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엔 생사가 없다."

삶과 죽음 이야기 2013. 1. 4. 09:31 Posted by 문촌수기

"이 곳엔 생사가 없다."

Category: 삶과 죽음에 대하여, Tag: 여가,여가생활
01/08/2008 12:22 pm

 

생사어시 시무생사

 


스님들 세계에서는 '시인의 마을'로 통하는 절이 있다.
내소사이다.
내소사를 찾아 들어가는 전나무 숲길이 눈에 선하다. 그때가 2000년이던가 2001년 이던가?
내소사도 내소사지만 산사로 들어가는 길을 왼쪽으로 벗어난 부도전에서 본 비문은 아직도 나에겐 화두이다. 탄허 스님의 글씨이다.

生死於是 是無生死
"삶과 죽음이 이곳에서 나왔으나, 이곳에는 삶도 죽음도 없다"

나 같이 속진(俗塵)에 물든 중생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길 없다. 화두참선이 간절하지 못했던가 보다. 희미할 뿐.
아니 어쩌면 그것조차 생각할 겨를 없이 바쁘게 살아갈 뿐인가보다.
그저 우리가 사는 세상사가
모두 삶과 죽음이 상존하는 곳이니, 굳이 삶에도 죽음에도 얽매이지 말라는 뜻으로만 여겨본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나를 알몸으로 장례를 지내라

삶과 죽음 이야기 2013. 1. 4. 09:29 Posted by 문촌수기

나를 알몸으로 장례를 지내라

Category: 삶과 죽음에 대하여, Tag: 여가,여가생활
08/11/2005 12:22 am
한나라 무제 때의 양왕손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병들어 죽게되자 아들에게 일렀답니다.
"나를 알몸으로 장례지내라. 원래 가지고 온 진체(眞體)로 돌아갈련다"

아들도 놀라고 이웃도 놀랬습니다. 누군가 만류하였습니다.
"아니, 발가벗고 돌아가 어찌 먼저 가신 조상을 만나겠소? 절대 불가한 일이오."

이에 왕손이 답하였습니다.
"죽는다는 것은 일생을 마치는 자연섭리이며, 만물이 돌아갈 귀착점이오. 곧 만물은 각기 그 본래 온 곳으로 본래의 모습(진체)로 되돌아가는 것이오. 발가벗고 왔으니 발가벗고 가야죠. 정신은 하늘에서 왔으니 하늘로 가면 되고, 몸뚱아리는 땅에서 왔으니 땅으로 가면 되지요. 땅에 묻혀 곧 썩어질 것을 두껍게 둘러싸고 후하게 꾸민들 무슨 소용있겠소. 이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것을 빼앗는 일일 뿐입니다. 옛날 요(堯)임금의 장례에도 빈 나무로 관을 삼고 칡덩굴로 묶었으며, 무덤을 파되 샘물이 나지 않게끔만 파고, 봉분을 하더라도 썩는 냄새가 새어나지 않을 만큼만 했다지 않소.
후한 장례는 죽은 사람은 알지도 못하는데 산 사람들의 재물만 헛되이 낭비하는 일이오. 어찌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모두 이 말을 듣고 '옳다'여겨 알몸으로 장례를 치렀답니다.

-[說苑]에서

댓글을 달아 주세요

국화꽃으로 장식해달라고?

삶과 죽음 이야기 2013. 1. 4. 09:26 Posted by 문촌수기

국화꽃으로 장식해달라고?

Category: 삶과 죽음에 대하여, Tag: 여가,여가생활
05/16/2005 09:03 pm

저녁밥을 먹으면서 딸아이가 얘기합니다. 가장 행복한 시간입니다.
중학교 1학년 딸아이 입에서 나오는 얘기는 모두 학교생활과 친구이야기 입니다.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기가 막힌 얘길 합니다.

"친구가 이번 중간고사 못봤는데, 엄마가 학원 다니랬어.
내 짝이 뭐랬는지 알아?
'내일 내 자리를 국화 꽃으로 장식해주라.' 그랬어."

