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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유산의 길

고인돌 박사님과 다시보는 고인돌

by 문촌수기 2025. 12. 15.

동탄에 살며, 오산에서 교직생활을 마감했었다. 그때에 이 지역에도 고인돌이 제법 있었다. 그래도 관심을 두질 않았다가, 퇴직해서 지금은 부천에 살면서 보고싶었던 우리 수석선생님들을 만나러 오산에 왔다가 식사와 차담을 나눴다. 역시 공부하시는 우리 선생님들이라 같이 가까이에 있는 고인돌을 찾아갔다. 마침 고인돌박사님이 이 자리에 계시니, 허허허 일기일회라!
역시 우리 수석선생님들, 교단에 계실 적에도 각 교과의 최고 교육자들이셨지. 퇴직하고도 이런 나들이를 즐기다니, 오늘 하루도 감사하다.

■ 오산 외삼미동 고인돌
Dolmen in Oesammi-dong, Osan-si
烏山外三美洞
국가유산 지정 구분 : 경기도 기념물
지정번호: 제211호 / 2006. 1. 23

외삼미동 고인돌 입구

외삼미동의 고인돌은 모두 2기이다. 북쪽 것은 1호, 남쪽 것이 2호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의 고인돌을 '거북바위' 또는 '장수 바위'라고 부른다.
고인돌은 화강암 계통이다.

2호(좌)와 1호(우)
1호 탁자식고인돌

덮개돌의 크기는 1호가 길이 260cm, 폭 230cm, 두께 70~90cm이고, 2호가 길이 174cm, 폭 140cm, 두께 30cm이다.

1호 고인돌은 탁자식, 2호 고인돌은 뚜껑돌식(개석식)이다. 특히 1호 고인돌은 변형된 탁자식 고인돌로 전형적인 탁자식 고인돌과 달리 굄돌을 세우지 않고 옆으로 눕힌 형태로 되어 있다. 이런 변형된 형태는 오산시 외삼미동과 화성시 병점동, 수기리 유적에서만 나타난다. 외삼미동 고인돌은 탁자식과 개석식이 섞여 있어 청동기시대 문화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1호 변형된 탁자식 고인돌
2호 뚜껑돌식(개석식)고인돌 옆에서 굄돌을 설명하시는 우장문박사님
덮개돌 위의 성혈
성혈(性穴)을 굼 또는 홈구멍이라고도 한다.
2호 개석식 덮개돌의 성혈

외삼미동 고인돌의 덮개돌 상부에는 1호에 10개, 2호에 3개의 구멍인 성혈이 있다.
고인돌 덮개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홈구멍 [性穴]은 어떤 목적에서 만든 것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으나 홈구멍을 (북두칠성 등) 별자리, 풍년 기원, 자식을 바라는 염원, 병을 고치려는 바램, 고인돌 축조 후의 의식 등으로 추정하고 있다.

집에 돌아와 거석(巨石)의 기운으로, 우장문 박사님의 고인돌 책을 펼쳐 공부를 더했다. 이 재미가 좋다.

K 고인돌, 우장문 박사 외

1. 왜 고인돌인가?

고인돌이란 '큰 돌을 고이고 있다'는 데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돌을 고이고 있는 것을 괸돌이나 고인돌이라고 부르고, 돌을 세워놓은 것은 선돌이라고 부른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고인돌은 그 모양에 따라 거북바위, 두꺼비 바위, 핀바위, 독바우 등으로 부르며, 민간 신앙이나 전설에 따라 할미바위, 마귀할멈바위,장군바위,  칠성바위 등으로도 부른다. 중국에서는 석붕石棚, 일본에서는 지석묘支石墓라고 부르고, 유럽에서는 주로 Dolmen이라 칭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지석묘라고 많이 부르다가 최근에는 고인돌이라는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

2. 고인돌의 용도는 무엇일까?
고인돌을 만든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었으나, 1962년 충북 제천 황석리 고인돌에서 완전한 사람뼈가 출토되면서 무덤 용도로 만들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우리나라 대부분의 고인돌은 무덤 용도로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고인돌이 모두 무덤의 기능만 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규모가 대단히 큰 화순 핑매바위 고인돌, 고창 운곡리 고인돌, 황해남도 은율 관산리 고인돌, 랴오닝성 개주 석봉산 고인돌 등은 매장을 위한 무덤이라기보다는 공동무덤을 표시하는 묘표석(墓標石), 또는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祭壇), 혹은 기념물의 용도로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3. 고인돌은 어느 시기에 만들었을까?

