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마음은 거울인가?

마음을 찾아서 2013. 1. 1. 22:00 Posted by 문촌수기
♥마음 -(16) 마음은 거울인가?

2조 혜가에게로 전해진 달마스님의 의발(衣鉢)은 3조 승찬, 4조 도신에게 전해지고, 이후 5조 홍인(弘忍)에게 전해졌습니다. 5조 홍인은 그 의발을 6조 혜능(慧能)에게 전해주는데 그 이야기가 무척이나 극적입니다.

혜능은 당시 중국 변방의 오랑캐 사람으로 소위 시골뜨기로 일찍이 부친을 여위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그럭저럭 땔감을 팔아먹고 사는 일자무식 나무꾼이었습니다. 어느날 나무땔감을 팔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불경소리를 듣고 크게 깨친바 있어 모친을 이웃에게 부탁드리고 출가하였답니다. 그때들은 불경소리는 [금강경]이었답니다.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應無所住 而生其心
불응주색생심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 응무소주 이생기심

"마땅히 색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며
마땅히 소리와 향기와 맛과 촉각과 법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 것이니,
응당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

혜능이 황매산의 오조 홍인스님을 찾아뵙고 절 집에서 방아를 찍으며 여덟 달이 지나도록 머리도 깎지 못했는데, 어느날 큰스님 홍인대사께서 달마의 의발을 전할 때가 되었다며 절 집의 모든 사람들에게 깨달은 바를 시(詩)로 써보아라 하였습니다. 수많은 제자 중에도 신수(神秀)스님이 가장 유력한 수제자였습니다. 신수스님은 절벽에다 시를 써 붙입니다.

身是菩提水 心如明鏡臺 (신시보리수 심여명경대)
朝朝勤拂拭 莫使惹塵埃 (조조근불식 막사야진애)
몸은 깨달음의 나무요
마음은 밝은 거울대라네
날마다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먼지 끼지 않도록 하리라.

모두들 칭송이 자자했습니다. 그러나 홍인대사는 신수더러 '문 앞에 이르렀으나 아직 문 안에 들어오지 않았다'하였습니다.

마음은 본시 자기의 진면목을 바라볼 수 있는 밝은 거울인데, 잠시라도 게을리 하면 띠끌먼지가 앉자 본래의 주인공을 찾지 못합니다. 때때로 털고 부지런히 닦아서 항시 맑고 밝은 마음자리를 가꾸어야 합니다. 미운 생각, 사악한 생각, 원망하는 마음, 시기하는 마음을 버리고 아름답고 깨끗한 생각, 좋은 생각, 사랑하는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더벅머리 행자 혜능도 시를 짓고 싶었습니다. 글자를 몰라 옆에 있는 스님에게 대신 써 달랬습니다.

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보리본무수 명경역비대)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 (본래무일물 하처야진애)

깨달음은 본시 나무가 아니오
밝은 거울 또한 받침이 아니네
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
어느 곳에 먼지 띠끌 낄 것인가?

주변의 많은 스님들이 놀랬습니다. 이런 오랑캐 놈이 일체의 사량분별심을 초월하는 시를 지은 것에 경탄하였으며, 한편으로는 신수스님의 글을 조롱하듯 하여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큰스님께서도 혜능의 시를 보았습니다. 그러고는 '이것도 아니다'고 하였습니다. 어느 날 큰스님께서는 방앗간을 찾아왔습니다.

"방아는 다 찧었느냐?"
"방아는 다 찧었으나 아직 털지를 못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주장자로 방아머리를 세 번 치고 나가셨습니다.

선문답(禪問答)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큰스님과 혜능 사이에는 서로에게 전할 말을 전한 것입니다. 이심전심으로 헤아린 혜능은 삼경(三更)인 한 밤중에 홍인대사의 처소를 찾았습니다. 홍인대사께서는 혜능을 인가하시고 달마스님의 발우와 가사를 건네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6조 혜능이 되었습니다. 그 날 밤중으로 혜능은 달마대사의 의발을 개나리 봇짐에 싸가지고 절집을 도망쳤습니다. 그 후 5년이 넘도록 혜능은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혜능은 우리에게 '본성은 본래 부처이며 만물은 본래 비어있는데, 어느 마음에 미추가 있고, 선악이 있고, 자타가 있겠는가'라며 가르쳐주건만 언제 깨달아 그렇게 일여(一如)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련지...... 오늘도 실없이 말 많이 했습니다. [一如]

02월 09일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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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부처에게는 마음이 없다.

