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 법주사의 랜드마크는 뭘까?
누구도 부인 못하고 국내 유일의 5층 목탑인 팔상전과 세계 최대 규모의 금동 미륵대불일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법주사에는 국내 최고, 최대의 것이 여러 개 있다.



■ 금동미륵대불
절 왼편으로 커다랗게 서 있는 이 미륵불은 신라 혜공왕 때인 776년 진표율사가 장육불을 조성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와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할 때 훼철되었는데, 1964년에 시멘트로 다시 불사를 했다. 1990년에는 붕괴직전의 시멘트 대불이 청동대불로 다시 태어났다. 2000년 들어 원래 제 모습을 찾아주자고 해서 금동미륵불 복원 공사를 했다. 지하에는 미륵반가사유상 부처님이 모셔져 있어 참배할 수 있다.
높이 33m에 달하는 거대한 금동 불상으로, 표면에 80kg의 금을 입혀 화려함과 웅장함을 자랑하며 법주사의 상징이다.
■ 팔상전(국보) - 유일
팔상전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5층 목조탑으로 신라성덕왕(720년)에 조성된 것으로 지금의 건물은 임진왜란 이후에 소실되어 1602년부터 사명대사 (송운 유정)과 벽암대사에 의해 조선 인조2년(1624)에 다시 복원되었고, 1968년에 해체·수리한 것이다. 벽면에 부처의 일생을 8장면으로 구분하여 그린 팔상도(八相圖)가 그려져 있어 팔상전이라 이름 붙였다.
팔상도를 제1도상부터 제8도상까지 순서대로 감상ㆍ참배하려면, 범종각 방향(범종각과 팔상전 사이의 석등 앞)에서 팔상전으로 들어가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4면의 팔상도를 감상하면 좋다.




5층 목조 탑 중, 1~4층은 주심포 양식, 5층은 다포 양식으로 층마다 공포 구조가 다른 독특한 형태를 띤다.
■ 철당간 ㅡ 국내 최고
절 마당 안에서 이렇게 높은 철당간을 일찌기 본 적없다. 아마 국내 최고 높이일 것이다.


보은 법주사 철당간과 당간지주.
당간이란 찰(刹) 또는 찰주(刹柱)라 불리고 일반적으로 절을 사찰(寺刹)이라 말함은 절에 당간 즉, 찰이 세워져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종파를 표시하기 위해 당간 위에 특정한 색깔의 깃발을 내걸기도 하였다. 한편, 당간이란 솟대와도 같은 기능을 갖게 되어 신성구역임을 표시하는데 쓰이기도 한다. 현재 전하는 법주사 당간지주는 고려 목종 7년(1006)에 조성된 것으로 조성 당시의 높이는 전체 약 16m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 고종 3년(1866) 국가 재정 마련을 위한 당백전 주조라는 대원군의 명에 의해 사찰의 수많은 금속물들이 수거된 바 있었는데, 당시 이곳의 철당간 역시 파괴되었다. 곧이어 순종 당시 (1910년경) 이곳 철당간은 22m의 높이에 원래 모양대로 복원되었으며, 1972년 다시 복원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출처: 문화재청>
참고>
1> 용두사지 철당간
ㅡ 국내 최고 높이의 철당간은 충북 청주시에 있는 국보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제41호)입니다. 393자의 명문이 있어, 고려 광종 13년(962년)에 조성된 것으로 확인되는 이 당간은 현재 약 13.1m 높이이며 화강암 당간지주 높이는 4.2m로 남아있지만, 원래는 30개의 철통을 쌓아 약 20m에 달했으나, 일제강점기 등을 거치며 20단만 남게 되었다.


2> 공주 갑사 철당간 (보물 제256호)

■ 소조삼존대불 ㅡ 국내 최대
충북 보은군 속리산 법주사 대웅보전에 있는 삼존대불은 국내 최대 규모의 소조(흙으로 빚은) 삼존불이다.
높이 5.5m, 허리둘레 390cm에 달하는 장대한 크기로, 내부를 흙으로 빚고 표면을 도금하였다.
일반적으로 대웅전의 주인공은 석가여래이며, 대웅보전은 삼존불상을 모셨지만 중앙에 석가모니불이 계신다.
[대웅보전 삼존불 일반적 배치]
아미타불-석가모니불-약사여래불
하지만 법주사 대웅보전은 왼쪽부터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하신 석가모니불이 가장 왼쪽에 계시고, 가운데에 아미타불, 오른쪽에 약사불 순이다.
보물 제1360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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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 속리산 법주사
(법주사 발간, 안내지를 복사해서 붙임)
Introduce Beopjusa
천오백년의 향기를 만난다
천오백년고찰 속리산 법주사
호서제일의 가람 속리산 법주사
법주사는 553년(진흥왕 14년) 의신(義信) 스님에 의해 창건된 이후, 776년 진표(眞表) 및 영심(永深) 스님의 중창을 거쳐 왕실의 비호를 받으면서 8차례의 중수를 거듭하였고 조선조 중기에 이르러서는 60여동의 건물과 70여 개의 암자를 거느린 대찰(大刹)로서의 위용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임진 왜란으로 인해 절의 거의 모든 건물이 불타버렸다. 1624년(인조 2년)경에 이르러 벽암(璧巖)대사가 중창하고 그 뒤 수차례의 중건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법주사는 미륵신앙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석가모니불이 멸한 후 56억 7천만 년이 지나 마침내 부처가 된 미륵은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세 번에 걸쳐 인연있는 사람들에게 설법을 행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고 합니다. 인간은 일심으로 미륵을 믿고 철저히 수행하고 선근(善根)을 쌓아서 용화삼회의 설법에 참가하여 구원을 받 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미륵신앙입니다.
진표율사가 금산사에 이어 법주사를 제2도량으로 금강산 발연사를 제3도량으로 창건하였는데 이는 용화삼회 설법도량을 표시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1362년(공민왕 11년)에는 임금이 법주사의 불은(佛恩)에 감격하여 통도사에 칙사를 보내어 불사리 1립을 옮겨다가 현재 수정봉 밑 능인전 뒤에 사리탑을 조성, 봉안하였다고 합니다.
현재 법주사는 팔상전이라 불리우는 1기의 목탑과 더불어,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용화전, 원통보전, 명부전, 능인전, 조사각, 진영각, 삼성각 등 8개의 전각과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 종고루, 부도전 등 5개의 부속건축, 그리고 선원, 강원, 염불원 등 3개의 원과 염화실, 용화당. 미룡당, 응주헌, 사리각, 종무소를 포함한 10여 채의 요사채들이 남아 있어 도합 30여동의 건물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현재 역대조사의 수행가풍을 면면히 이어오고 있는 법주사는 금동미륵대불을 조성하고 400여년만에 2005년 대웅보전을 해체 복원불사 중 창을 마무리하고 2006년, 2015년 삼존대불을 개금불사를 하는 등 새롭게 변모하고 있습니다.
법주사는 신라시대에 처음 법등을 밝혀 기나긴 세월의 발자취가 절 안팎의 수많은 유물과 유적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오늘날 이땅의 미륵신앙의 요람이라고 일컬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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