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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찾아서'에 해당되는 글 56건

  1. 2013.01.01 (6) 심우도 이야기
  2. 2013.01.01 (5) 점심(點心)
  3. 2013.01.01 (4)아직도 그 처녀를 안고 있느냐?
  4. 2013.01.01 (3) 나날이 좋은 날
  5. 2013.01.01 (2)가시나무와 무심
  6. 2013.01.01 (1)눈물과 마음

(6) 심우도 이야기

마음을 찾아서 2013. 1. 1. 21:52 Posted by 문촌수기
Category: 마음을 찾아, Tag: 여가,여가생활

♥마음 - (6) 심우도 이야기

'마음대로 되는 것이 있다'는 로고의 TV선전을 보았습니다. 세상사 마음대로만 된다면 정말 살 맛나는 세상일텐데 말입니다. 그래서 마음이란 놈은 대체 어디에 있고 어떤 놈인지 찾아봅니다.

산에 가면 절이 있고 절에 가면 부처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절은 산의 마음이고 산은 절의 뜰이다.' 라고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만을 뵈러 절에 가진 않습니다. 저는 절에 가면 법당의 좌우후면을 돌아 벽화를 보는 재미도 갖고 절에 갑니다. 벽화 속에서 부처를 만나고 화상을 만나고 고승들을 만납니다. 불교 벽화는 매우 다양하지만 그 중 많은 사찰이 심우도의 벽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마음이야기하면서 빠트릴 수 없는 이야기가 심우도 이야기입니다.

'심우도(尋牛圖)' 는 선(禪)의 수행 단계를 소와 동자에 비유하여 도해한 그림으로서, 자기의 참마음을 찾고 깨달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그렸습니다. 10단계로 나누어 그렸다하여 '십우도(十牛圖)'라고도 합니다. 중국 송나라 때 만들어진 보명(普明)의 심우도와 확암(廓庵)의 심우도가 우리나라에 전해지는데, 대부분 확암의 심우도가 많습니다. 올 봄에 제가 한국사상의 순례를 나서면서 찾아간 의성의 고운사에 있었고 포항의 오어사에도 심우도가 그려져 있었고 대승선종 승보종찰인 송광사의 승보전에도 심우도 벽화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심우도는 어린 동자가 고삐를 들고 잃어 버린 소를 찾아서 숲으로 들어가는 그림부터 시작합니다. 숲에서 소의 발자국을 찾아 따라가다 소를 발견하게 되고 소를 붙잡아 고삐를 매게 됩니다. 소는 길들여지지 않아 거칩니다. 이제 동자는 이 거친 소를 길들이게 됩니다. 그림에는 거친 소를 까만 색으로 나타내고 길들여져가는 소는 하얀 색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제 완전히 길들여진 하얀 소를 타고 동자는 피리를 불며 집으로 돌아옵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소에 대한 생각은 잊고 자기만을 생각하며 나아가서는 소도 자기존재도 잊게 되는 상태가 됩니다. 이제 주관도 객관도 없는 텅빈 세계에 모든 세상이 있는 그대로 비쳐지는 상태를 얻게 됩니다. 그 사이 동자는 많이 자랐습니다. 이제 보살이 되어 중생들의 저자거리로 들어가 중생들을 제도합니다. 이상의 10단계 그림을 송광사 승보전 벽에 그려진 그림을 보면서 다시 설명해봅니다.

첫째 그림은 소를 찾아나서는 '尋牛(심우)'입니다.

심우(尋牛)는 소를 찾는 동자가 망과 고삐를 들고 산 속을 헤매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이것은 처음 수행을 하려고 발심(發心)한 수행자가 아직은 선(禪)이 무엇인지 참마음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지만 그것을 찾겠다는 열의로 공부에 임하는 모습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바로 자기를 찾는 결심의 단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둘째 그림은 소의 발자국을 발견한 '見跡(견적)'입니다.

견적(見跡)은 '소의 발자국을 발견한 것'을 묘사한 것으로서, 참마음과 자기를 찾으려는 일념으로 열심히 공부를 하다가 보면 본성의 자취를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는 것을 소의 발자국을 발견하는 것으로 상징해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셋째 그림은 소를 발견한 '見牛(견우)'입니다.