마음을 찾아서 2013. 1. 1. 21:59 Posted by 문촌수기
♥마음 -(15)부처에게는 마음이 없다.

중국 선종 제3조이신 승찬(僧璨)스님께 어린 소년이 찾아와 절을 올리며 여쭙니다.
"어떤 마음을 일러 부처님의 마음이라 하옵니까?"

이에 승찬스님께서는 되묻습니다.
"지금의 네 마음은 어떠하냐?"

소년은 곰곰이 생각에 잠기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글쎄요. 지금의 제 마음은 없는 듯 하옵니다."

승찬스님께서는 소년에게 다정스레 말씀하십니다.
"너마저도 마음이 없는데 부처님에게 무슨 마음이 있겠느냐?"

"...................????????????????? !!!!!!!!!!!! ............."
승찬스님은 '마음이 곧 부처'라는 말씀으로 깨우쳤거늘 '부처에게는 마음이 없다'며 가르칩니다.

어린 소년은 또 간구합니다.
"스님, 저에게 해탈(풀 해(解), 벗을 탈(脫))을 가르쳐 주십시오."

스님께서 웃으시며 말씀하십니다.
"허허, 누가 너를 묶었느냐?"

소년은 말합니다.
"아무도 저를 묶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널 묶지 않았거늘 풀 것이 무엇 있겠느냐? 이미 해탈(解脫)하였느니라."

승찬스님의 말에 소년은 크게 깨칩니다. 이가 바로 제 4조 도신(道信)스님입니다.

2002년 02월 06일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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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마음이 곧 부처

마음을 찾아서 2013. 1. 1. 21:58 Posted by 문촌수기
♥마음 - (14)마음이 곧 부처

중국선종 초조(初祖)인 달마의 가사와 발우가 팔뚝을 잘라 바친 혜가(慧可)에게 전해졌습니다. 어느날 선종 제2조인 혜가스님에게 문둥병에 걸린 한 거사가 찾아와 참회하며 말합니다.

"전생의 지은 죄로 이렇게 문둥병에 걸렸는가 봅니다. 스님께서 저의 죄를 용서해주십시오."

혜가스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마치, 그의 스승께서 '마음을 내놓으라'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대의 죄를 내놓으시오. 내가 참회케 해주겠소."

이에 문둥이 거사는 마음을 찾지 못한 혜가스님처럼 말합니다.

"한참을 찾았으나 저의 죄를 찾지 못하겠습니다."

죄를 찾지 못했다면 이미 죄가 없게 되었습니다. 혜가스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내 이미 그대의 죄를 용서하였으니, 이제 불■법■승 삼보(三寶)를 따르도록 하시오."

문둥이 거사는 또 여쭙니다.

"스님을 뵙고 승(僧, 스님)은 알았으나, 무엇이 불(佛,부처님), 법(法,부처님의 가르침)이온지요?

혜가스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곧 불(佛)이요 또한 법(法)이 옵니다. 그런고로 불과 법에는 차별이 없는 셈이지요."

이에 문둥이 거사는 깨닫고 혜가스님의 제자가 되어 선종의 제3조가 됩니다. 이 스님은 승찬(僧璨, 스님의 옥잔)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이 어디 계신가요? 부처님의 가르침은 어디 있는가요? 곧 내 마음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곧 부처님이오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이란 말입니다. 내 마음이 부처라면 내 몸은 곧 절이 됩니다[心卽佛, 身卽寺]. 부처님이시며 진리이신 내 마음에 경배하고, 부처님을 모신 사찰인 내 몸에 경건해야겠습니다.

2002년02월 06일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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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혜가의 결심과 안심

