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2주일이 되었다.
성전 로비에 계신 성모상 발치와 성전 제대에도 대림환 양초가 두 개 밝혀져 있다. 미사가 시작되고 신부님은 제단 오른편에 준비된 성수통에 축성하신 후 성수를 담아 신도들에게 뿌리셨다.


성탄을 기다리는 이 시기에 왜 성수를 뿌릴까, 새삼 궁금했다. 교리와 전례공부를 했지만 잊고 있었다.
그것은 세례의 기억을 상기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다리며, 자신의 삶을 깨끗하게 하고 성령의 은총으로 충만해지도록 하느님의 축복을 청하는 행위란다.
그 때에 성가대에서는 가톨릭성가 67장 2절을 반복하며 불렀다.
"우슬초로 정화수를
뿌리소서 깨끗해지리다.
저를 씻어주소서. 눈보다 희게
눈보다 더 희게 되리라
깨끗해지리다."

'우슬초', 처음 듣는 이름이다. '웃을 초'는 아닐테지? '웃을 초'라도 좋으련만, 웃을 수만 있어도 천국이 가까울터니.
미사 전에 얼른 휴대폰으로 검색해봤다.
우슬초는 한자였다. '소 우(牛)에, 무릎 슬(膝)', 직역하니 '쇠무릎풀'이다. 우슬초(牛膝草) 마디가 소의 무릎뼈를 닮았기에 부쳐진 이름이란다.
그러나, 성경 속의 우슬초는 성경 번역 시 편의상 '우슬초'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실제 식물은 이스라엘 현지에서 자라는 마요람의 일종이며, 영어로는 '시리안 히솝(Syrian hyssop)' 으로 한국의 우슬초와는 영 딴 판의 풀꽃이다.



■ goodnews 자료실에 찾은
- 식물, 성경의 세계 : 우슬초
[2013년 7월 28일 연중 제17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모세는 이집트를 떠날 때 여러 재앙으로 파라오를 위협한다. 마지막 재앙은 이집트 내에 모든 가정의 맏아들이 죽는 참사였다. 물론 유다인은 예외다. 재앙을 피할 방법을 모세는 제시한다. ‘너희는 작은 짐승 한 마리를 파스카 제물로 잡아라. 대야에 받아놓은 피에는 우슬초 한 묶음을 담가라. 그리고 그것으로 문설주에 피를 발라라.’(탈출 12.21-22) 그날 밤 천사는 문설주에 피 묻은 흔적이 있으면 그 집은 지나갔다. 유다인의 집이었기 때문이다. 피의 흔적이 없는 집은 모두 맏아들이 죽는 이변이 일어났다. 파스카 축제의 유래가 된 사건이다.

이후 유다인은 귀신을 쫓거나 재앙을 물리치는 예식을 할 때는 우슬초를 사용했다. 제물의 피를 뿌리는 도구로 쓴 것이다. 다윗도 밧세바 사건*을 겪은 뒤, 나탄 예언자 앞에서 우슬초 이야기를 꺼낸다. ‘우슬초로 제 죄를 없애 주소서. 제가 깨끗해지리이다. 저를 씻어 주소서. 눈보다 더 희어 지리이다.’(시편 51,9) 오늘날 성수뿌림의 노래가 된 시편이다. 공동번역은 달리 표현했다. ‘정화수의 채로서 제게 뿌려주소서 저는 곧 깨끗하여 지리이다.’
우슬초를 ‘정화수의 채’로 의역했음을 알 수 있다.

* '다윗과 밧세바 사건'에서 레나드 코헨(Cohen)은 '할렐루야'를 노래했다. 내가 참 좋아하는 노래다.


우슬초는 히브리말 에조브(ezov)다. 희랍어는 히소포스(hyssopos) 영어는 히솝(hyssop)이다. 중세 때는 매 주일미사 전에 사제가 교우들에게 성수를 뿌렸다. 성수를 적셔 뿌리는 도구는 언제나 히솝 풀이었다. 여기서 ‘히솝의 채’라는 말이 나왔다. 전 세계에 20여 종이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중앙아시아와 남유럽이 원산지며 50cm까지 자라고 여러 색깔의 꽃이 피는 것으로 알려졌다. 꽃잎과 잎은 차로 마시거나 향신료로도 사용되었다. 꿀에 재어놓았다가 호흡기 질환에 치료제로 사용되기도 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에 거기에는 신 포도주가 담긴 그릇이 놓여 있었다.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 가지에 꽂아 예수님의 입에 갖다 대었다.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 말씀하셨다. “다 이루어졌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 (요한 19.29-30)

