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인년이면, 언제였을까?
1986년이 병인년이었다.
앨범을 정리하다가 찾은 내 약도를 보고 40년 전의 기억을 되돌려본다.
아무튼 옛날, 20대 중반의 젊었을 때였구나. 정월이면 아직 겨울인데 무슨 구경있다고 1박 2일 문경새재에 갔던가?

다시 찾은 문경새재 길.
젊음은 저만치 먼저 가버리고 둘이서 말없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계곡의 물소리를 따라 마냥 걷는다.
문경새재는
한국관광공사 추천
<꼭 가봐야 할 관광지 100선> 중 1위란다.
백두대간(伯頭大幹) 마루를 넘는 이 고개는 조선시대 영남과 기호 지방을 잇는 영남대로(嶺南大路) 상의 중심으로 사회·경제·문화 등 문물의 교류와 국방상의 요충지였다. '새재'라는 말에는 '새(鳥)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억새(草)가 우거진 고개', '하늘재와 이우릿재 (이화령) 사이(間)의 고개', '새(新)로 만든 고개'라는 뜻이 담겨 있다. 조선팔도 고갯길의 대명사로 불리며, 한양 과거길을 오르내리던 선비들의 청운의 꿈, 그리고 백성들의 삶과 땀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태종 때 영남대로가 개척되면서 이 고갯길이 열렸다. 1594년 선조 때에 제2관문(조곡관)을 설치하였고, 1708년 숙종 때에 제1관문(주흘관)과 제3관문(조령관)을 설치하여 군사적 요새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1981년에는 문경새재 주변 5.5㎞를 도립공원으로 지정하였고, 1982년에는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표적인 국가유산으로는 국가지정문화유산인 문경 조령 관문(사적)과 자연유산 문경새재(명승)를 비롯해 경상북도 지정문화유산인 신길원 현감충렬비(유형문화유산), '산불됴심'비(문화유산 자료) 등이 있다. 주흘산(1,106m)과 조령산(1,026m) 사이에는 새재계곡이 약 6.5km의 영남대로(옛길)와 어우러져 천혜의 자연경관을 이루고 있다. 다양하고 귀중한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낙동강의 3대 발원지 중 하나인 초점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縣監 具命奎 清德善政碑
위치: 1관문북쪽 600m 폭포동 암반 위우측
시기:불상
문경현감(聞慶縣監)*
구명규(1693~1754)의 선정비이다. 주흘관에서 북쪽으로 600m 떨어져 있는 암반 위 10m 위에 있는데, 길 위 높은 곳에 새겨져 있어 지나치기 쉽다. 구명규의 본관은 능성(綾城)이고, 자는 성오(性五)이다. 1714년(숙종40)에 증광시(增廣試)**에 급제하였으며, 이후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을 지냈다. 구명규의 문경 현감 재임기간은 1724년(경종4)부터1725년(영조원년)까지이다.
*현감(縣監): 조선시대 외관직으로, 현(縣)에 파견했던 종6품의 지방 수령
**증광시(增廣試): 조선시대 나라에 큰 경사가 있을 때 실시하던 임시 과거시험
***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조선시대 한성부를 관할했던 정2품의 관직



尚州牧使李후益沒世不忘碑
위치: 1관문북쪽600m 폭포동 암반위좌측
시기: 숙종28년(1702년)
상주목사(尙州牧使)” 이익저의 불망비로, 높이는 215cm, 폭은 60~100cm이다. 주흘관에서 북쪽으로 600m 떨어져 있는 암반 위10m 위에 있는데, 길 위 높은 곳에 새겨져 있어 지나치기 쉽다. 이익저의 상주목사 재임기간은 1702년(숙종28)부터 1703년(숙종29)까지이다.
*목사(牧使): 고려·조선시대 지방의 고을에 설치한 목을 관할하던 정3품의 지방 장관







조령원터(鳥嶺院址)
종별: 향토유적 1132
위치: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447-1 문경새재도립공원 내
주흘산 조령관문 1관문과 2관문 사이에 위치한 조령원터는 고려와 조선조 공용으로 출장하는 관리들에게 숙식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공익시설이다.
문경새재는 과거 한양과 영남을 이어주던 길목에 위치하여 수 많은 길손들이 오고가는 중요한 통로였으며, 역과 원이 일찍부터 발달하여 새재내에만 동화원, 신혜원, 조령원 등 3곳의 원터가 전해지고 있다.
조령원터의 전체면적은 1,980m² (600평)이며 주위를 둘러 싸고 있는 돌담은 너비 2.8m~3.0m, 높이 2.9m 내외이고, 동쪽 57.6m, 서쪽 53m, 남쪽 38.9m, 북쪽 37.7m의 대칭변 길이가 모두 다른 남북으로 길게 쌓여진 장방형이다.
서쪽 돌담 중간에 문지가 남아 있는데 돌담을 성벽의 육축 모양으로 마무리하고 그 사이에 2매의 방형 석주를 문설주로 세웠다.
문경시에서는 조령원터 복원을 위해 1977년과 1997년 2차례의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건물의 터가 두개 층에 걸쳐 발견되었 는데 발굴 보조서에 따르면 상단의 건물지에서 고려시대의 온돌 유지와 부엌시설 일부가 드러났다. 또한 이를 비롯하여 와편, 토기편, 자기편, 어망추, 철제 화살촉, 마구류 등이 출토되었다.






상처 난 소나무
[v] 모양의 이 상처는 일제말기(1943~1945년)에 자원이 부족한 일본군이 한국인을 강제로 동원, 에너지원인 연료로 사용하기 위하여 송진을 채취한 자국으로서 반 세기가 지난 지금도 그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다.




주막에 있는 시가 참 좋다.
宿鳥嶺村店
悄悄林風起
冷冷溪響生
幽懷正迢遞
山月自分明
浮世身如寄
殘年病轉嬰
南來還北去
簪笏愧虛名
새재에서 묵다
살랑 살랑 솔바람 불어오고
졸졸졸 냇물 소리 들려오네,
나그네 회포는 끝이 없는데
산위에 뜬 달은 밝기도 해라
덧없는 세월에 맡긴 몸인데
늘그막 병치레 많이 그 많네.
고향에 왔다 서울로 가는 길
높은 벼슬 헛된 이름 부끄럽구나.


























'한국문화유산의 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고인돌 박사님과 다시보는 고인돌 (2) | 2025.12.15 |
|---|---|
| 세계문화유산, 양동마을 (1) | 2025.11.18 |
| 세계에도 통한다는 K무속 ? (1) | 2025.09.18 |
| 옥산서원과 독락당 (1) | 2025.09.12 |
| 세계문화유산 소수서원 (0) | 2025.05.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