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922 님로드, 위로와 감사와 희망을 듣다. 부천필하모닉 오케스트라.신년음악회, 생상스의 오르간 교향곡 연주가 끝나고 우뢰와 같은 박수를 진정시키며, 지휘자 이병욱은 앵콜곡을 들려주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신년 음악회지만 근래, 나라에 안 좋은 일이 많이 생겨서 잔잔한 곡을 앵콜곡으로 들려드리겠습니다."그렇다. 그간 계엄선포와 탄핵 정국으로 상처받고, 제주항공의 참사로 충격과 슬픔에 빠진 국민들과 유족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들려주는 것 같아서 눈시울이 젖었다.나에게 오늘 신년음악회에서 가장 감동적으로 들은 연주곡이었다.엘가의 '님로드'는 우정에 감사와 위로를 전하는 곡으로 자주 연주된다.엘가가 그의 친구 제거에게 보낸 편지를 읽어보면 그 사연이 알 것 같다. 사랑하는 나의 친구, 제거 .난 슬럼프에서 돌아온 이후로 하나의 변주곡을 만들었어. 이.. 2025. 1. 20. BAC, 2025 신년음악회, 생상스 신년음악회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제324회 정기 연주회2025. 1. 16. 목 7:30 pm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연주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지휘 이병욱소프라노 문현주오르간 신동일프로그램 해설 Program Note(글 부천시립예술단 사무국장 박갑산)■ 쇼스타코비치, 축전 서곡 D. Shostakovich, Festive Overture, A Major, Op. 96https://youtu.be/VTH_NwdJtUM?si=JX6JF9gFHvEPf__J1954년,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러시아 혁명 37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에게 특별히 이 곡을 위촉하였다. 이 곡은 일종의 목적 음악으로, 본래 소련 혁명을 찬양하는 의도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밝고 경쾌한 분위기,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선.. 2025. 1. 17. 이제 웃음이 된 '섬집아기' 차마 부르지 못하는 자장가가 있었다. 결코 부를 수 없는 동요가 있었다. '섬집아기'이 노래를 부르면 아내가 슬퍼한다. 어디서 이 노래가 들려와도 눈물을 짓는다. 아내도 나도 애써 이 노래만은 피한다. 먼저 간 아이에게 많이 불러줬던 자장가였다. 아이와 아이의 이름과 함께 같이 묻어야만 했던 노래다. 이제 세월이 많이 흘렀다. 세월이 약인지 몰라도 마음의 파인 자리가 서서히 메꿔지고, 잊어야 살 수 있기에 억지로 잊었다. 잊으려하니 잊혀졌다. 잊혀지다보니 이제 다시 들을 수 있고, 부를 수 있었다. '섬집아기'손녀가 찾아 왔다. 하느님이 보내주신 생명이다.갓난 아기때 한 동안 산후조리하는 제 어미와 함께 할머니 손에서 보살핌을 받았다. 할아버지 손에도 안겨 엘가의 '사랑의 인사'를 들었고, 얼래면서 불러.. 2025. 1. 15. 베르테르 가든과 괴테상 치욕의 삼전도비를 찾아 보면서 마음이 무거웠지만, 그 근처에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랜드마크와 같은 롯데월드타워가 우뚝 솟아 있다. 하늘로 올라갈 준비를 마친 로케트 같고, 천국으로 오르는 사다리와 같다. 그 롯데월드타워 가까이, 롯데월드몰 뒤, 석촌호수(동호) 변에 '베르테르의 정원'이 있고 그 가운데에 괴테의 동상이 있다.괴테상이 여기에 있는 연유와 '롯데'라는 이름의 기원을 알 수 있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동상'롯데'라는 기업명은 독일의 대문호 괴테(1749~1832)의 소설 의 여주인공인 샤롯데(Charlotte)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이 동상은 롯데와 베를린시, 독일 괴테 재단이 함께 건립한 것으로 독일의 대표적 신고전주의 조각가 Fritz Schaper가 1880년 제작한, 역사적·예.. 2025. 1. 13. 굴욕의 역사, 삼전도비(三田渡碑) 굴욕의 역사를 찾아 온 김에 갈 때까지 가보자 싶었다. 해는 저물어도 우리 언제 다시, 이 부끄러운 역사산책을 더듬어 볼까 싶어서 석촌호수에 있는 삼전도비를 찾으러 갔다. 