마음을 찾아서 2013. 1. 1. 21:57 Posted by 문촌수기
♥마음 -(13)혜가의 결심과 안심

달마는 장강을 건너 하남의 숭산 소림사에 이르러 9년 동안 눕지도 않고 벽을 바라보며 앉아 수행을 하였습니다. 어찌나 눈꺼풀이 무거운지 그는 눈썹을 뽑아 버렸습니다. 그러자 그의 앉은 둘레에 푸른 잎사귀가 난 키 작은 나무가 자라났습니다. 그 잎사귀를 물에 다려 마셨더니 졸음이 달아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차(茶)의 유래라 합니다. 곧 차(茶)의 씨앗은 달마의 눈썹인 셈이지요.
그렇게 장자불와 면벽수행할 적에 어느 젊은 스님이 찾아와 제자로 삼아 불법을 깨쳐 주실 것을 간청하였습니다. 그러나 달마스님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눈발이 세차게 몰아치는 데도 그 젊은 스님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달마스님 또한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제자의 굳센 결심을 기다린 것입니다. 이심전심이었는지 제자는 스승에게 결심(決心)을 보입니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자기의 팔뚝을 잘라 바쳤습니다. 손가락 자르는 단지(斷指)의 결심을 들어봤어도 팔뚝 자르는 단굉(斷肱)의 결심이라니! 아마 스승 또한 뒤로 자빠질 만치 놀랬을 것입니다. 이에 제자가 되었지만 아직도 불안하였는지 젊은 스님은 스승에게 간구합니다.

"스승이시어. 저를 안심(安心)시켜 주십시오."
"네 마음을 내놔라. 그러면 안심(安心)케 하리라."
"............ 오랫동안 찾았으나 제 마음이 어디 있는지 찾질 못하겠습니다."
"설령 찾았다한들 그것이 어찌 네 마음이라 할 수 있겠는가? 내 이미 너를 안심케 했느니라"

이에 제자는 크게 깨닫게 되니 이 분이 바로 중국 선종 제이조(第二祖) 혜가(慧可)스님이십니다.

마음이 심히 불안하니 그 마음을 편안케 해주십사 제자는 간구했건만, 스승은 제자에게 그 불안한 마음을 내놓으라 하십니다. 이에 제자는 스승께 내놓을 그 마음을 찾건만 마음을 찾진 못합니다. 찾지 못하는 마음이니 달리 불안한 마음도 없으며, 나아가 편안케 할 마음 또한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승은 이미 제자의 마음을 안심(安心)케 했노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시 마음이 없으니 불안한 마음 또한 없습니다. 그런데 결심(決心)은 웬 일이며, 안심(安心)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 마음을 전하러 온 것입니까 아님 마음을 없애러 온 것입니까? 대체 마음은 있는 것입까, 있다면 어디 있는 것입니까? 아님 없는 것입니까, 없다면 어찌 이토록 마음 자리가 큰 것입니까? 누가 나를 안심(安心)케 할 것입니까? <一如>

2002년 02월 05일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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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달마의 직지인심

마음을 찾아서 2013. 1. 1. 21:56 Posted by 문촌수기
Category: 마음을 찾아, Tag: 여가,여가생활
09/18/2004 10:54 pm
♥마음 -(12)달마의 직지인심

서기 527년 인도의 달마(達摩)스님께서 배를 타고 동쪽 중국으로 오십니다. 이때 양(梁)나라의 무제(武帝)는 불법을 좋아하여 도교를 물리치고 많은 사찰을 짓고 불교를 융성히 일으킨 임금이었습니다. 양무제의 초청으로 달마스님은 수도 남경에 오게 되었습니다.

양무제와 달마스님은 만나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내 즉위한 이래 몸소 불법을 실천하고 사찰을 일으키고 스님들에게 도첩을 내렸으니, 무슨 공덕이 있겠소?"
"공덕이 없습니다.[無功德]"
"무엇이 가장 성스럽고 으뜸가는 진리입니까?"
"텅 비어서 성스럽다 할 것도 없습니다.[廓然無聖]"
"나와 마주한 그대는 누구십니까?"
"모릅니다.[不識]"

세 번 주고받은 문답에 양무제가 깨닫지 못하자 달마스님은 양자강을 건너 위(魏)나라로 갔답니다.

마지막 문답에 달마스님이 '모른다'고 한 것은 '내가 누군지 말해줘도 당신은 모른다'는 뜻인지, '내가 누군지 나도 모른다'는 뜻인지, '당신의 물음 자체를 모른다'는 뜻인지, 아님 이도 저도 아니고 '가르쳐주지 않겠다'는 건지 참으로 나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감히, 첫째와 둘째의 문답에 대해 아는 체를 해볼까합니다. 행여 그릇 해석하여 불가(佛家)에 폐를 끼쳤다면 용서바랍니다. 다만 내 마음가는 대로 따라 갈까합니다.