제 엄마는 화들짝 놀라 "무슨 그런 얘길 하니? 어쩜 얘들이 그렇게 쉽게 얘길하니?"
그래도 둔한 나는무슨 얘긴줄 몰랐습니다. 아니, 화들짝 놀란 안사람을 이상하게 쳐다보다 형광등 처럼 잠시후에야 끔찍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어쩌다 그런 말들이......친구한테 절대로 그런 말은 입에도 담지말라 그래라.
농담도 우스개라도 절대 절대로 입에 담지말도록 해라. "

걱정입니다. 유행처럼 번져가는유희인듯, 죽음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세상이 되어갑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하루 평균 36명 그러니깐 시간당 1.5명이 스스로 자기 생을 포기하고 있답니다. OECD회원국 중 (차마 이 말도 쓰기 힘들었습니다.) 자살률이 1위랍니다.
10대들의 사인 1위가 교통사고이며그 다음이 자살이라니 이건 보통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인가 오늘 교무회의시간에 학생부장 선생님도 전달말씀을 하였습니다.

"생명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교육을 합시다."

난, 사람말고 뭇 생명,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환경교육을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고 자살예방 교육이었습니다.

'내가 죽으면 나의 죽음을 슬퍼하겠지,그 사람에게 그런 슬픔을 안겨서라도 나의 존재를 알려야 겠다.

아니, 난 이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이야. 살아서 뭐해....,

아니, 죽어서라도 복수할꺼야. 내 죽어 네 잘되는지 보자.

아니, 너무 힘들다. 죽으면 편하겠지. 모든 것을 다 잊을 수 있겠다.'

모르겠습니다. 글쎄 어떤 생각인지.
많은 사람들은 자살을 생각보았다는데 차마 그렇게 실행으로 옮기지는 않았는데.....

이것을 어떻게 막아야 할 지 여간 걱정이 아닙니다.
먼저 세상 뜬 사람들이, 특히 먼저 자살해본 사람들이 증언을 해 줄 수만있다면......

댓글을 달아 주세요

부처님 오신 까닭은?(5)-자기의 등불을 밝혀라.

Category: 삶과 죽음에 대하여, Tag: 여가,여가생활
05/15/2005 01:55 pm

부처님 오신 까닭은?(5)-자기 등불을 밝혀라.

"이 세상 모든 것은 무상(無常)하여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 <제행무상>
그래서 '나'라는 절대적인 실재도 없고, 영원한 것 또한 있을 수 없다. -<제법무아>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내 것'이라는 것에 집착하고, '영원하리라'는 망상에 젖어 있으면 우리 삶은 모두 고통일 뿐이다. - <일체개고>
그러나 무상(無常)과 무아(無我)를 바르게 깨달으면 우리의 삶은 절대 평화, 절대 자유의 경지인 열반적정(涅槃寂靜)을 얻게 된다. -<열반적정>"

늙은 노새가 수레를 끌고 가기란 무척이나 힘이 듭니다. 이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여든이라는 연세를 가지시고 전국을 유랑하시면서 자기를 비울 것을 가르치는 법의 진리를 설하시기에 무척 힘이 드십니다. 부처님의 사촌동생이며 제자이며 시자(侍子)인 아난다는 부처님이 곧 돌아가실 것만 같아 걱정은 태산이며 마음은 항시 초조합니다. 그래서 스승이신 석가모니 부처님께 여쭙니다.

"이제 스승께서 저희들 곁을 떠나시면 저희들은 누구에게 의지해야 합니까?"


제자는 부처님께서 혼탁한 이 세상과 어리석은 중생을 모두 제도(濟度)하실 때까지 영원히 머물러 주실 것을 청하지 못하고 태어난 것은 모두 반드시 죽기 마련이며, 만난 것은 반드시 헤어지기 마련인 것을 깨달아서인지 석가모니 부처님을 붙잡지 아니하고 떠나실 것을 미리 염려하며 슬픈 마음으로 여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제자 아난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아난다야. 그 어느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말아라.
내가 이세상을 떠나면 나에게도 의지할 수도 없는 일이니라.
그러므로 오직 스스로를 등불로 삼아 의지할 것이며,
나의 가르침인 법의 진리를 등불로 삼아 의지할 것이니라. "
- [자등명(自燈明)하고 법등명(法燈明)하라] -


'자기의 등불을 밝히고 진리의 등불을 밝히어라'는 말씀은 곧 깜깜 어두운 이세상을 걸어가려면 스스로가 밝힌 자존(自存)의 등불에 의지해야 할 것이며, 석가모니께서 밝힌 진리(眞理)의 등불에 의지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자신을 이 세상을 환하게 비출 수 있는 등불로 만들어야 하며, 진리의 등불을 환하게 밝히어 거짓과 어리석음과 미혹의 세상을 떨쳐버려야 할 것입니다.