견우(見牛)는 동자가 멀리 있는 소를 발견한 것을 묘사한 그림입니다. 이는 오랜 노력과 공부 끝에 자기를 찾고 본성을 깨달음이 바로 눈앞에 다가왔음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넷째 그림은 소를 잡은 '得牛(득우)'입니다.

득우(得牛)는 동자가 소를 붙잡아서 막 고삐를 낀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이 경지를 선종(禪宗)에서는 견성(見性)이라고 하는데, 마치 땅 속에서 아직 제련(製鍊)되지 않는 금광석을 막 찾아낸 것과 상태라고 합니다. 이때의 소의 모습은 검은색으로 표현하는데, 아직 탐진치 삼독(三毒)에 물들어 있는 거친 본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에서 검게 표현합니다. 아직 삼독에 물들어서 거칠고 일순간의 탐욕을 다스릴 길이 없습니다. 더욱 정진하고 공부에 힘써야 하는 상태입니다.

다섯째 그림은 '牧牛(목우)'입니다.

 



목우(牧牛)는 거친 소를 길들이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이 때의 소의 모습은 검은 색에서 흰색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삼독의 때를 지우고 자신을 다스려 자기 마음을 유순하게 길들이는 단계입니다. 선(禪)에서는 이 목우의 단계를 가장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보조국사 지눌스님은 자신의 호를 목우자(牧牛子)라 하였답니다. 깨달음이란 외부의 경(境)에 의해서 오직 자신의 마음에서 생겨나는 것이므로 소의 고삐를 더욱 단단히 잡아서 늦추지 말고 머뭇거리는 생각이 싹트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섯째 그림은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騎牛歸家(기우귀가)'입니다.

기우귀가(騎牛歸家)는 동자가 구멍 없는 피리를 불며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때의 소는 완전히 흰색으로서 동자와 일체가 되어서 피안의 세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때 구멍 없는 피리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가히 육안으로 살필 수 없는 본성의 자리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내가 내 마음을 타고 본래의 세계로 되돌아오게 됩니다.

일곱째 그림은 소는 잊고 자기만 있는 '忘牛存人(망우존인)'입니다.

 



망우존인(忘牛存人)은 집에 돌아와서는 그동안 애쓰며 찾던 소는 잊어버리고 자기만 남아 있다는 내용입니다. 본래의 자기마음을 찾아 이제 나와 하나가 되었으니 굳이 본성에 집착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여덟째 그림은 소도 사람도 모두 잊은 '人牛具忘(인우구망)'입니다.

인우구망(人牛具忘)은 소를 잊은 다음 자기 자신도 잊어버리는 상태를 묘사한 것으로서 텅 빈 원상(圓象)만을 그리게 됩니다. 객관적인 소를 잊었으면 이번에는 주관적인 자신 또한 성립되지 않는다는 원리를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본성에도 집착하지 않고 나를 모두 비웠으니 자타가 다르지 않고 내외가 다르지 않습니다. 전부가 오직 공(空)입니다.

아홉째 그림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返本還源(반본환원)'입니다.

 



반본환원(返本還源)은 이제 주객이 텅 빈 원상 속에 자신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비침을 묘사합니다. '산은 산이오. 물은 물이라.' 만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참된 지혜를 상징한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모두 하나같이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열번째 그림은 저자거리에서 중생을 제도하는 '入廛垂手(입전수수)'입니다.

입전수수(入廛垂手)는 지팡이에 큰 포대를 메고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때 큰 포대는 중생들에게 베풀어 줄 복과 덕을 담은 포대로서, 불교의 궁극적인 뜻이 중생의 제도에 있음을 상징한 것입니다. 표주박 차고 거리에 나가 지팡이를 짚고 집집마다 다니며 스스로 부처가 되게 하고 모든 중생을 제도하여 불국(佛國)을 건설한다는 내용입니다.

심우도는 볼 때의 마음에 따라 달리 보이는 그림입니다. 때론 소가 본성으로 나타나고 때론 소가 실존으로 나타납니다. 아직도 '소와 동자의 관계가 나와 무슨 소용 있는가' 묻기도 하지만 나는 아직도 나의 소를 잡지 못했습니다. 내 마음을 나는 아직도 모릅니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찾아 다녔던가? 대체 찾은 것은 그 무엇이고 잃은 것은 또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책꽂이에 키큰 책들사이에 묻혀 잊혀졌던 삼중당 문고판 [한용님의 '님의 침묵'] 시집을 펼쳐 뒤적거리다 화두(話頭)같이 마음에 파장을 던지는 한 수의 시를 찾아 읽게 됩니다.

