문跋文만 남아 있습니다.
이 화첩은 현재 전하는 정선의 산수화 가운데 비교적 이른 시기의 작품으로, 그만의 진경산수화가 형성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금강산의 빼어난 경치가 화면에 녹아 있는 이 작품을 시작으로 정선은 금강산을 그린 명장을 많이 남겼습니다.

■ 금성金城 피금정披襟亭

피금정披襟亭

피금정披襟亭
'옷깃을 풀어 젖히는 정자'라는 뜻의 피금정은 한양에서 금강산을 가기 위해 단발령을 넘어가기 전 유람객들이 거쳐 간 정자이다. 피금정 뒤편에 위치한 금성金城의 경파산慶坡山은 미점米點으로 표현되었으며 산허리가 안개에 가려져 있다. 피금정 앞으로 흐르는 남대천南大川은 대각선 방향으로 완만하게 멀어지고 있다. 정선 이후에도 강세황姜世晃(1713-1791), 김홍도金弘道(1745-1806 이후) 등 여러 화가들이 이곳을 그릴 만큼, 피금정은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 장안사 長安寺
금강산 만폭동萬瀑洞 계곡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어 내금강內金剛 유람의 출발지로 유명한 사찰이다. 장안사 입구의 무지개 다리인 비홍교飛虹橋는 1723년 이전에 장마로 유실되었다.

■ 단발령 斷髮嶺
금강산 여행이 시작되는 고개이다. 이곳에서 바라본 금강산이 너무나 장엄하고 황홀해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된다는 뜻에서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신묘년풍악도첩』 中 <단발령에서 바라본 금강산>

■ 백천교 百川橋
유점사 아래 있었다는 백천교는 내금강과 외금강 여행을 마치고 나가는 길목이었다. 이곳에서 나귀로 갈아타고 해금강으로 향하는 것이 일반적인 유람 경로였다.

■보덕굴 普德窟
만폭동 벽하담碧霞潭의 오른쪽 높은 절벽에 있는 자연 굴이다. 벼랑 암반에 구리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올린 건물이 보덕암普德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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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정대

불정대 佛頂臺와 십이폭포
유점사楡岾寺에서 송림사松林寺로 넘어가는 고개 북쪽에 있는 불정대는 내금강과 외금강의 경계이자 금강산 4대 폭포 중 하나인 십이폭포를 볼 수 있는 명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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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산정海山亭

해산정海山亭
북한 강원도 고성高城의 해산정은 외금강을 나온 여행객이 동해 바다와 산을 모두 조망할 수 있는 해금강의 명소였다. 화면 중앙의 해산정 뒤로 금강산의 백색 암봉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왼쪽에는 적벽赤壁 아래 남강南江이 흐르고 있으며 그 옆에는 대호정帶湖亭이 있다. 동해 바다에는 북두칠성과 같은 배열로 서 있는 칠성봉七星峰이 그려져 있다. 마치 지도처럼 주요 명소들이 압축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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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일호三日湖

삼일호
사선정

삼일호三日湖
고성高城에 위치한 호수인 삼일호 일대를 그린 작품이다. 삼일호 가운데 사선도四仙島라는 작은 섬이 있으며 그 위에 있는 정자가 사선정四仙亭이다. 사선도와 사선정은 신라의 화랑 네 명이 이곳에 왔다가 경치에 반해 3일 동안 돌아가는 것을 잊고 머물렀다는 고사에서 이름이 비롯되었다. 화면 오른쪽 아래에는 사선정에 가기 위해 배를 타려는 두 명의 말을 탄 인물과 마부가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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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석정叢石亭

총석정

총석정叢石亭
통천通川의 총석정은 관동팔경 가운데 하나로, 바다 위 솟은 돌기둥 [叢石] 위에 세운 정자를 뜻한다.
바다를 향해 둥글게 굽은 절벽 위 자리한 총석정을 중심으로, 그 곁에 돌기둥과 멀리 보이는 섬들을 함께 그렸다. 이러한 구성은 정선이 새롭게 창안한 것이 아니라 조선 중기부터 이어진 총석정 그림의 영향을 반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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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대

시중대

시중대侍中臺
통천 흡곡歙谷의 시중호侍中湖 일대를 그렸다.
시중대는 시중호에 있던 누대樓臺이다. 호수 너머 바다에 일곱 개의 섬이 있다고 하여 칠보대七寶臺라고 불렸으나 한명회韓明澮(1415-1487)가 이곳에 머물다가 정승에 제수된 것을 기뻐하며 시중대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시중대는 호수뿐만 아니라 그 너머의 바다까지 모두 조망할 수 있는 명승으로 많은 문인들이 방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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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읽기 ㅡ 일년전(2025)
겸재 정선, 호암미술관에서
https://munchon.tistory.com/m/2046

겸재 정선, 뷰티풀 채색화

호암미술관을 다녀왔다.이렇게 많은 겸재 정선의 그림을 볼 수 있다니, 감사히 여기며 찾았다. 날씨도 고왔다. 아내와 함께 벚꽃 나들이, 그리고 명화감상이라니 참 좋은 봄날이다. 특별히 녹색,

munchon.tistory.com


새단장 국중박 서화실 첫 손님은 '겸재 정선'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6/02/26/T6BCWBMIA5BRRLZ25VLBPEE6WM/

새단장 국중박 서화실 첫 손님은 ‘겸재 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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