"성전 오른편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보았노라 알렐루야
그 물이 가는 곳마다 모든 사람이
구원되어 노래하리라 알렐루야"
가톨릭성가 67장 1절은 에제키엘 예언서 47장을 노래하였다.
그래서 이 강이 흘러가는 곳마다 온갖 생물이 우글거리며 살아난다. 이 물이 닿는 곳마다 바닷물이 되살아나기 때문에, 고기도 아주 많이 생겨난다. 이렇게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에제 47,9)
이 성가 67장 1절은 세례식이나 부활시기 성수 축성때 부른다. 베이스로만 불러도 좋다.
■ 우리나라 들에 핀 '쇠무릎'은
성경속의 우슬초와 모습도 다르다.
● 성경 속의 우슬초
-과 (Family): 꿀풀과
-속 (Genus): 히솝속 (Hyssopus)
-종 (Species): Hyssopus officinalis L.
● 우리나라의 우슬초(쇠무릎)
-과 (Family): 비름과
-속 (Genus): 쇠무릎속
-종 (Species): 쇠무릎 (Achyranthes japonica) 또는 회우슬 (Achyranthes bidentata)

우슬이라는 풀의 뿌리도 약제로쓴다는 것도 이제서야 알았다.

이 글을 써면서 요한복음 19장을 자세히 읽고 이제서야 '우슬초'와 '해면'을 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티소의 그림을 보게 되었다.
○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다
(요한복음 19장)
28 그 뒤에 이미 모든 일이 다 이루어졌음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시려고 “목마르다.” 하고 말씀하셨다.
29 거기에는 신 포도주가 가득 담긴 그릇이 놓여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듬뿍 적신 해면을 우슬초 가지에 꽂아 예수님의 입에 갖다 대었다.
(So they put a sponge soaked in wine on a sprig of hyssop and put it up to his mouth.)
30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다 이루어졌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
■ 해면(海綿)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믿고 성경을 읽었는데, 여태껏 해면(海綿)이 이름 그대로 '바다의 솜'이며 영어로는 "스펀지(sponge)'라는 걸 몰랐다.
또한 주방의 수세미로 사용되는 스펀지가 공산품이 아니라 '바다 속 생물'이란 것도 몰랐다. 아하, 모르는게 천지구나. 어디가서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말아야지. '지자불언 언자부지 (知者不言 言者不知)'라는 노자의 말씀에 고개 숙여진다.




식물 같지만 사실 간단한 형태의 동물로, 많은 세포들이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어 살고 있는 개체의 집단이며, 각각의 세포들은 하나의 덩어리 내에서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 일반적으로 수류를 일으켜 물속에 있는 식물 플랑크톤 등을 걸러먹으며, 식물이 없는 심해에 사는 종들은 육식성이다. 간단한 형태이니만큼 포유류 같은 복잡한 몸구조를 가진 동물에게는 불가능한 일들이 가능하다. 자르는 건 물론이고 아예 체로 걸러버려도 회복한다.
계통분류학적으로 동물계 생물 중 인간과 가장 멀다. 보통은 몇년 살지 못하지만, 몇몇 종은 200년에서 5천년, 일부 육방해면류는 최대 1만 년 이상까지 생존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수분을 잘 빨아들이기 때문에, 과거 서양권에는 이걸로 그릇이나 몸을 닦을 때 쓰는 경우가 많았었다. 우리가 흔히 스펀지하면 떠올리는 주방용품 '스펀지'의 유래가 이것이다. 지금은 합성수지로 만든 인조 스펀지로 대체되었지만 명칭만은 관습적으로 남아있다.
고대 로마에서는 발전된 기술력으로 수세식 화장실과 하수도 시스템을 이용했고 자신들이 정복한 지역에서도 수세식 화장실을 만들었는데, 이때 뒤처리를 할 때 휴지 대신 이 해면으로 만든 테르소륨(Tersorium)을 사용했다. 문제는 한 번 쓰고 버리는 게 아니라, 소금물에 담가서 헹궜다가 다른 사람이 다시 쓴다는 것. 두 번째 사람이 닦은 후에는 역시 소금물에 헹궈두고 다음 사람이 뒤처리하는 게 무한반복이었다. 이는 공동화장실과 하수도가 마련되어 있는 발달된 고대 로마에서조차 전염병이 퍼질 위험이 있는 방식이었다.
십자가형을 당한 예수에게 한 로마 병사가 해면에 신 포도주를 적셔서 주었는데, 이것이 예수를 모욕하기 위해서라는 연구가 있는 반면, 아니라는 주장도 있어 결론이 나지 않았다.
당장 구글에 'Jesus sponge'라고만 쳐봐도 꽤 많은 글이 있고, 저명한 신학자들도 의견이 엇갈리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지금까지는 인정을 베푼 것이라 여겼는데 이제보니 이 행위는 끝까지 예수를 욕되게 한 짓이라 생각든다.