석가모니께서는 이제 제자들 곁을 떠나실 때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석가모니께서는 금속세공업자인 춘다가 바친 공양(供養)을 받으시고 병이 드셨습니다. 그럼에도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길을 걸어 쿠시나가라로 가셨습니다. 쿠시나가라의 사라나무 숲 속에서 부처님께서는 모로 누우셨습니다. 곧 입멸(入滅)할거라는 전달을 받고 많은 제자들이 스승의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여러 제자들은 돌아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의문이 있거든 서슴지 말고 물어라.
뒷날에 가서, 여래께서 이 세상에 있을 때 물어보았더라
면 좋았을 것을, 하고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 물어라.'


여쭙는 제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백 명의 제자들 어느 누구도 의문을 가지지 않는 참다운 깨달음을 얻었던 것입니다. 이제 스승은 최후의 말씀을 전하십니다.


"너희들에게 전할 말은 이렇다.
모든 것은 변한다.
게으름없이 항상 정진(精進)하라."


나무 밑에서 태어나시고, 나무 밑에서 명상에 젖으시며, 나무 밑에서 '더 이상 위없는 깨달음'을 얻으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돌아가시면서도 나무 밑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자아존엄성을 선언하시며 이 땅에 오신 석가모니께서는 마지막으로 우리들에게 스스로의 등불을 밝히고(자등명)과 진리의 등불을 밝힐 것(법등명)을 당부하시며 또한 매사에 정진(精進)하라고 가르치시며 선종(善終)하셨습니다. <끝>

금낭화도 연등이 되어 부처님 오신 날을 봉축하는 듯 합니다.
- 2005년 5월 15일, 부처님 오신 날, 고양 농협대학에서

댓글을 달아 주세요

부처님 오신 까닭은?(4)-아뇩다라삼먁삼보리

Category: 삶과 죽음에 대하여, Tag: 여가,여가생활
05/15/2005 01:50 pm

부처님 오신 까닭은?(4)-아뇩다라삼먁삼보리

나무아래서 태어난 고타마 싯다르타 왕자, 백성들의 고통을 보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고민에 빠져 나무그늘에 자리잡고 명상에 잠기었던 왕자, 이제 출가수행자 보살이 되어 무상보리를 얻고자 보리수 나무 밑에 풀을 깔고 자리를 잡았습니다.


"여기 이자리에서 내 몸은 메말라 가죽과 뼈와 살이 다 없어져도 좋다.
저 깨달음을 얻기까지는 이 자리에서 결코 일어나지 않으리라!"


이렇게 맹세를 하고 깊은 명상에 들어갈 적에 온갖 마구니(마라)들이 나타나 공갈, 협박, 유혹을 합니다. 이러한 마구니들을 물리치시고자 보살은 무릎 위에서 조용히 잡고 있던 오른손을 땅으로 살짝 내리시며 손가락을 펴시어 이세상에서 가장 공평하신 땅을 가리키며 마구니들을 물리치십니다. 바로 토함산의 석굴암 석가여래상이 바로 땅에 맹세하시며 마구니를 물리치시는 수인(手印)입니다. 이렇게 마구니를 내쫓고 깊은 명상에 들어 새벽녘 샛별이 반짝거릴 적에 드디어 보살은 모든 미혹의 번뇌를 일순간에 다 끊어버릴 무상보리의 정각(正覺)을 얻게 되었습니다.



석가모니와 제자 : 아난(왼쪽)과 마하가섭(오른쪽), 석가모니(가운데)는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하고 있다.


바로 '아뇩다라 삼먁삼보리'라 말하는 '더 이상 위 없는 올바른 깨우침'을 얻은 것입니다.
그가 얻은 무상보리란 바로 연기설, 사성제설, 삼법인설 등입니다.

'이것으로 생하면 저것이 생하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이 멸한다. 너와 나와 만남도 바로 깊은 인연의 까닭이다. 네가 있으니 내가 있는 것인 만큼 자타가 불이(不二)함을 깨달아 머무름이 없는 자비를 실천할 것을 가르치는 것이 바로 연기설입니다.


사성제설이란 '모든 것은 다 고통'이라는 고성제, 그 고통은 바로 '탐욕과 진노와 어리석음에서 비롯되었다'는 집성제, 그리고 번뇌와 무명을 모두 끊어 버린 '절대평화, 절대자유의 세계'를 그린 멸성제, 그 멸의 세계에 이르기 위한 '여덟가지 올바른 수행생활'을 설명하고 있는 도성제입니다. 따라서 욕심이 없으면 고통이 사라지고 올바른 수행생활로 열반과 해탈에 이를 수 있음을 가르치는 불교 핵심의 진리입니다.


