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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흑석동 성당, 카나의 혼인잔치

by 문촌수기 2026. 7. 5.

오랫만에 혼배성사 청첩을 받고 혼주를 찾아 축하를 드리고 미사도 드리며 성당 구경도 잘했다.
늘 느꼈지만 남녀 두사람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혼인으로 하나가 되는 혼배성사는 참으로 아름답고 성스럽다.

신부의 조카가 화동이 되어 입장하고 있다

혼인성사라 해도 될 걸, 왜 굳이 혼배(婚配, Sacrament of Matrimony)라는 말을 사용했을까?
한국교회의 첫 교리서인 「성교요리문답」은 혼인성사의 특성을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배합(配合)인 것과 또한 부부가 서로 갈리지 못함”이라고 말하고 있다. 배합이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부부를 이루는 유일한 상호관계라는 혼인의 단일성을 뜻한다. 교회법은 이 혼인의 본질적 특성이 “그리스도교인 혼인에서는 성사의 이유로 특별한 견고성을 가진다”(제1056조)고 말하고 있다. 혼배라는 말에는 혼인이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둘이 아닌 한 몸이 되는 것이며,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태 19,6)는 의미가 담겼다.

"1+1=1"


오늘 주례 신부님은 예수님의 말씀을 전해주셨다.

(마태오복음 19장)
3 그런데 바리사이들이 다가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하고 물었다.
4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읽어 보지 않았느냐? 창조주께서 처음부터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나서,
5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하고 이르셨다.
6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So they are no longer two, but one flesh. Therefore, what
God has joined together, no human being must separate."

흑석동 성당은 대성전과 별도로 혼배미사 전용 성당인 <카나의 혼인성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카나의 혼인성당

일층에는 '하느님 사랑'을 뜻하는 하랑카페와 축의대, 접수대가 있는 '나눔의 공간'이고, '사랑의 공간'이라는 이름의 이층 성전에서 혼배 성사가 진행되었다.
성전에는 제단을 바라보며 왼쪽 벽에는 예수님 첫 번째 기적인 ‘카나의 혼인 잔치’를 주제로 한 대형 모자이크 벽화가 설치되어 있고, 오른쪽 벽에는 십자가의 길 14처 그림과 유리성화 세 개가 있다. 전체적으로 혼배성사의 의미를 경건하고 우아하게 자아내고 있었다.

카나의 혼인잔치 앞으로 신랑신부 행진

카나의 혼인 잔치

'카나의 혼인잔치' 기적 벽화

카나의 혼인 잔치
1 사흘째 되는 날, 갈릴래아 카나에서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에 계셨다.
2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그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으셨다.
3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 하였다.
4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5 그분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말하였다.
6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정결례에 쓰는 돌로 된 물독 여섯 개가 놓여 있었는데, 모두 두세 동이들이였다.
7 예수님께서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채워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물독마다 가득 채우자,
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이제는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 하셨다. 그들은 곧 그것을 날라 갔다.
9 과방장은 포도주가 된 물을 맛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지만, 물을 퍼 간 일꾼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과방장이 신랑을 불러
10 그에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하면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셨군요.”
11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12 그 뒤에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카파르나움으로 내려가셨다. 그러나 그곳에 여러 날 머무르지는 않으셨다.

십자가의 길 기도 14처
성전 천장의 유리성화
선화예고 제자들이 뮤즈같이 축가를 부른다

성당 문으로 들어가니 정면에 대성전과 교육관 사이에 있는 모자이크 벽화가 눈에 띠었다.

베드로와 바오로의 '회개'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의 '회개'
베드로(우)의 상징은 수닭, 그물, 거꾸로 십자가 / 바오로(좌)의 상징은

■ 베드로의 회개
마태복음 26장 69~75절
69" 베드로는 안뜰 바깥쪽에 앉아 있었는데 하녀 하나가 그에게 다가와 말하였다. “당신도 저 갈릴래아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지요?”
70 그러자 베드로는 모든 사람 앞에서, “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 하고 부인하였다.
71 그가 대문께로 나가자 다른 하녀가 그를 보고 거기에 있는 이들에게, “이이는 나자렛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어요.” 하고 말하였다.
72 그러자 베드로는 맹세까지 하면서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하고 다시 부인하였다.
73 그런데 조금 뒤에 거기 서 있던 이들이 베드로에게 다가와, “당신도 그들과 한패임이 틀림없소. 당신의 말씨를 들으니 분명하오.” 하고 말하였다.
74 그때에 베드로는 거짓이면 천벌을 받겠다고 맹세하기 시작하며,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하였다. 그러자 곧 닭이 울었다.
75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

요한복음 21장 15~19절
15 그들이 아침을 먹은 다음에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
16 예수님께서 다시 두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17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므로 슬퍼하며 대답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1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어,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이렇게 이르신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


■ 바오로의 회심
바오로는 그리스도교 신자를 잡아 가두는 등 교회를 박해하는 데에 앞장섰다. 그리스도교 신자를 잡기 위해 말을 타고 다마스커스로 향하던 바오로는 "왜 나를 박해하느냐?"라는 예수그리스도의 목소리를 듣고 빛을 보며 말에서 떨어지고 회심하여 (사도행전 22:5~11) 그때부터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예수그리스도를 전하는 이방인의 사도로 거듭나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곧 구원자이심을 당당히 선포하며, ‘진정한 구원의 길’이라는 문구가 쓰인 두루마리를 펼친다.

