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필하모닉 연주회 프로그램 중,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콘체르토 vs 콘체르토'이다. 연주회 경연이 아니라, 두 개의 다른 악기로 협주곡 두개를 연주하는 프로그램이다.
내 어린시절 러시아를 꿈꾸게 하였던 인물은 도스또옙스키와 차이코프스키였다.이번의 연주회는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피아노협주곡이다. 나의 최애청곡들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꼭 보고싶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망년회 약속일이다. 주저했지만 결국 아내에게 친구와 함께 감상하라고 티켓 두장을 전했다.
연주회를 다녀온 아내의 소감은 기대이상이었다.
"안 갔더라면 후회할 뻔 했다."
하하하, 그럼 그렇지?
역시 차이코프스키!
나의 최애청곡들을 다시 듣고 공부해본다.

PROGRAM
■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작품35
| 바이올린 김서현
P. I. Tchaikovsky, Violin Concerto D Major, Op. 35
I. Allegro moderato-Moderato assai
II. Canzonetta. Andante
III. Finale. Allegro vivacissimo
Intermission
■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제1번 작품23 | 피아노 문성우
P. I. Tchaikovsky, Piano Concerto No. 1 b-flat minor, Op. 23
I. Andante non troppo e molto maestoso-Allegro con spirito
II. Andantino semplice-Allegro vivace assai
III. Allegro con fuoco
2년 전에도 부천필하모닉의 콘체르토 vs 콘체르토에서 같은 프로그램이 연주되었다. 작품 해설은 이것을 대신하고 이번에는 차이콥스키의 生을 읽어본다.
https://munchon.tistory.com/m/1835
차이코프스키, 콘체르트의 밤
내 청춘의 애청곡, 베스트리스트의 협주곡을 듣는다. 부천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회특별기획연주회 차이콥스키 스페셜Concerto vs Concerto2023, 11. 30.목 7:30pm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지휘 박혜산연
munchon.tistory.com
<더읽기>ㅡ 차이콥스키와 바이올린 협주곡
ㅡ 정경화 바이올린 협주곡 카세트테잎 시리즈에서 옮김

■ 차이콥스키(P.Tschaikowsky 1840~1893)
차이콥스키는 1840년 5월 7일 비야토카의 보트긴스크라는 시골에서 태어났다. 광산기사였던 그의 부친을 따라 여러 곳을 옮겨 다녔기 때문에 정규적인 음악교육을 받지 못했을 뿐만아니라 그의 부모들로부터 음악적인 재능도 인정받지 못했다. 다만 5세때 문학과 교양을 겸비한 프랑스 여자 가정교사가 그를 돌보아주었고, 7세 때는 피아노 렛슨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도 음악전문가를 만들려는 의도가 없었고 재능조차 주목을 끌지 못해 지속적인 음악교육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차이콥스키는 1859년 법률학교를 졸업하고 일등 서기관으로 취직하게 되는데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소송사무는 적성에 맞지않아 63년(23세때) 법무성을 그만두게 된다. 자신의 직업을 포기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1860년 러시아 음악협회의 음악교실개설 때문이었다.
당시 대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떨치던 안톤 루빈시타인은 동생 니콜라이와 함께 1859년 페테르부르크에 러시아 음악 협회를 설립하고 러시아에서 유럽음악의 전통을 이식하는 활동을 시작하고있었다. 음악교실은 자유스럽게 공부할 수 있는 제도로 정규적인 교육을 갈망해오던 차이콥스키에 있어서는 더없는 기회가 된 셈이다.
그는 이 음악교실에 들어가 니콜라이와 자렌바에게 이론을 배웠고 곧이어 이 음악교실이 승격하여 페테르부르크 음 악원이 되자 그는 따라서 음악원 학생이 된다.
음악원 재학시 최초로 완성된 작품, 서곡 「폭풍우」를 발표했다. 그는 때때로 스승 루빈시타인의 의도하는 바와 달리 자신의 개성적인 표현으로 마찰을 빚기도 했다. 음악원을 졸업한 66년에는 니콜라이 루빈시타인이 64년에 개설한 모스크바 음악교실에서 교편을 잡기로 결정되어 페테르 부르크를 떠나 모스크바에서 생활하게 되는데, 당시의 이곳은 페테르부르크에 비해 보잘곳 없는 시골이었다. 이 음악교실은 「모스크바 음악원」으로 개편되었다. 이곳 음악원에서 음악전공의 친구들과 친교를 맺는 한편 러시아 5인조 중의 한사람인 발라기레프 등을 만나게 된다. 그의 영향으로 모스크바에 온 후 최초로 쓴 작품은 교향곡 제1번 이다.
그는 국민악파와의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그의 영향을 받기도 하였으나 이에 그치지않고 서유럽파로서의 입장을 고수하게 되어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서유럽파의 아성으로 지 목되었다. 그의 공적은 교향곡에서 뿐만아니라 아당(발레 지젤의 작곡가)이나 들리브의 프랑스적 영향을 받은 발레음악에서도 국민악파에서 찾을 수 없는 세련된 서정성이 넘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의 음악적 기조는 슬라브적 요소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의 사생활은 우수와 고독감에 가득차 있었는데, 14살 때 어머니와의 이별은 그에게 큰 상처를 주었고 슬픔을 이 기지못해 오랫동안 신경쇠약 증세에 시달리게 한 원인이 되었다.