삼법인설은 '모든 것이 덧없이 변한다'는 제행무상, 따라서 '절대 영원한 자아의 본체란 있을 수 없다'는 제법무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하리라 집착하면 '모든 것이 다 고통이라'는 일체개고의 진리를 말합니다. 따라서 영원한 것도 없고 내 것 또한 없다는 사실을 분명 깨달으면 바로 '고요하고 절대로운 자유의 세계-열반적정'에 이를 수 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제 싯다르타 보살은 부처님이 되신 것입니다.
제 어미를 죽이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자아존엄성을 선언하시며 이세상에 오신 고타마 싯다르타 왕자는 이제 석가모니 부처님이 되셨습니다.
부처님의 입가에는 깨달음의 희열을 신비롭게 감춘 듯 미소가 피어납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바로 그러한 진리를 전하시려 이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부처님 오신 까닭은?(3)-무상보리도 공양 후

Category: 삶과 죽음에 대하여, Tag: 여가,여가생활
05/15/2005 01:48 pm

부처님 오신 까닭은?(3)-무상보리도 공양후

아버지로부터 제왕의 학을 배우며 성장하던 고타마 싯다르타 왕자는 생로병사의 고통과 뿐만아니고, 사랑하는 이와 헤어져야하는 애별리고(愛別離苦), 미운 사람과 함께 만나야 하는 원증회고(怨憎會苦), 구하려 애쓰지만 얻지 못하는 구부득고(求不得苦), 우리의 오감으로 들어와 쌓여있는 모든 고통인 오취온고(五取蘊苦) 등 수많은 고통을 어떻게 해결할까 명상에 젖어 사색적으로만 변해갑니다.
슛도다나 왕과 왕비의 고민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궁궐에서는 왕자의 슬픈 번민을 씻어주기 위해 매일같이 즐거운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그래도 왕자의 명상은 끊이지 않습니다.

이제 왕위를 계승할 자격을 가진 싯다르타 태자는 16세가 되어 야소다라를 맞이하여 결혼을 하였으며 아들도 갖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태어났다는 말에 태자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라훌라가 생겼구나."

이 말은 장애(障碍)란 뜻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어여쁜 자식이 '장애'라니 이 무슨 말입니까? 고타마 태자에게 있어서는 사랑으로 맺어지는 인연은 수행생활에 장애가 되었는가 봅니다.

그러나 그 어떤 장애(라훌라)도 싯다르타 태자의 출가 결심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싯다르타'라는 이름 자체가 '자기 소원을 모두 이루어주는 사람'이라는 뜻이니, 자기 소원인 출가의 뜻을 어느 라훌라인들 막을 수 있겠습니까?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궁궐 파수꾼들이 태자의 출가를 막고자 궁궐 문을 굳게 지키고 있었지만 태자는 애마 칸타카를 올라타고 훌쩍 궁궐 높은 담장을 넘었습니다. 마부 찬다카만이 칸타카의 고삐를 잡고 함께 날아갔습니다.
사랑하는 아들과 아내를 저버리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과 기대를 일순간에 끊어버리고 한나라의 군왕 될 자리를 내팽개치고 그는 이세상 모든 중생들의 고통을 해방시키리라는 구도의 염원으로 출가를 결행하였습니다.
그때 나이가 스무 아홉살입니다.

그후 구도자 보살(菩薩)로서의 싯다르타 삶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행의 삶이었습니다. 29년동안의 쾌락에서 얻지 못한 진리를 짧은 동안이나마 극도의 고행으로서 '위없는 깨달음'[무상보리]을 얻으려 무진장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6년이 되도록 깨달음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싯다르타 보살은 6년 금식고행의 수행생활을 청산하고 수자타의 우유죽 공양을 받아먹게 됩니다. 수자타가 이 우유죽을 끓이고 있을 때 죽 위에 '만(卍)'자와 같은 상서로운 표적이 나타났답니다. 오른손으로 주걱을 잡고 시계방향으로 돌리면 분명 만(卍)자 비슷한 모양이 생길 것입니다만 그후, '만(卍)'자는 불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수자타의 우유 죽 공양을 드신 보살은 '위없는 깨달음(무상보리)'를 얻고자 보리수 나무 밑에 자리를 잡고 명상에 들어가셨습니다.


극도의 쾌락과 극도의 고행은 결코 우리들에게 깨달음을 가져다 줄 수 없음을 보살은 가르쳤습니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바로 중도(中道)에 있음을 수자타의 공양으로 가르치십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더니
'무상보리도 공양후(無上菩提 供養後)'인가봅니다.