고인돌이 만들어진 시기가 언제부터인지는 아직도 논란은 있으나 청동기시대에 많이 만들었을 것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수십 톤, 혹은 수백 톤이나 되는 고인돌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백에서 수천 명이 동원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평범한 사람 들은 만들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세력이 강한 지배층이 등장하는 청동기시대에 주로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주장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고인돌이 모두 규모가 1~2톤 정도의 덮개돌을 가진 작은 것도 많고, 양평 양수리 유적에서 3,900여 년 전의 숯이 발견되었다는 점과 빗살무늬토기나 뗀석기도 발견되는 고인돌 유적이 있다는 점을 들어 신석기시대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매우 강하다.
고인돌을 만드는 풍습이 없어진 것은 철기시대로 보는데, 대규모의 인력 동원이 농업 생산에 방해가 되는 등 비능률적인 요소들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흙을 이용하여 봉분을 크게 만들 수 있고, 돌을 이용해서도 더 큰 무덤인 돌무지무덤을 만들 수 있어 자취를 감춘 것으로도 보인다.

4. 고인돌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외형적 형태를 중심으로 크게 탁자식卓子式, 바둑판식[碁盤式], 개석식蓋石式으로 나누고, 그 외에 위석식石式, 석주식石柱式, 지상석곽식 등을 추가하기도 한다.
탁자식 고인돌은 잘 다듬어진 판돌 3매 또는 4매로 무덤방을 땅 위에 만든 후 그 위에 덮개돌을 얹어 놓은 모습이 탁자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하여 붙여졌으며, 북방식北方式이라고도 부른다.

바둑판식 고인돌은 판돌을 세우거나 깬돌로 만든 무덤방을 지하에 만들고 땅 위 에 받침돌을 4매에서 8매 정도를 놓은 후, 그 위에 커다란 덮개돌로 덮은 것으로 바둑판 모양을 하고있어 기반식碁盤式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남부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어 남방식南方式이라고도 한다.


개석식 고인돌은 지하에 다양한 모양으로 만든 무덤방 위에 바로 뚜껑돌 역할의 덮개돌을 올려놓은 형식으로 우리나라에 가장 널리 분포하고 있다.
위석식은 제주도에 주로 분포하고 있어 제주도식이라고도 부르는데 덮개돌 가장자리로 작고 얇은 판돌을 빈틈없이 고여서 만드는 형식이다. 이 외에도 지상석 곽식과 석주식이 있다. 석주식은 덮개돌을 긴 돌기둥 4개 정도로 지탱하는 것인데 이런 형태의 고인돌은 묘표석으로 보기도 한다.

■ 고인돌의 명칭들

7. 탁자식에서 바둑판식으로 바뀌는 지점은 어디일까?

고인돌의 형태가 탁자식에서 바둑판식으로 바뀌는 지점을 꼭 집어서 단정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중부지역에서 변화가 나타났음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황해도, 평안도, 만주 지역의 고인돌은 탁자식이 많고, 전라도와 경상도의 고인들 에서는 바둑판식을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확정할 수는 없지만 변화되어가고 있는 형태의 고인돌이 감지되는 곳을 꼽자면 경기도 화성시와 오산시의 고인돌을 통해서 일부 확인이 가능하다. 화성시 병점동과 수기리 고인돌, 오산시 외삼미동 고인돌은 모두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는데 탁자식 고인돌의 굄돌을 의도적으로 눕혀서 만든 형태가 나타난다. 이런 형태의 고인들은 하남 광암동 고인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고인돌들은 탁자식 고인돌에서 바둑판식으로 변형되어가는 모습의 일면이라고 생각된다.

오산 외삼미동 고인돌(변형된 탁자식 고인돌)

■ 고인돌 만들기

[더 보기]
고인돌에 담긴 문화적 의미,
우장문박사님
https://youtu.be/6ypcaGgdID4?si=rembkR2Rl22JiM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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