 

심우장(尋牛莊) 1  - 만해선사
잃을 소 없건만은 찾을 손 우습도다
만일 잃은 씨 분명타 하면 찾은들 지닐쏘냐
차라리 찾지 말면 또 잃지나 않으리라.

심우장(尋牛莊) 2  - 만해선사

소 찾기 몇 해던가 풀길이 어지럽구야
북악산(北岳山) 기슭 안고 해와 달로 감돈다네
이 마음 가시잖으매 정녕코 만나오리.

심우장(尋牛莊) 3  - 만해선사

찾는 마음 숨는 마음 서로 숨박꼭질할 제
곧 아래 흐르는 물 돌길을 뚫고 넘네
말없이 웃어내거든 소잡을 줄 아옵서라.

〈심우장 1〉은 초장 “잃은 소 없건만은 찾을 손 우습도다”는 우리의 본래 자성은 불생불멸이고 불구부정이다. 따라서 잃어버릴 것도 찾을 것도 없는 자리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소를 타고 소의 등 위에서 소를 찾듯이 마음을 가지고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며 스스로의 마음을 찾는다.

중장은 설사 마음을 잃어버렸다 하더라도 실체가 없는 마음을 찾아서 지닐 수 있겠느냐는 뜻이다. 종장의 “차라리 찾지 말면 또 잃지나 않으리라”는 중국 선종의 6조 혜능의 자성게(自性偈)의 뜻을 용사(用事)한 것이다. 혜능의 “본래무일물 하처염진애(本來無一物 何處染塵埃: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디에 먼지가 물들겠는가)”는 마음(一物)은 실체가 없어서 번뇌망상의 진애가 낄 수가 없으므로 닦을 것도 없다는 것이다. 찾을 것도 잃을 것도 없
는 마음의 본래자리를 읊은 것이다.

〈심우장 2〉의 초장은, 마음을 찾아 참선 수행하느라 여러 해를 보내면서 그 동안 번뇌와 갈등 속에 시름한 것을 ‘소 찾기 몇 해던가 풀길이 어지럽구야’로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중장은 북악산에 해와 달이 감도니 멀지않아 종장에서 결구했듯이 소(마음)를 찾아 만나리라고 읊은 것이다.

〈심우장 3〉 초장은 소(마음)를 찾아 고심하는 노력을 표현한 것이고, 중장은 돌길을 뚫고 흐르는 물처럼 어지러운 풀길 속을 뚫고 소를 찾아 가깝게 다가가고 있음을 멋지게 묘사한 것이다. 종장 “말 없이 웃어내거든 소 잡은 줄 아옵서라” 역시 선사의 침묵과 무언의 시어를 통해 소(마음)을 잡아 깨달음을 완성함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깨달음의 환희를 “말없이 웃어내거든”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실제(失題)〉에서도 마음을 소에 비유하여 읊고 있다.

비낀 볕 소 등 위에 피리 부는 저 아이야
너의 소 짐 없거든 나의 시름 실어주렴
싣기는 어렵잖아도 부릴 곳이 없어라
― 만해 선사, 〈실제(失題)〉

 

‘비낀 볕 소 등 위에 피리 부는 저 아이야’는 《십우도》의 ‘6단계 소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기우귀가(騎牛歸家)〉’를 용사한 것이다.

구산(九山) 선사가 〈소 찾는 노래(尋牛頌)〉을 상당법문(上堂法門, 1972년 음력 11월 15일)으로 설한 노래는 다음과 같다.

산 높고 물 깊으며 풀숲조차 울창한데
아무리 애를 써도 찾을 길이 막연하네.
애달픈 정 달래려고 두견새를 듣노라.