2001. 5. 1 일여

댓글을 달아 주세요

부처님 오신 까닭은?(2)-모두가 다 고통

어린 고타마 왕자님은 마하프라자파티 이모에게서 양육되었습니다.
당시의 풍습에 언니가 죽으면 여동생이 형부와 살았나봅니다. 고타마 왕자님은 슛도다나왕으로부터는 왕도의 훈육을 받았으며, 계모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받으면서 궁궐에서 훌륭하게 잘 자랐습니다.

어느날 어린 왕자는 스승과 함께 백성들이 사는 성밖으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뙤약볕이 내리 쬐는 날에도 힘들게 일들을 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어린 왕자는 고민에 잠겨 물었습니다.

"저들도 나와 같은 사람입니까?"
"그렇습니다. 왕자님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저들은 왜 저렇게 힘들게 일을 하면서 살아갑니까?"
"누구나 힘들게 일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왕자님"

어린 왕자는 고민이었습니다. 저들도 나와 같은 사람인질대 어찌 살아가는 모습이 저렇게 고통스러울까? 내가 왕자인데 어떻게 저 백성들의 고통을 들어줄 수 있을까 깊은 상념에 잡혔습니다.

다음 날 또 다른 문을 나서게 되었습니다. 늙을대로 다 늙어 누추하고 쪼글아 들어 몰골히 흉하며, 자신을 가누지도 못하고 지팡이를 잡고 겨우겨우 걸어다니는 노인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어린 왕자는 의아하여 물었습니다.

"저것이 무엇입니까?"
"나이 드신 노인들입니다. 왕자님."
"나이가 들면 누구나 다 저렇게 됩니까?"
"그렇습니다. 왕자님께서도 나이가 들면 저렇게 되실 것입니다."

늙어간다는 것은 고통이라는 것을 왕자님은 알았습니다. 사람은 어떻게 하면 늙어가도 고통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어린왕자는 고민이었습니다.

다음날 왕자는 스승과 함께 또 다른 문을 나섭니다. 거리에는 팔다리가 성치 못하고 얼굴이 흉측한 병자들이 쓰러져 신음을 하고 있습니다.

"저것들은 또 무엇입니까?"
"병든 자입니다. 왕자님."
"왜 저들은 병이 들었습니까?"
"저 들만 병이 드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자기 뜻과 관계 없이 병이 들 수 있습니다."
"나도 저들처럼 병들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왕자님"

왕자님은 이만 저만 고민이 아니었습니다. 누구나 병들 수 있으며 병든 이들의 고통을 어떻게 해야만 들어줄 수 있을지 여간 걱정이 아니었습니다.

어린 왕자는 다음 날 스승과 함께 또 다른 문을 나섭니다. 거리에서 장례행렬 만납니다. 사람들이 죽은이를 들 것에다 올려 들고 갑니다. 유족들이 슬퍼하며 따라갑니다. 그리고 장작더미 위에 죽은 이를 올려놓고 태웁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을 목격하였습니다. 왕자님은 스승께 물었습니다.

"무슨 일을 하는 것입니까?"
"죽은 가족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냅니다."
"죽는다는 것이 뭡니까?"
"이 세상의 인연을 다하여 떠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와 영원히 함께 할 수 없습니까?"
"그렇습니다. 왕자님이 태어나실 적에 어마마마와 헤어지셨듯이 언젠가는 사랑하는 아바마마와도 헤어질 것입니다."

어린 왕자는 죽는다는 것은 고통스럽고 헤어지는 것은 두렵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떻게 하면 죽음에서도 해방되고 헤어짐에도 고통을 받지 않을까? 어떻게 해야만 저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을까 고민이었습니다.

어린 왕자는 이렇게 살아가고 늙어가고 병들어가며 죽어헤어진다는 것, 생로병사가 모두 고통인 것을 일찍 깨닫고 어떻게 하면 이 고통을 완전히 일시에 해결할 수 있을까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어린 왕자가 나무 아래앉아 오랫동안 깊은 명상에 잠겨있는데 주변의 다른 나무들은 시간을 따라 해를 따라 그늘이 옮겼는데 오직 왕자님에게 그늘을 드리우고 있던 나무만 그냥 그대로 왕자에게 서늘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합니다. 아버지 슛도다나 왕은 그러한 왕자의 거룩한 모습을 먼 발치에서 보고 두 손을 모아 예배를 드렸다합니다.

