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중박?
낯선 이름이다. 요새 젊은이들에게 뜨는, '국중박'은 다름아닌,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 National Museum of Korea)의 줄임말이다. 난 이런 줄임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젊은이들이 즐겨 찾고, 외국 관광객들도 많이 찾아 온다고 하니 반갑고 고마워서 그 이름도 좋게 들린다.
신문에서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지난해 650만 관람객을 돌파한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이 관람객 숫자 기준으로 세계 박물관 3위에 올랐다.
영국 미술 전문 매체 ‘아트뉴스페이퍼’가 지난달 31일(현지 시각) 발표한 ‘2025년 세계 박물관 관람객 조사’에 따르면, 국립중앙박물관의 연간 관람객 수는 650만7483명으로 루브르 박물관(904만6000명), 바티칸 박물관(693만3822명)에 이어 전 세계 3위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은 관람객 수가 영국박물관(644만120명)과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598만4091명)을 넘어선 것이다.
아트뉴스페이퍼는 “국립중앙박물관 관람객은 전년 대비 70% 이상 급증했으며, 이는 우리가 관측한 사례 중 절대 증가 규모 기준으로도 손꼽히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조선일보 2026.4.2)
세계 3위 수준의 관람객 수를 기록한 명소가 되었다니! 우리 문화가 자랑스럽다. 케이팦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세계적 인기 덕분에 우리 전통 문화에 대한 관심이 급부상하였고, 마침 '까치와 호랑이'를 재해석한 뮷즈(Museum+Goods)를 판매하면서 젊은 세대와 세계인들의 관광명소가 되었다.

과연 그랬다. 보슬비가 내리는 오전인데 관람객들의 반이상이 외국인들이었다. 그것도 단체관람객이 아니라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 친구들과 함께 온 소규모 관람객이었다. 서울지하철 4호선 이촌역 2번 출구에서 나와 편하게 무빙워크를 통해 국중박 앞으로 나오면 거울못이 보이고 왼쪽으로 국중박 열린마당계단 위에 파노라마 사진같은 공간 속으로 남산과 서울N타워가 보인다. 감탄이 저절로 나오며 카메라 속에 장면을 담는다.







열린 마당 계단을 오르니, 눈 앞에 보이는 장면에 감동한다. 가까이에는 용산공원과 멀리 남산과 N서울(남산)타워가 보인다. 왼쪽으로 더 멀리 북한산도 눈에 들어온다. 드라마틱한 서울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정적인 풍경만 사진 속에 담겼다.



계단 위에는 남산을 바로보는 전망에 대한 안내와 옛 그림 속에 장면을 읽는 재미도 있었다.


옥후북조도
둔지산 기슭 두운지정 뒤 언덕에서 본 북쪽 산세그림
강세황, <옥후북조도>, 두운지정화첩(逗雲池亭畫帖)에서 분리, 종이에 수묵담채, 16.5×43.5cm, 개인소장
이 곳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문인화가인 표암 강세황 (豹菴姜世晃,1713-1791)이 말년에 살던 저택 두운지정(逗雲池亭, 구름이 머무는 연못 정자라는 뜻)이 있던 곳 부근이며, 1784년 3월 <두운정전도(逗雲亭全圖)>, <옥후북조도(屋後北眺圖)> 등을 부채에 그린 <두운지정화첩 (逗雲池亭畫帖)>(개인소장)이 전한다. 이 그림은 강세황이 저택 언덕에서 바라본 풍경을 담아 그린 것으로 오른쪽으로부터 매봉산, 남산, 북한산, 북악산, 인왕산을 그린 모습이다.
* 둔지산 : 원래 이 지역의 이름
*두운지정화첩(逗雲池亭畫帖): 표암 강세황이 자신의 둔지산 저택 주변에서 직접 보았던 풍광을 담은 화첩
*두운정전도(逗雲亭全圖): 두운지정 전경도로 둔지산 저택을 그린 첫 부채 그림
국립중앙박물관 National Museum of Korea
ㅡㅡㅡㅡㅡㅡㅡㅡ
(스크랩)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214>
멀리 서울을 바라보며