삼전도(三田渡)는 한강의 여의도와 같이 섬(도ㆍ島)이 아니라, 한강의 나루터(건널 渡)이다. 삼전도로 가는 길에 날은 어두워졌다. 부끄러운 과거도 역사다. 감추지 말고 잊지말며 드러내고 가르쳐서 두번 다시는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해야 한다.■삼전도비(三田渡碑)인조 14년(1636) 봄, 조선은 형제 관계를 군신 관계로 바꾸자는 후금의 요구를 물리쳤다. 국호를 대칭(大淸)으로 바꾼 청 태종은 이윽고 병자호란을 일으켰고,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해 항거하다가 당시 한강나루터였던 삼전도로 나와 청 태종의 신하가 되는 의례를 거행했다. 인조 1.. 2025. 1. 13. 남한산성 수어장대와 무망루 수어장대를 찾아 올라서 먼저 내려다 본 한강과 삼전도.저 언 한강을 미끄러지며 남한산성으로 피난왔고, 삼전도에 진을 친 청국의 칸에게 나가 삼궤구고두례(三跪九叩頭禮)로 항복을 해야했던 그 현장을 찾아보았다.■수어장대(守禦將臺)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호지휘와 관측을 위한 군사적 목적의 누각으로 남한산성에 있던 5개 장대 중 유일하게 남아있다. 청량산 정상에 위치하며 성 안에 남아 있는 건물 중 가장 화려하고 웅장하다. 영조 27년(1751) 2층 누각으로 중건하고 외부에 '서장대(西將臺)', 내부에 '무망루(無忘樓)'라고 편액을 설치하였다. 헌종 2년(1836) 고쳐지으며 외부에 '수어장대(守禦將臺)' 편액을 달았다.■ 무망루(無忘樓)잊지말자! Don't forget !조선 영조27년(1751) 광주유수 .. 2025. 1. 13. 남한산성 행궁 남한산성행궁국가사적 제480호임금이 서울의 궁궐을 떠나 도성 밖으로 행차하는 경우 임시로 거처하는 곳을 행궁이라 한다.남한산성행궁은 전쟁이나 내란 등 유사시 후방의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한양 도성의 궁궐을 대신할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하여 조선 인조 4년(1626)에 건립되었다.실제로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여 47일간 항전하였다.이후에도 숙종 영조 정조 철종 고종이 여주, 이천 등의 능행길에 머물러 이용하였다.입장료는 1,000원.신분증으로 확인 된 경기도민은 무료 였다.한남루한남루는 정조 22년(1798)에 광주 유수 홍억이 행궁 입구에 세운 2층 누문으로, 기존의 외삼문과 중문만이 남아 있던 것에 추가하여 '삼문삼조(三門三朝)'의 법도를 완성하였다.외행전.. 2025. 1. 13. 남한산성 병자호란 남한산성을 찾았다. '자랑스런 세계문화유산'이라기보다 나에게는 '치욕의 역사현장'이라는 선입견이 지배적이다. 김훈의 소설과 영화 때문이겠지만, 엄연한 역사다.병자호란(1636년, 서기 1937년 1월 3일-2월 24일)으로 궁궐과 한양을 버리고 인조 임금과 조정의 신료들이 도망쳐와서 한겨울 47일을 버티며 백성과 군졸들은 말라죽고 얼어죽고 굶어죽어가는 판이 나날이 이어졌다. 결핍과 추위로 말미암아 성안의 군졸들은 전의를 상실하고 방어할 기력도 거의 잃었다. 결국 임금은 성을 나와 삼전도에 진을 친 청국의 칸을 찾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항복했던 비참한 현장이었기에 딱 오늘 요만때의 역사 날씨만큼 춥고 마음이 무겁다.얼마전 많이 내린 습설로 수많은 소나무들이 머리와 허리가 꺾이고 사지가 찢어져 쓰러져 있다... 2025. 1. 13. 엄마는 어떤 마음이야? 성가복을 입고 미사를 기다리고 있다. 그때,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말깨나 할 줄 아는 걸 보니 서너살 쯤 되겠다. "엄마는 어떤 마음이야?"경건한 마음으로 미사 시작을 기다리는 성가대 자리 옆의 유아방으로 앞서 걸어가시는 엄마는 죄송한 듯 말없이 아이의 손을 끌고, 종종걸음이다.그때 아이의 큰소리가 났다."그러니깐, 엄마는 어떤 마음이냐?""하하하'"성가단원들이 돌아보며 귀여운 아이의 말을 웃으며 따라해본다. 나에게는 큰 스님의 화두(話頭)처럼 들렸다."나는 어떤 마음인가?"마침, 오늘 '주님세례축일'의 복음이 그 힌트를 주셨다.“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 루카3.22 2025. 1. 12. 이전 1 2 3 4 5 ··· 21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