이렇듯, 부처님께서는 미혹과 욕정에 사로잡혀 길을 잃고 헤매는 중생의 고통을 해결해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가봅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천번 만번오시어 우리 삶의 고통을 덜어주신다해도 내가 해결하지 못하면 그 누가 나를 도와 나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에 의지하여 스스로를 돕지 않으면 부처님인들 예수님인들 다 무슨 소용있겠습니까?
스스로를 구하는 일에 게으름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 오신 까닭은 정녕 그러할 것입니다.

2001. 5. 1. 일여

댓글을 달아 주세요

부처님 오신 까닭은? (1)-천상천하 유아독존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작은 나라의 왕자로 오시어 온세상의 등불이 되신 부처님께서는 왜 이 세상에 오셨을까 새삼 생각해보게 됩니다.
누구나 깨닫기만 하면 부처님이라 합니다. 나도 깨닫기만 하면 부처님이라 합니다.
따라서 2600여년전, 음력 사월초파일 오늘 오신 부처님은 정확하게 석가모니 부처님을 두고하는 말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본명은 고타마 싯다르타입니다.

고타마왕자님의 아버지는 슛도다나 정반왕이시고 어머니는 마야부인 왕비이십니다.
마야부인 꿈 속에 하얀 코끼리가 부인의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꾸십니다. 그래서 잉태하신 분이 바로 석가모니부처님이십니다. 일종의 태몽이지요. 달이 차고 해산일 가까워지자 예전 우리네 풍습과도 같이 마야부인은 친정나라로 가시게 되었습니다. 많은 시녀들과 신하들이 왕비마마를 함께 따랐겠습니다.
왕비마마 행렬이 아름다운 룸비니 동산을 지나갈 적에 마야부인은 불행하게도 심한 산통을 겪게 됩니다. 어쩔 수 없이 동산의 나무 밑에 천막으로 치고 거처를 마련하여 부인은 해산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만 난산(難産)이었나 봅니다.
물론 전설에는 신비스럽게 전해져옵니다만 곰곰이 생각하면 분명 난산이었나 봅니다. 부인은 정상적인 분만을 하지 못하시고 일어나시어 나무가지를 잡고 아이를 낳게되는데....어찌 이런 일이? 아이가 옆구리를 뚫고 태어났답니다.
태몽의 하얀 코끼리가 옆구리를 뚫고 들어온 그 자리로 아기가 태어났다합니다. 요새 상식으로 이해하자면 제왕절개수술이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왕자님이 탄생하시었다니 전령은 슛도다나 왕에게 이 기쁨을 전하고 나라는 온통 잔치 분위기였을 겁니다. 그러나 마야 부인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시고 일주일만에 돌아가시게 됩니다. 당시의 의술로서는 감당키 어려운 수술이었나 봅니다. 불행한 왕자님의 탄생이십니다.

왕자님의 탄생에 있어서 가장 신비스런 점은 지금부터 이야기됩니다.
바로 이 이야기 속에 부처님이 이 세상 오신 까닭이 담겨있을 겁니다.
어머니의 옆구리를 뚫고 태어나신 왕자님은 손가락 하나를 높게 들고 아장아장 동서남북으로 일곱 걸음씩을 걸어다니시며 크게 외쳤답니다.

" 天上天下 唯我獨尊 !"

천상천하 유아독존 !


[고타마 싯다르타 왕자님의 탄생 - 송광사 대웅보전 불단 팔상도 제2상 (비람강생상)]


이 말을 그대로 옮기면,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엄하도다." 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거짓말도 유분수지'라며 믿지 않으려 말고 이야기를 들어야 됩니다. 인류의 위대한 성인들의 탄생에는 이렇듯 신비스런 일들이 나타나며 또 그렇게 꾸며지기도 합니다. 그 까닭을 이해하고 깨우치기를 노력하여야지 따지지 말기 바랍니다.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엄하다'!?

'오직 나 홀로' 라니 누구 말입니까?
고타마 자신만이 그러하단 말입니까?
아닙니다.
이 글을 읽고 이 말을 깨닫는 모든 이들이 바로 '오직 나'이며 그런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존엄한 자 입니다. 고타마 한사람의 '오직 나'가 아닌, 이 글을 쓰는 나 자신에게도 '오직 나'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자신에게도 '오직 나'자신이 가장 존엄한 존재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봅시다. 이 세상에서 정말로 정말로 가장 소중하고 존엄한 것이 무엇인가를............. 진실로 진실로 '나' 자신 아닙니까? 내가 없으면 무슨 소용있습니까?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자아 존엄성'을 선언하시기 위해 이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 어리석고 미혹한 중생들로 하여금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고 깨끗하게 꾸미는 일에 정진케 하시기 위하여 제 어미를 죽이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울진대 어찌 더러운 곳에 가서 자신을 더럽히겠습니까?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할진대 어찌 게으름과 방일함으로 자신을 함부로 다루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존엄할진대 어찌 이 세상의 어둠과 고통을 못들은 채 하고 자신의 영욕만을 채우려 하겠습니까?