[출처] 심우도와 선시 |작성자 나무


11월 29일 (09:47)

 

참고 : 심우도 벽화보기 - http://www.korearoot.net/sansa/source/me6/5.htm

 

09/18/2004 10:3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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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점심(點心)

마음을 찾아서 2013. 1. 1. 21:51 Posted by 문촌수기
Category: 마음을 찾아, Tag: 여가,여가생활
09/18/2004 10:35 pm
♥마음 - (5) 점심(點心)

천 여년 전 중국에 덕산(德山)이라는 이름의 스님이 계셨습니다. 스님은 [금강경]에 관한 한 박사였습니다. 그래서 스님을 주금강(周金剛)이라 불렀다 합니다. 주(周)는 스님의 속성입니다. 그 명성에 걸맞게 스님은 금강경 관련 서적과 논문을 가득 짊어지고 다녔습니다. 스님은 문자를 부정하고 직지인심을 주창하는 남방의 선종을 꺾어주기 위해 남쪽지방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마침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배가 고픈 덕산스님은 떡 파는 할멈에게 점심끼니로 떡을 팔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떡 파는 할멈이 떡은 아니 주고 스님더러 등에 짊어지고 다니는 물건이 웬 물건이냐고 되물었습니다.

"이것은 내 평생 연구하여 기록한 금강경 관련 책이지요."라며 덕산스님은 답해주었습니다.

"그러면 제가 스님께 금강경에 대해 하나 여쭈겠습니다. 대답해주시면 떡을 그냥 드리고, 답해주지 못하면 스님께서는 오늘 점심 굶은 줄 아시오."라며 떡장수 할멈이 말했습니다.

금강경 박사가 한낱 보잘 것 없는 떡장수 노파의 금강경질문에 어찌 두려워하겠습니까. 그래서 스님은 노파의 질문을 기다렸습니다.

"스님, 금강경에 보면,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過去心 不可得, 現在心 不可得, 未來心 不可得)-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 또한 얻을 수 없다'하였는데, 스님께서는 대체 어느 마음[심(心)]에다 점(點)을 찍으시렵니까?"

어이쿠야! 그렇습니다. 과거의 마음도 없고, 현재의 마음도 없고, 미래의 마음도 없다했는데 정녕 어느 마음에다 점을 찍으려고 점심(點心)을 찾는단 말입니까? 덕산 스님은 진땀을 흘리며 말문이 막히는 참담함을 겪었습니다. 점심 굶은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덕산 스님은 떡장수 할멈이 일러주는 대로 용담스님을 찾아가 크게 깨우치고는 평생을 연구한 금강경 논문과 서적을 모두 불태웠다합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하의 모든 지식과 재주를 다 가졌더라도 하나의 터럭을 허공에 던지는 것과 같고, 세상의 중요한 일을 다 안다해도 한 방울의 물을 큰 구렁텅이에 떨구는 것에 불과하다."

과거의 마음은 이미 지나갔으니 되돌이킬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아직 오지 않아 지금 여기에 없으니 또한 짐작할 수가 없습니다. 현재의 마음도 막상 내놓으라 하면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기쁜지 슬픈지, 어여쁜지 미운지 볼래야 볼 수 없고 찾을래야 찾을 수 없습니다.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만 할 수 있다면 세상에 못할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금 여기서 내 마음이 어느 자리에 있는지 헤집어봅니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 끝에 있는지, 눈앞에 밝은 모니터 속에 있는지, 지금 마시고 있는 맥주 캔 속에 들어있는지, 안주로 씹히는 짭질하고 고소한 크래커 속에 있는지, 홀로 주무시는 어머니께 가있는지, 저 세상에 가신 아버지께 가있는지....

있는건지.......? 없는건지.......?

대체 이놈은 무엇입니까? 누구입니까?

11월 26일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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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아직도 그 처녀를 안고 있느냐?

마음을 찾아서 2013. 1. 1. 21:51 Posted by 문촌수기
Category: 마음을 찾아, Tag: 여가,여가생활
09/18/2004 10:33 pm
♥마음 - (4)아직도 그 처녀를 안고 있느냐?

탄산(坦山)스님이 젊은 수행승과 함께 길을 걷다가 냇가에 다다랐습니다. 냇가에는 아리따운 처녀가 내를 건너지 못해 안절부절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탄산 스님이 어여삐 여겨 그 처녀를 안아 무사히 내를 건네주었습니다.

"우리 같은 출가승은 여인을 가까이 해선 안된다고 들었는데, 어찌하여 스님께서는 여인을 안으셨습니까?" 한참을 걸어가다 도저히 참지 못한 듯 젊은 수행승이 물었습니다. 이에 탄산 스님은 이렇게 되물으며 답해주었습니다.

"난 진작 내려놨거늘, 넌 아직도 그 처녀를 안고 있느냐?"

