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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유산의 길

정이품송은 세조의 프로파간다

by 문촌수기 2026. 4. 29.

속리산 포레스트 호텔로 들어가는 길목.
그 유명한 정이품송을 만났다.
소문은 들었다마는 생각보다 한 쪽면이 무너져서 초라했다

주차장에서 본 정이품송, 왼쪽이 무너진 듯

가까이에 세조와 정이품송의 이야기가 소개되어있다.

세조와 정이품송
천연기념물 제103호


보은 속리 정이품송은 높이 16.5m, 흉고 둘레는 5,3m이며, 수령은 약 600년 정도인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 나라에서는 보기 드물게 모양이 아름답고 큰 소나무이다. 이 소나무에는 얽힌 이야기가 있다. 조선 세조가 속리산 법주사로 행차할 때 임금이 타고 있던 가마(연)가 이 소나무 아래 부분 가지에 걸리게 되어 임금이 나뭇가지에 연이 걸린다." 라고 말한다. 그러자 이 소나무는 스스로 가지를 위로 들어 올려 임금의 가마가 무사히 지나가도록 했다고 한다. 이를 기특하게 여긴 세조가 그 자리에서 지금의 장관급에 해당하는 정2품 벼슬을 이 소나무에 내렸다. 이때부터 이 소나무는 <연걸이 소나무> 또는 <정이품송>으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전설이냐? 사실이냐?
이건 순전히 꾸며진 이야기, 민담이거나 잔혹한 쿠데타(계유정난)로 왕이 된 수양대군이 정권의 정당성을 초자연적인 힘에 의존하여 꾸며낸 프로파간다일 뿐이다.

정이품송, 한 쪽으로만 봐서 그렇지, 다른 쪽에서 보면 그 모습은 품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푸른 뒷산이 배경이 된 덕일까?

전설이거나, 프로파긴다 이거나 이야기의 수명은 오래가고 널리 퍼지는 재미가 있다.

우리나라의 명승지나 노거수에는 유명한 인물 혹은 역사적 사실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가 남아있는데, 이중 나무와 관련하여 대표적인 것이 정이품송과 세조 임금의 이야기이다.

세조는 재위 10년 음력 2월 요양을 목적으로 온양, 청원을 거쳐 보은 속리산을 방문한다. 말티재를 넘어 속리산으로 가던 중 길목에 있는 소나무에 임금이 타는 가마인 연(輦)이 걸릴 것 같아 "연 걸린다"고 하자 신기하게도 늘어져 있던 가지가 스스로 올라갔다고 한다. 돌아가는 길에는 근처에서 갑자기 비가 와서 일행은 이 소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하였다고 한다.

세조는 "올때는 신기하게 나를 무사히 지나도록 하더니 이제 갈 때는 비를 막아주니 참으로 기특하도다" 하면서 이 소나무에게 정이품의 품계를 하사하였다고 한다.
이후부터 이 소나무를 연거랑이 소나무(輦卦松), 연송(輦松), 정이품송(正二品松) 이라고 불렀으며, 인근 마을은 군사들이 머물렀다고 하여 진(陳)터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조선왕조실록

"세조실록32권, 세조 10년 2월 26일 기유
거가가 청주를 출발하여 밤에 회인현에 머물렀다.
세조실록32권, 세조 10년 2월 27일 경술
중 신미가 와서 떡을 바치니 호종하는 군사들에게 나누어 주다."

己酉/車駕 發淸州夕次于懷仁縣
庚戌/車駕經報恩縣東平,夕次于屏風松僧信眉來謁,獻餅百五十盆,分賜扈從軍士。

거가(車駕)가 보은현(報恩縣)동평(東平)을 지나서 저녁에 병풍송(屏風松)에 머물렀다. 중 신미(信眉)가 와서 뵙고, 떡 1백 50동이를 바쳤는데, 호종(扈從)하는 군사(軍士)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정이품송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없지만 병풍송이라는 소나무가 언급되고 있어 그 당시에도 경관이 수려한 나무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미나이로 뒷산을 지우고 본 정이품송

뒷산 배경이 없으면 정이품송의 모습이 어떨까 싶어서 '제미나이'에게, 부탁했다.
구글의 '제미나이' 기술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