우리 모두는 이제부터라도 가장 존엄한 나를 가꾸고, 가장 소중한 나를 가꾸어 나가는 일에 게으름이 없도록 정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 오신 날, 오늘 우리는 다시 한번 '자아의 존엄성'을 자각하고, 나아가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하는 일에 게으름 없이 정진해나갑시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2001. 5. 1. 一如 황보근영

댓글을 달아 주세요

"어서 죽기를 기다릴 뿐.."

삶과 죽음 이야기 2013. 1. 3. 09:19 Posted by 문촌수기

(18) "어서 죽기를 기다릴 뿐.."

충무공의 亂中日記(난중일기)는 7년 전쟁 중에 쓰여진 전장의 생생한 기록이며, 어머니를 향한연서(戀書)이며, 직책에 대한 번뇌와 갈등을 풀어놓는 위안이었다. 이 난중일기 속에는 장군이스스로 죽기를 기다리는글이 나온다. 특히 사랑하는 어머니의 죽음은 그를 더욱 더 죽음에 가까이 가게 한 듯하다. 만약 나 또한 사랑하는 어머니가 돌아가신다면 그 마음이 어떠할까? 그 죄를 어찌할까?

장군의 난중일기는 왜놈들의재침이 임박한 정유년(1597년) 4월초 1일 "옥문 밖으로 나왔다"는 말로 반년만에 다시 계속되어 "울적한 마음 한층 이기기 어렵다"고 적혀 있다.
출옥한지 열흘째 되는 4월11일 일기는 이렇게 적고 있다.

"새벽에 꿈이 몹시 산란하여 마음이 매우 불안하다. 병드신 어머님을 생각하여 눈물이 흐르는 것을 깨닫지 못하다. 그래서 종을 보내서 어머님의 안후를 알아 오게 하였다."

그로부터 이틀 뒤인 4월 13일.

"조금 있다가 종 순화가 배에서 와서 어머님의 부고를 전한다. 뛰쳐나가 뛰며 뒹구니 하늘의 해조차 캄캄하다.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이야 이루 다 어찌 적으랴(뒷날 대강 적었다)."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한 어머니는 아들이 다시 옥에 갇혔다는 말을 듣고 크게 근심하시어 병이 드셨고 그 길로세상을 떠났으니 자식의 마음이야 어찌 성할 구석이 있을 것인가?
.
"마을을 바라보며 찢어지는 아픔이야 어떻게 다 말하랴. 집에 이르러 빈소를 차렸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나는 맥이 다 빠진데다가 남쪽 길이 또한 급박하니 부르짖으며 울었다. 다만 어서 죽기를 기다릴 뿐이다...."(정유 4월16일)

"일찍 길을 떠나며 어머님 영 앞에 하직을 고하고 울며 부르짖었다. 어찌하랴, 어찌하랴. 천지간에 나같은 사정 또 어디 있을 것이랴. 어서 죽는 것만 같지 못하구나..."(정유 4월19일)

정유년 9월, 충무공은 이 12척의 전선으로 1백30여척이 몰려든 왜군과 싸워 기적과도 같은 명량대첩의 전과를 거두게 된다. 이 해전 전야 의 '난중일기'는 특히 주목을 끈다.

"여러 장수들을 불러 모으고 '병법에 이르기를 죽으려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 하였고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모두 오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고 엄격히 약속하였다. 이날 밤 신인이 꿈에 나타나 가르쳐 주기를 '이렇게 하면 크게 이기고 이렇게 하면 진다'고 하였다."(정유년 9월15일).


그 뒤 충무공의 장렬한 죽음에 대해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으나 '난중일기'에는 물론 그 기록은 없고 있을 수도 없다.

