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부부 여행 마지막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강원도 횡성군 끝자락에 있는 풍수원 성당을 십여년만에 다시 찾았다.
주차하고 올라가는 길에 성체현양대회의 의미와 풍수원 성당의 역사를 담은 사진을 봤다.
덕분에 성체대회의 의미를 새기며 신앙을 다시 다지는 좋은 여행이 되었다.




■ 횡성 풍수원 성당
풍수원성당은 1802년 신태보 베드로 복자를 비롯한 40여 명의 신자가 박해를 피해 자리를 잡으면서 형성된 신앙 공동체이다. 신자들은 80여 년 동안 성직자 없이 신앙생활을 하다가 1888년 6월 20일에 본당으로 설정되어 프랑스 성직자 르메르 신부가 초대 본당 신부로 부임하여 초가 사랑방에서 첫 미사를 드렸다.
1896년 우리나라 세 번째 사제로 서품받은 정규하(아우구스티노) 신부가 2대 본당 신부로 부임하여 47년 동안 신자들과 함께 공동체를 일구었다.
정규하 신부는 1909년에 중국인 목수 진 베드로 등을 고용하여 초가 성당을 대신해 120평 규모의 고딕 로마네스크양식 벽돌조 성당을 1910년 11월 9일에 완공하여 조선교구장 위텔 주교가 봉헌하였다.

가톨릭 성당의 제대에는 반드시 주님의 수난을 기억하는 십자고상(Crucifix)이 있어야 하는데, 풍수원 성당도 예외는 아니다. 다만 제대 뒤편에 십자고상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제대 뒤편의 아름다운 유리화(스테인드글라스) 속에 십자고상을 그렸고, 입당 행렬 시 사용하는 행렬용 십자가를 제대 위에 세워두어 그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풍수원성당이 성체성지임을 드러내며 제대 뒤의 제단에 성체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성당 앞 마당에 있는 느티나무 두 그루는 위텔 주교가 성당 봉헌식 때 심은 기념식수로 수령이 130년 이상된다.

정 신부는 1912년에 중국인 목수 최 바오로를 고용하여 1913년에 조적조 벽돌 슬라브 건물인 구 사제관(현 풍수원성당 역사관)을 지었고, 이곳이 1910년에 설립된 삼위학당의 모체로써 성소의 못자리가 되어 이곳 출신 사제를 30여 명 배출하였다.
1920년 6월에는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을 맞아 성체현양대회를 시작하여 현재 천주교 원주교구로부터 성체성지로 선포되었다.
풍수원성당은 한국인 사제가 지은 한국 최초의 성당으로, 강원 최초의 성당이며 한국에서 일곱 번째로 지어진 서양식 성당이다. 역사적 의미가 있는 건축물로 1982년에 강원 지방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구 사제관은 2005년에 대한민국 근대역사유적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성체대회(성체현양대회)란?
교회를 구성하는 모든 이가 한자리에 모여 그리스도 최후의 만찬을 통해 제정하신 성 찬례의 의미를 새기고, 성체께 대한 깊은 신심을 공적으로 고백하는 신심행사이다.
이 대회를 통해 우리는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이를 통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낸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세계성체대회가 1881년 프랑스 릴(Lille)에서 처음으로 열린 이후로 최근에는 대략 4년에 한 번 주기로 거행된다. 세계성체대회 말고도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각 지방에서는 크고 작은 성체대회가 거행된다.







풍수원 성체현양대회는 1920년부터 시작되었다. 풍수원 본당이 설정된 이후 춘천, 원주, 강릉, 인제 등 강원도 전역의 신자들이 해마다 미사에 참례하려고 며칠씩 수십, 수백리 길을 걸어와 생명의 양식인 성체를 모셨던 열정적인 신앙의 모습이 시초가 되어, 1920년 성체성혈대축일을 시작으로 해마다 성체거동과 강복으로 이어지는 성체 현양대회가 거행되었다.
당시 성체현양대회를 통해 일제의 억압 속에서도 관헌들의 사찰을 피해가며 해마다 수백, 수천 명의 신자들이 모여 함께 기도하고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였으며, 오늘날 성체현양대회를 통해 우리는 성체를 모시고 행렬을 하며 주님을 찬미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아 참 신앙인으로 살아갈 다짐을 하게 된다.









횡성 풍수원성당 구 사제관은 국내에서 세 번째로 지어진 사제관이다. 풍수원 천주교회 2대 주임인 정규하 신부에 의해 1912년 부터 짓기 시작하여 1913년 10월 1일에 완공하였다.
규모는 가로 11.85m, 세로 5.75m이며 각층이 4개의 칸으로 되어있는 지상 2층의 직사각형 붉은 벽돌 건물이다.

화강석 줄기초* 위에 붉은 벽돌을 올린 구조이며 영식 쌓기**의 방식으로 벽을 쌓았다. 1층과 2층의 층 구분 위치에는 돌출된 벽돌로 이루어진 수평 띠가 둘려 있다. 벽 꼭대기의 지붕 처마에는 두 단으로 벽돌을 내어 쌓은 코니스***가 있다. 지붕은 네 방향야 모두 가울어진 우진각**** 형태이다.
1층은 부엌과 식당, 사무실 또는 회의실로 쓰였다. 현재 전시실 1과 전시실 2의 앞마루 아래쪽에는 아궁이 공간이 있었다. 뒷벽에 두 개의 굴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재래식 온돌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2층은 사제실과 손님방, 서재, 집무실로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성당의 주교관이 아닌 일반 성당의 작은 사제관으로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이 비슷한 비중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특히 땅의 높낮이 차이를 활용해 부분적으로 반지하 공간을 만들어 창고 또는 주방과 식당 등으로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풍수원 천주교회 구 사제관은 천주교 선교사들이 사용한 주거 공간으로 그 자체로 문화적 의미가 있다. 또한 현재까지 원형이 보존된 벽돌로 지은 사제관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 이러한 가치와 의미를 인정받아 2005 년에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현재는 풍수원 천주교회의 유물 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줄기초(줄基礎): 건축물 상부의 하중을 지반으로 전달하기 위하여, 콘크리트나 철근 콘크리트를 줄 모양으로 길게 이음 구조
**영식 쌓기(English Bond): 붉은 벽돌 외벽에서 흔히 사용되는 방식, 벽돌 쌓기 형식의 일종으로, 길이쌓기(가로)와 마구리쌓기(세로)를 번갈아 사용하는 시공법.
***코니스(Cornice): 건축물, 벽면에 수평의 띠 모양으로 돌출한 부분, 일반적으로 벽면 상단 근처에 둘러쳐져 추녀 밑 외관을 돋보이게 하며 벽면을 빗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우진각(Hip roof): 지붕의 네 면이 모두 경사진 형태로, 건물의 모든 방향으로 비를 흘려보내도록 설계된 지붕 구조

























+ 이철수 화백 “다채롭고 따뜻한 밥상 같은 언론 되길” < 문화와 사람 < 기사본문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s://share.google/SGCCk0v0wPDW7bVRo
이철수 화백 “다채롭고 따뜻한 밥상 같은 언론 되길”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판화가 이철수를 만나기 위해 충북 제천으로 향하는 길은 봄이 온 듯도, 오지 않은 듯도 했다. 길 왼쪽으로는 갓 꽃망울을 틔우기 시작한 벚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가 하면, 오른쪽으로는 어젯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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