탄산 스님이 처녀를 안고 내를 건넌 것은 무심(無心)에서 조건 없이 베푼 행이지만, 젊은 수행승이 계율을 운운하며 물은 것은 처녀에 대한 유심(有心)에서 나온 행이니 진정 누가 여색을 마음 속에 탐하여 안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내 속에 내가 없으니 여인은 안았어도 안은 것이 아니오, 내 속에 나로 가득하니 설령 품지 않았어도 품은 것이 됩니다. 나의 행은 무심(無心)입니까 유심(有心)입니까?
11월 25일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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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날이 좋은 날

마음을 찾아서 2013. 1. 1. 21:49 Posted by 문촌수기
Category: 마음을 찾아, Tag: 여가,여가생활
09/18/2004 10:32 pm
♥마음 - (3) 나날이 좋은 날

저자거리에서 나물을 파는 할멈은 맑은 날이나 비오는 날이나 매냥 슬픈 얼굴을 지었습니다. 그러다가 장마가 지거나 가뭄이 지면 매냥 울었습니다.
길 지나는 스님이 무릎을 굽혀 이 울보 할멈에게 물었습니다.

"어찌 할멈은 매냥 우시오. 그 사연이나 들어봅시다."

슬픈 마음을 하소연할 길 없어 답답하던 터에, 때 마침 자비로이 물어오신 스님이 여간 고맙지 아니하여 할멈은 신세타령을 늘어놓습니다.

"아, 글쎄. 이내 신세 어찌나 박복한지....
영감 일찍 보내고 어렵게 어렵게 두 딸년을 키웠건만, 그만 큰 딸은 신발장수에게 시집가고, 작은 딸은 우산장수한테 시집을 갔지 뭡니까? 맑은 날이면 작은 딸내 우산이 안 팔릴 것이고, 비오는 날이면 큰 딸내 신발이 안 팔릴 것이니....
내 팔자만큼이나 딸년들 신세도 불쌍하지 않습니까?"

할멈의 신세타령을 다 들으신 스님은 빙그레 웃으며 말을 건넵니다.

"허허 할멈. 나날이 좋은 날이지 않습니까?
맑은 날이면 큰 딸내 신발 잘 팔려 좋은 날,
비오는 날이면 작은 딸내 우산 잘 팔려 좋은 날."

마음 한 번 잘못 먹으면 나날이 슬픈 날이며
마음 한 번 돌려 먹으면 나날이 좋은 날이니 천국과 지옥이 어디 멀리 있습니까?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이날 이후 할멈은 나날이 웃는 날. 나날이 좋은 날이 되었습니다.

추풍낙엽이라더니, 오늘은 제법 찬 바람이 낙엽을 재촉합니다. 휘날리며 떨어지는 나뭇잎은 나를 슬프게도 합니다.
바람불어도 좋은 날, 추워도 좋은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입니다. 

11월 25일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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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가시나무와 무심

마음을 찾아서 2013. 1. 1. 21:48 Posted by 문촌수기

(2004 야후블로그에 올린 글을 옮김) 

Category: 마음을 찾아, Tag: 여가,여가생활09/18/2004 10:31 pm  ♥마음 - (2)가시나무와 무심


조성모씨의 [가시나무]라는 제목의 노래를 참 좋아합니다. 아름다운 가락과 생각을 깊게하여 주는 슬픈 노랫말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에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에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이 노래를 들으면서 저 자신을 돌아봅니다. 가시 많은 제 마음을 돌아보게 됩니다.
내 속에 내가 너무 많다는 것은 나만을 위하고 나만을 사랑하는 자애심을 말하나봅니다. 그러다보니 당신을 위하고 당신을 사랑하는 이타심이 스며들 공간이 없습니다. 나로 가득 차 있으니 너를 받아들인 공간이 없습니다.
비어있으면 빛이 들어 어둡지 아니하고 비어있으면 당신의 쉴 곳이 생겨 외롭지 아니할텐데, 자애심과 아집으로 가득 차 있으니 결국 그 속이 가시로 가득 찬 가시나무 숲이 되었습니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그런가봅니다. 바람부는 날이면 가시많은 가지가 서로 부대끼며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니 어찌 감히 어린 새들이 가시나무 숲에 쉼 터를 마련하겠습니까? 차라리 내 마음속이 텅 비었다가 어디에도 붙잡혀있지 않는 어린 새들처럼 자유로울 수 있다면 ........