<1998년 6월 30일 (월) 조선일보 [우리문화 유산기행-24] 이순신장군의 `난중일기'에서 많이 참조하였습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삶과 죽음 이야기 2013. 1. 3. 09:18 Posted by 문촌수기

(17)"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이 말은 충무공 이순신이 장렬히 전사하면서 남긴 말씀이란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사람이 죽을 때 남긴 말은 그 분의 삶과 철학의 정수(精髓)를 담고 있으며 각별한 의미로 전해진다. 또한 그 분의 인품을 더욱 고상하고 멋들어지게 미화시키기도 한다. 마지막 말씀 한마디로 모든 것이 용서되기도 한다.

오늘은 마침 충무공 이순신 탄신 기념일이다. 장군은 애국심과 충성심이 강하고 전략에 뛰어난 우리 역사상 으뜸가는 용장이시면서 나아가 우리 역사상 세종대왕과 더불어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시다. 그러나 이렇게 존경받는 장군의 삶과 죽음은 매우 장중하면서도 매우 비극적이었다. 장군의 탄신 기념일을 계기로 장군의 삶과 죽음을 돌아본다.


<장군의 삶>
장군은 1545년 한성부 건천동(지금의 서울 인현동)에서 부친 덕연군 이정의 사형제 중 셋째아들로 태어나셨다. 공의 모친 초계(草溪) 하씨의 꿈에 시아버지가 나타나 말씀하시기를 " 이 아이는 반드시 귀인이 될 것이니 이름을 순신이라고 하라"고 한 괴이한 징조가 있어서 선공이 그대로 명명을 했던 것이다.
장군은 어려서부터 무인의 용력과 문인의 재지를 겸비하여 문학을 공부하다가 뜻한 바 있어 22세에 들어서 무예를 연마하기 시작하여 32세 때 비로소 무과에 등제하셨다. 그래서 그 해 겨울에 일종의 초급장교인 권관(權管)으로 임명되어 함경도에 부임하니 공으로서는 첫 벼슬에 오른 셈이다. 공은 말과 행동이 엄격하고 지혜와 용맹이 특출하였으므로 다른 무사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학문과 서예에까지도 실력을 겸비하셨다.
소년시절부터 같은 동네에서 자라온 류성룡은 그의 초인적인 능력을 일찍이 알아 왔는데 그때에 전랑(銓郞)(정부의 인사관)이었던 이율곡이 류성룡을 통하여 서로 만나기를 청하였으나 "우리는 종친이라 당연히 만나야 하지만 전랑으로 있을 때만은 만날 수 없다"고 거절하였으니 이는 그의 청렴함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라 하겠다.

1591년 2월 당시 재상이었던 류성룡의 천거로 장군은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여수에 초임하니 47세의 2월, 임진란이 일어나기 바로 전해였다. 공은 장차 왜적이 쳐들어올 것을 직감했다. 조정에서의 분당에 의한 의견 대립을 무시하고 자신의 권한과 범위 내에서 전쟁준비에 열중하셨다. 1592년 왜적이 부산을 침략하자 '옥포대첩' 시작으로 '한산대첩, 부산대첩' 등 크고 작은 전투에서 연전연승해 제해권을 장악, 나라를 구한 영웅이었다.

1597, 정묘년에 또 다시 왜군은 쳐들어왔으며 원균이 패사하면서 충무공 장군은 통제사로 복직, 여병과 전함 12척으로 왜군의 330척을 격파한 이른바 명량해전 대승첩을 거두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끄니, 이는 세계 해전상 유래 없는 역사적 전승이었다.

<장군의 죽음>
1598년 8월 17일 임진란의 원흉 풍신수길이 죽으매 왜적의 철군이 시작하였다. 그러나, 공은 이를 용납하지 않고 마지막 달아나는 왜함 500여 척을 추격하여 남해 노량에서 큰 격전을 벌였다. 공은 밤새 독전하다가 날이 샐 무렵에 탄환을 맞아 전사하셨다.(1598년 11월 19일)
임종시 유언에 따라 전투가 끝난 뒤에 발상(發喪)하였으니 향년 54세였다. 그 때 하신 말씀이 바로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고 하니 이는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질 것을 염려하시며 죽어서도 조국을 구하고자는 충정(忠情)이었으리라. 이 마지막 격전으로 적은 크게 패하여 500여 척의 전함중 겨우 50척만이 남해로 달아났다한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그는 스스로 죽기를 작정하며 이 전투에 임하였다고.
나 같은 문외한은 그 뜻을 알 까닭이 없지만, 장군은죽음으로서 영원히 민족의 얼 속에서 살아 계신다. 살아 있어도 죽은 것과 다름없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장군은 죽어서 영원히 산 사람이 되셨다.

 

재혁 at 06/02/2007 04:05 pm comment

ajtwu 멋져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