모욕이었다는 측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당시 로마 제국에서는 화장실에서 적신 해면으로 뒤를 닦았으니 모욕을 위한 행위라고 해석함이 타당하다.
요한복음의 저자가 시편 69장 21-22절*을 예수에 대한 예언이라보고 유사한 장면을 삽입한 것이다. 중세 때는 해당 해석이 지배적이어서, 성화에 예수에게 해면을 준 병사를 일부러 추레하게 그리는 풍습이 있었다.
마르코 복음서(4장 36절)에서는 신 포도주를 먹이는 사람이 '자,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봅시다.'며 빈정거리는 말을 하는 걸 보면 모욕하는 것이 맞는다.
* 시편69장
21 모욕이 제 마음을 바수어 저는 절망에 빠졌습니다. 동정을 바랐건만 허사였고 위로해 줄 이들을 바랐건만 찾지 못하였습니다.
22 그들은 저에게 음식으로 독을 주고 목말라할 때 초를 마시게 하였습니다.
■ 티소의 그림,
예수의 십자가와 죽음




십자가에 못 박히시다. 요한복음19장
17 예수님께서는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 터’라는 곳으로 나가셨다. 그곳은 히브리 말로 골고타라고 한다.
18 거기에서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리고 다른 두 사람도 예수님을 가운데로 하여 이쪽 저쪽에 하나씩 못 박았다.
19 빌라도는 명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달게 하였는데,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라고 쓰여 있었다.

20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 도성에서 가까웠기 때문에, 많은 유다인이 그 명패를 읽게 되었다. 그것은 히브리 말, 라틴 말, 그리스 말로 쓰여 있었다.
21 그래서 유다인들의 수석 사제들이 빌라도에게 말하였다. “‘유다인들의 임금’이라고 쓸 것이 아니라, ‘나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 하고 저자가 말하였다고 쓰시오.”
22 그러나 빌라도는 “내가 한번 썼으면 그만이오.” 하고 대답하였다.
23 군사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나서, 그분의 옷을 가져다가 네 몫으로 나누어 저마다 한몫씩 차지하였다. 속옷도 가져갔는데 그것은 솔기가 없이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었다.
24 그래서 그들은 서로, “이것은 찢지 말고 누구 차지가 될지 제비를 뽑자.” 하고 말하였다. “그들이 제 옷을 저희끼리 나누어 가지고 제 속옷을 놓고서는 제비를 뽑았습니다.” 하신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그래서 군사들이 그렇게 하였다.
25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26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27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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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 대성당, 롱기누스
예수를 창으로 찌르고도 그리스도교의 성인이 된 롱기누스ㅡ신양란, 에서 가져왔습니다.롱기누스Longinus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죽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창으로 예수의 옆구리를 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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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거두시다
28 그 뒤에 이미 모든 일이 다 이루어졌음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시려고 “목마르다.” 하고 말씀하셨다.
29 거기에는 신 포도주가 가득 담긴 그릇이 놓여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듬뿍 적신 해면을 우슬초 가지에 꽂아 예수님의 입에 갖다 대었다.
30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다 이루어졌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
군사들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다
31 그날은 준비일이었고 이튿날 안식일은 큰 축일이었으므로, 유다인들은 안식일에 시신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지 않게 하려고, 십자가에 못 박힌 이들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시신을 치우게 하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하였다.
32 그리하여 군사들이 가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33 예수님께 가서는 이미 숨지신 것을 보고 다리를 부러뜨리는 대신,
34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35 이는 직접 본 사람이 증언하는 것이므로 그의 증언은 참되다. 그리고 그는 여러분이 믿도록 자기가 진실을 말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36 “그의 뼈가 하나도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 하신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런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37 또 다른 성경 구절은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이를 바라볼 것이다.” 하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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