강세황(1713-1791), '남산여삼각산도(南山與三角山圖)', 1784년(72세), 종이에 담채, 20.7×43㎝, 개인
강세황의 실경산수 '남산여삼각산도'는 제화시가 그의 문집 '표암유고'에 '옥후북조도(屋後北眺圖)'로 수록돼있어 집 뒤의 높은 곳에 올라가 북쪽을 바라보며 그렸음을 알려준다. 인장은 자(字)를 새긴 '광지(光之)'이고 제화는 다음과 같다.
교거숙이구(郊居倐已久)
/ 교외에 산 지 이미 오래건만
상유경성련(尙有京城戀)
/ 여전히 도성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네
남산여삼각(南山與三角)
/ 남산과 삼각산을
시등옥후견(時登屋後見)
/ 때로 집 뒤로 올라가 바라보네
표옹(豹翁) 강세황
그가 바라본 북쪽은 서울이고 남산과 삼각산이 함께 보인다고 한 교외는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이 있는 용산이다. 강세황은 용산에 살던 72세 때
"하루 종일 일이 없다가 우연히 부채 16자루를 얻어 정자와 동산의 경치, 꽃과 풀, 새와 벌레를 되는 데로 그리고 시를 지어 화제로 썼다"고 했다.
누군가 한꺼번에 많은 부채를 가져와 그림을 부탁하자 강세황은 만년의 노숙한 실력으로 주변의 경치를 비롯해 각종 그림을 그린 다음 어울리는 제화시를 지어 써 넣었다. 16점의 부채그림에 썼던 16수의 시는 문집에 모두 실려 있으나 그림은 '남산여삼각산도'를 포함해 3점이 알려져 있다. 강세황 같은 대가도 16점 중 3점밖에 보존되지 못했다. 많은 명작 선면화가 부채와 함께 소모돼 사라졌다.
앞쪽의 초가집과 기와집, 담장과 나무 등은 몇 번의 붓질로 형태의 핵심을 장악해 능숙하게 요약했다. 그 뒤로 논밭과 언덕이 넓게 펼쳐진 사이사이로 집들이 보이고 멀리 남산과 삼각산이 솟아있다. 왼쪽에는 한양도성으로 향하는 길을 표시해 놓았다.
남산은 푸른 바림을 올려놓은 위에 가로로 점을 찍어 산세를 나타냈고 그 뒤의 삼각산은 뾰족한 바위봉우리를 윤곽선으로 강조했다. 멀리 있는 산을 그릴 때 으레 따라오기 마련인 안개나 구름이 없고, 집과 나무는 가까운 것은 크게 먼 것은 작게 그려 근대원소(近大遠小)가 직설적이다.
'남산여삼각산도'는 현재 전하고 있는 강세황의 그림 중에서 비슷한 예가 없는 화풍이다. 오래전에 떠난 서울을 그리워하는 상념에 잠겨 눈앞의 경치를 그대로 옮기는 사생에 골몰한 현장성과 즉흥성으로 인해 상투적인 그림 버릇이 작동하지 않았다. 부채를 들고 물감을 옆에 놓고 쓱쓱 스케치하듯 그렸을 것이다. 일흔이 넘은 만년의 필치인데 마치 아동화 같고 푸른색과 황색의 색조가 맑다.
눈에 보이는 대로 손에 맡겨 무심하게 그린 직관(直觀)의 사생화가 주는 생생함과 당당함에 압도되는 부채그림이다.
미술사 연구자, 이인숙
'한국문화유산의 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국중박, 겸재 정선의 우리 강산 (3) | 2026.04.08 |
|---|---|
| 국중박 사유의 방 (1) | 2026.04.07 |
| 문경새재 (1) | 2026.03.27 |
| 고인돌 박사님과 다시보는 고인돌 (2) | 2025.12.15 |
| 세계문화유산, 양동마을 (1) | 2025.1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