많은 사찰을 짓고 불교를 진흥시켰는데도 왜 달마는 '아무 공덕이 없다'했을까요? 그것은 껍데기뿐이기 때문입니다. 요즘도 절을 크게 짖고 동양최대의 불상이니 불사(佛事)니 돈을 끌어 모으지만 기실 부처님의 뜻이 아닐 듯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 교회의 기둥을 굵게 하고 첨탑을 높일수록 세상 골목길은 좁아지고 교회 밑의 사람 살림은 그늘집니다. 이것도 예수님의 뜻이 아닐 듯 합니다. 부처님 마음도 아니오. 예수님 마음도 아닙니다.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達摩西來意]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마음을 전하러 온 것입니다. 그래서 으뜸가는 진리 또한 '텅 비어 있어 성스러울 것이 없다'고 했나봅니다. 길이요 생명이 될 진리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인들, 예수님의 말씀인들, 또한 성경(聖經)인들. 아님 부처님의 말씀인들, 보살의 말씀인들, 불경(佛經)인들. 입안에서 맴돌고 행간에 갇힌 문자라면 입다물면 잊혀지고 책장 덮으면 묻혀버릴 것 아니겠습니까?

달마스님은 문자와 책에 갇힌 진리가 아니라, 사람들 마음 속에 살아 있는 진리와 자비심을 곧장 일으키려 동쪽으로 오셨습니다.

不立文字, 敎外別傳, 直指人心, 見性成佛
불립문자, 교외별전, 직지인심, 견성성불
"문자를 운운하지 아니하고 책 밖의 가르침으로
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키니, 본성을 보아 부처를 이루니라."

일체의 언어를 끊어버려야 마음을 곧바로 읽을 수 있다 했는데 오늘도 말이 많았습니다. '말 아니하는 가르침[不言之敎]'을 행하려 하지만 빈 마음 뿐입니다. 어떻게 하여야만 곧장 마음을 가리키고, 곧장 사람의 마음에 다다를 수 있을런지, 입에도 머물지 아니하고 생각에도 그치지 아니하고 곧바로 마음으로 갈 수 있는 길은 어디 있는지.............'직지인심'을 알았더라면 난 오늘 분명 말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임오년 입춘일 일여>

2002년 02월 05일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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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트랜서젠더 하리수

마음을 찾아서 2013. 1. 1. 21:56 Posted by 문촌수기
Category: 마음을 찾아, Tag: 여가,여가생활
09/18/2004 10:52 pm
♥마음 -(11)트랜서젠더 하리수

초등학교 3학년 외동딸 쇼니의 겨울방학이 끝났습니다. 내일이면 친구와 선생님을 만날 수 있겠습니다. 겨울 방학동안 나름대로 알찬 계획을 실천한 것 같습니다. 제 엄마가 숙제를 제대로 했는지 챙겨봐 달라기에 쇼니랑 함께 숙제장을 펼쳐보았습니다.

'뉴스, 신문, 비디오 등을 보고 [내 마음의 창] 쓰기' 과제에 딸아이는 '월드컵, 보신탕, 비닐봉지, 하리수, 새학기의 바람' 등의 글을 썼는데 그 중 '하리수'에 관심을 갖고 읽어보았습니다. 우리 딸은 이 세상을 어떻게 볼까? 내 어린 딸아이의 마음은 어떻게 생겼을까? 내 마음이 조마조마해졌습니다. 다행히도 마음의 창(窓)너머로 바라본 내 소중한 딸 쇼니의 마음은 무척 밝고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한 남성의 성전환 수술과 '하리수'라는 여성으로서의 삶을 한편 이해하면서도 성전환수술과 성형수술에 반대하는 딸아이의 성숙(?)하고도 균형 잡힌 생각을 읽게 되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제 스스로 십대라며 용돈 올려달라더니 그냥 한 말이 아니구나. 허참"

만족스런 글 솜씨는 아니지만, 이제 십대가 된 내 딸 쇼니의 글을 그대로 옮깁니다.
-----------------------------------------------------
[마음의 창] - 하리수, 트랜스 젠더에 대해......