이 노랫말 속에는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공(空) 사상이 스며 있습니다. 범어(梵語)로 '수냐타(sunyata)'로 불리는 공(空)은 '일체의 법이 다만 인연으로 생하고 인연으로 멸할 뿐이니, 그 영원하고 불변하는 실체란 있을 수 없다'는 제법무아(諸法無我)의 진리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그 궁극적 경지가 무엇인지, 또한 나를 비우는 것이 어떤 경지인지를 이 중생이 어찌 다 알 수 있겠습니까? 다만 '무심(無心)이 아닐까 무아(無我)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나를 비울 적에, 내 속에 내가 없을 적에, 내 안에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을 보담을 수 있을 터이고 내 안에 너를 안을 수 있을 터이니 이것이 삶의 행복이며 평화이지 않겠습니까?

이 중생 어림반푼도 없겠지만 그래도 이 노랫말로 '가시' 많은 이 마음을 수양해봅니다.
'나'로 가득 차 외롭고 또 괴로운 이 마음을 비우려 노력해봅니다.

'나'라는 애착의 마음을 버릴 적에 세상과 벗할 수 있고,
'나'라는 아집의 마음을 비울 적에 너를 진정 사랑할 수 있습니다.

[가시나무]를 다시 들으며 마음을 비우려 노력해봅니다.
무심(無心)과 무아(無我)를 생각해봅니다.

11월 24일 (12:22)
at 09/19/2004 08:02 pm comment

마음을 비운다는것 알고 있어도 실재로 비우기는 정말로 어려운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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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눈물과 마음

마음을 찾아서 2013. 1. 1. 21:46 Posted by 문촌수기
09/18/2004 10:30 pm  ♥마음 - (1)눈물과 마음

 

전 눈물이 많습니다.
말 보다 눈물이 많았던 어린 시절이 있었습니다.
웬일인지 가슴이 답답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지 못하면 눈물부터 나왔습니다.
엄마 앞에서도 울고, 형 앞에서도 울었습니다.
엄마와 형이 제 눈물 속에서 저의 마음을 다 읽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인지도 모르지요.
그저 마음을 다 실어 나타내지 못하니 눈물부터 나왔나 봅니다.

전 눈물 많은 자신이 미웠습니다. 지금은 아닙니다만.
그래서 울지 않으려 했는데... 어쩔 수 없었습니다. 천성인가봅니다.
어떤 이들은 저의 마음이 여린 탓으로 봅니다.
그런가 봅니다.
마음의 그릇이 작아 눈물을 담아두지 못하니 밖으로 넘치는가 봅니다.

그러나 친구앞에서, 아우앞에서는 울지 않았습니다.
제 어린 딸은 이런 아빠를 닮아 눈물이 많은가 봅니다.
아니 제 아내도 눈물이 많습니다. 걸핏하면 웁니다. 울지말라면 더 웁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애송하던 시가 있었습니다.
그 시는 눈물많은 저에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김영랑 님의 [내 마음 아실 이]입니다.


"내마음을 아실이
내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이
그래도 어데나 계실것이면

내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속임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밤 고이 맺는 이슬같은 보람을
보밴듯 감추었다 내여드리지

아! 그립다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

향맑은 옥돌에 불이달어
사랑은 타기도 하오련만
불빛에 연긴듯 희미론 마음은
사랑도 모르리 내혼자 마음은"

누가 알겠습니까?
눈물많은 이 마음은 엄마도 모르고, 형도 모르는데..........

내 아내나마 이내 마음과 이내 눈물을 알아줄까요?

난 지금도 나의 아이를 그리워하며 남몰래 눈물을 흘립니다.

11월 21일 (10:42)
선옥 at 09/18/2004 10:40 pm comment

세상에 인간은 왜 다들 고독한지 왜 인간은 고독할수 밖에 없는지 .고독한 존재인지 알것같아요 .누구나 마음 한구석이 허전한 법이죠 새로운걸 찾아 다 채웠다 생각이 되면 얼마후 다시 마음이 허전한 법이죠 .그래서 인간은 감성감성의 동물이라고 하죠 .근데 이상한건 여자보다 남자가 더 심하다는 거에요.맞는것 같아요.저 도 눈 물이 많답니다 .궁상 맞게 드라마 보며 질질짜고...과거는 과거로 묻어 두세요.다시는 꺼내 보지두 말고요.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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