그의 열렬한 후원자였던 폰 메크 부인과의 정신적인 사랑은 마더 콤플렉스에 대한 보상행위였을까? 37세의 차이콥스키에게 45세의 그녀가 찾은 것은 정신적인 플라토닉한 사랑으로 13년이나 연서(書)를 주고받은 것은 너 무나 잘 알려진 일화이다.

이렇듯 차이콥스키가 겪어야 했던 인간적인 시련과 슬픔은 그의 음악에 항상 짙은 애수와 어두운 면이 감도는 것으로 나타난다. 때로는 몽상적이고 서정적인 정열을 세련되게 표출해내는 그의 선율은 슬픔의 가장 이상적인 승화라 하겠다.

■정경화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제1악장 : 알레그로 모데라토
제2악장 : 칸쏘네타. 안단테
제3악장 : 피날레, 알레그로 비바치시모
지휘: 앙드레 프레빈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는 러시아의 지방색과 차이콥스키 특유의 애수가 깃든 탐미적인 선율 때문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 곡이 초연될 당시에는 진가가 인정되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혹평이 잇달았다. 차이콥스키는 이 곡을 당시의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인 레오폴드 아우어에게 헌정되었는데 악보를 검토한 아우어는 기교적으로 연주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연주를 거부했다. 이보다 앞서 차이콥스키는 자신의 후원자인 폰 메크 부인에게도 악보를 보냈는데, 그녀는 차이콥스키의 위대성을 인정하는 사람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곡은 칭찬하지 않았다. 당시의 유명한 비평가인 한슬릭은 '천하고 품위없고 싸구려 보드카 냄새 만나는 작품이다'라고 혹평을 했다.
그러나 당시 라이프찌히 음악학교 교수로 있던 아돌프 브로즈키는 이 곡의 진가를 인정하여 1881년 12월 4일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회에서 초연을 하였다. 그 결과는 좋지 않았으나 브로즈키는 굴하지 않고 연주여행 때 마다 각국에서 이 곡을 연주하였다. 그 결과 이 곡은 서서히 인정을 받게 되었다. 브로즈키는 자신의 제자인 짐발리스트·하이페츠·엘만 등에도 가르쳤다. 결국은 처음에 거절 했던 아우어까지도 이 곡을 연주하기에 이르렀다. 이 곡은 브로즈키에게 헌정되었다.

이 곡을 작곡할 당시의 차이콥스키는 제자인 안토니나 밀류코바와의 결혼에 실패한 직후로 대단히 불우한 환경에 처 해 있었다. 심신의 피로를 느낀 차이콥스키는 1877년 겨울 부터 이듬해 봄에 걸쳐 스위스와 이태리 등 남쪽으로 여행을 하였는데, 그 여행중에 이 바이올린 협주곡이 작곡되었다.
이 협주곡이 완성되기까지는 친구인 바이올리니스트 코데커의 힘이 컸다. 멘델스존이 다비트의 조언을 얻었고, 브 람스가 요아임의 도움으로 바이올린 협주곡을 완성했듯이 이 곡의 작곡에는 코데크의 많은 협력이 있었다.
바이올린의 눈부신 기교와 풍부하고 색채적인 오케스트레이션과 신선함, 그리고 러시아의 민요가 가미된 애수를 띤 선율 등은 베토벤 브람스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걸작으로 인정받는 요소가 되고 있다.
제1악장 : 소나타 형식으로 명상적인 서주가 대단히 인상적이다. 시종 당당하게 진행되며 마직막 코다에서는 격렬 함과 화려함이 극치를 이룬다.
제2악장: 3부형식의 칸쪼네타. 칸쏘네타는 작은 노래라 는 뜻으로 이 선율의 슬라브적 애수는 더없이 아름답다. 회 상적인 종결에 이어 곡은 그대로 3악장으로 이어진다.
제3악장 : 자유로운 소나타 형식으로 대단히 열광적이고 웅장하다. 슬라브 농민의 춤을 연상시키는 선이 굵은 선율 에서 야성적인 정취를 느낄 수 있다. 활기차고 감명깊은 코다로 이어지며 장쾌하게 끝맺는다.
https://youtu.be/-Jtzq55kcQI?si=PBqHbspuTpA-z4sY

연주자 프로필
지휘자 임동국


바이올리스트 김서현


피아니스트 문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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