좌측 세 개의 분할 화면은 바오로 사도가 복음을 전파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수많은 박해와 고난이 순차적으로 묘사되어 있ㄹ다.
풍랑 속의 배 (맨 위): 전교 여행 중 겪었던 파선과 바다의 위험을 나타내며,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교회를 지키시는 하느님의 섭리를 뜻한다.
찢겨지는 옷 / 성실하고 우직한 신앙 (가운데): 유다인들과 이방인들에게 종교적 박해를 받으며 매질을 당하고 멸시받았던 육체적 수난을 상징하며 황소는 묵묵하게 고통을 인내하는 순교자의 굳은 의지와 우직한 신앙을 비유적으로 나타낸다.
감옥과 등불 / 차꼬에 매인 사슬 (맨 아래):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힌 상태를 묘사한다. 어두운 지하 감옥에서도 빛나는 등불은 육신은 구속되었을지언정 ‘결코 매일 수 없는 하느님의 말씀’과 사도의 꺾이지 않는 신앙을 상징한다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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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이 회심하고 복음을 선포하다.]
사도행전, 9장 1절~20절

1 사울은 여전히 주님의 제자들을 향하여 살기를 내뿜으며 대사제에게 가서,
2 다마스쿠스에 있는 회당들에 보내는 서한을 청하였다. 새로운 길을 따르는 이들을 찾아내기만 하면 남자든 여자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겠다는 것이었다.
3 사울이 길을 떠나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의 둘레를 비추었다.
4 그는 땅에 엎어졌다. 그리고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고 자기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5 사울이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6 이제 일어나 성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누가 일러 줄 것이다.”
7 사울과 동행하던 사람들은 소리는 들었지만 아무도 볼 수 없었으므로 멍하게 서 있었다.
8 사울은 땅에서 일어나 눈을 떴으나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손을 잡고 다마스쿠스로 데려갔다. ㅣ
9 사울은 사흘 동안 앞을 보지 못하였는데, 그동안 그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10 다마스쿠스에 하나니아스라는 제자가 있었다. 주님께서 환시 중에 “하나니아스야!” 하고 그를 부르셨다. 그가 “예, 주님.” 하고 대답하자
11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곧은 길’이라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 있는 사울이라는 타르수스 사람을 찾아라. 지금 사울은 기도하고 있는데,
12 그는 환시 중에 하나니아스라는 사람이 들어와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을 보았다.”
13 하나니아스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성도들에게 얼마나 못된 짓을 하였는지 제가 많은 이들에게서 들었습니다.
14 그리고 그는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들을 모두 결박할 권한을 수석 사제들에게서 받아 가지고 여기에 와 있습니다.”
15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거라. 그는 다른 민족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이다.
16 나는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그에게 보여 주겠다.”
17 그리하여 하나니아스는 길을 나섰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사울에게 안수하고 나서 말하였다. “사울 형제, 당신이 다시 보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도록 주님께서, 곧 당신이 이리 오는 길에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셨습니다.”
18 그러자 곧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일어나 세례를 받은 다음
19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렸다. 사울은 며칠 동안 다마스쿠스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지낸 뒤,
20 곧바로 여러 회당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선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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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성전의 모자이크화
본당 대성전 제대에는 따로 십자고상이 없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유리 모자이크화가 있기 때문이다. 본당의 여러 유리 모자이크화는 남용우 마리아 화백(1931~ )의 작품이다.
남 마리아 화백은 남종삼 요한 성인(1817~1866) 후손이란다

흑석동성당, 대성전
제단,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성화

제대 오른쪽 성체 감실 옆에 김대건 신부님의 오른손 뼈가 성해함에 안치되어 있다.

성체함과 성해함
대성전

대성전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에는 성령강림 모자이크 유리화있다. 성령이 내려 오셔서 ‘우리에게 예수님의 구원 업적을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담대하게 하느님 말씀을 널리 선포할 수 있도록 해주심’을 늘 떠올리도록 도움을 주는 작품이다.

성령강림 모자이크화

대성전 입구 홀에 있는 아치형의 유리성화 두개는 경건하면서 아름답게 성전을 장식하였다.

대성전 일층 깊숙히 실내 봉안시설인 평화의 쉼터가 있다.  천주교회 봉안 시설인 이곳은, 천주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분들만 이용하실 수 있다.
우리보다 먼저 주님 곁에서 영원한 삶을 살고 계신 가족을 추모하는 공간이다.

제대 뒤에는 '하느님의 은총과 어린양' 모자이크 유리화 작품이 설치되어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 30).
예수님의 희생으로 우리는 이 땅에 매어 있지 않고 고난의 땅, 역경의 삶, 고통의 바다를 건너갈 수 있다는 희망을 묵상할 수 있는 작품이다.

하느님의 은총과 어린양

혼배성사 미사를 마치고 출구로 나오며 보니, 이 곳 성당이 <상록수> 소설가 심훈의 생가터라는 표지석이 있었다.

심훈 생가 터 沈薰生家址
Site of Shim Hun's Birthplace

심훈 (1901~1936)은 소설 <상록수>로 유명한 일제시대에 활동했던 소설가이자 시인이며 영화인이었다. 그는 3·1운동에 참여하여 투옥과 함께 퇴학당한 뒤 중국으로 망명하여 수학하다가 1923년에 귀국했다. 최초의 영화소설 <탈춤>, 영화 <먼동이 틀 때>, 시 <그날이 오면>, 소설 <상록수> 등의 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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