하리수는 트랜스젠더다.
하리수는 얼굴은 예쁜데, 자기가 인기 많은 사람도 아니면서 괜히 귀여운척한다.(애교부린다) 이상하다.
나는 성전환 수술, 성형수술은 절대로 안하고 엄마께서 낳아주신 몸 그대로 다니고, 외모보다 성격을 중요시해야겠다.
왜 자기 몸 그대로 만족하지 못하고 몸에 칼을 대고 고쳐서 만족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하리수는 무슨 사연이 있겠지.
이제 부모께서 낳아주신 몸 그대로 만족하고 몸에 칼을 대서 고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자기 몸에 대한 소중함도 가졌으면 좋겠고 나도 내 몸을 소중하게 여겨야지.
------------------------------------------------------
우리나라 최초의 트랜스젠더 여배우인 하리수는 완벽에 가까운 성전환 수술과 빼어난 미모로 청소년들에게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고, 작년 한 때 학교의 토의학습 주제로 단골 등장했습니다. 성전환자들의 삶을 이해하는 청소년들의 비율이 그것을 비판하는 비율보다 높았습니다. 하리수의 등장은 우리 사회에 성(性)과 생(生)에 대해 가치관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성(性)을 버리고 생(生)을 선택한 우리 시대의 진정한 아웃사이더"


하리수를 광고하는 카피를 보았습니다. 참 기가 막힌 카피였습니다. 남성으로 태어났기에 남성으로만 살아야 한다는 세상의 굴레와 편견에 용감하게 대항하고 자기 삶을 찾기 위해 성(性)을 과감하게 벗어 던져버린 트랜스젠더를 미화하기에 이 만큼 기막힌 카피가 어디 있을까 싶습니다.

이 카피의 '성(性)과 생(生)'이라는 두 글자는 내 생각의 꼬리를 물고 늘어졌습니다.
한자의 성(性)자에서 '마음 심(心)' 방을 빼면 바로 생(生)이 남습니다.

■성(性) - 심(心) = 생(生)■

그렇다면 트랜스젠더 하리수가 진정 버린 것은 성(性)이 아니라 남성(男性)다움에 대한 굴레와 성(性)에 대한 사회적인 선입견과 편견이었습니다.

마음을 찾아가는 나의 긴 여정에 트랜서젠더 하리수가 던지는 '성(性)과 생(生)'이라는 화두는 저에게 사회적 굴레와 편견으로서의 마음을 버릴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우리가 흔히 인습이라고도 하고 문화라고도 하는가 봅니다.

그러나 분명 이 시대는 성(性)을 버리고 생(生)을 찾는 트랜서젠더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편견의 마음을 버리고 진정한 자기의 삶을 찾는 주인공을 원하고 있습니다.

내 딸 쇼니는 그런 주인공으로 살아주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02월 03일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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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마음을 버려야지

마음을 찾아서 2013. 1. 1. 21:55 Posted by 문촌수기
Category: 마음을 찾아, Tag: 여가,여가생활
09/18/2004 10:46 pm
♥마음 -(10) 마음을 버려야지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 시생(侍生) 황보근영입니다.
지난 시간에도 선생님께 많은 것을 듣고 배웠습니다.

선생님 말씀이 기억나네요. 식사 후 차를 드시면서 바둑 이야기 하셨습니다.

바둑판을 버렸다가 사고 또 샀다가 버리고...
그렇게 버린 것은 또 달리 사랑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고, 다시 산 것은 미쳤기 때문이고. 그렇게 버리고 사기를 여러 번 하셨다는 말씀 끝에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을 버려야지, 그거 몇 번을 버려도 무슨 소용이 있어...."

선생님. 정말 그런가 봅니다. 마음이 문젠가 봅니다.
정말 버릴 것은 마음인가 봅니다.
선생님께서는 저에게 화두(話頭)를 주셨습니다.
"마음"을 화두삼아 올 한 해 공부할까 합니다.

건강하시고요. 또 찾아뵙겠습니다.
늘 선생님의 너그러우신 그 미소를 그리워하며 저 역시 그 미소지으며 살아가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여불비례.

시생 황보근영 올림.

01월 30일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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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찾아서 2013. 1. 1. 21:54 Posted by 문촌수기
Category: 마음을 찾아, Tag: 여가,여가생활
09/18/2004 10:44 pm
♥마음 - (9) 이심전심

서로의 마음이 통하는 것을 '텔레파시(telepathy)가 통한다'라고도 합니다. 그리스 말로 '멀다'의 뜻을 가진 '텔레(tele)'와 '감정'의 뜻을 가진 '파토스(pathos)'의 합성어로서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정(情)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는 것을 '텔레파시'라 합니다. 이를 한자성어로 말하면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한다'는 뜻입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만나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눈만 바라보아도 서로의 뜻을 알고 서로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그런 나 같은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문자와 말을 빌리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전하고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사이라면 석가모니 부처님과 제자 마하가섭의 염화미소(拈花微笑)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왕사성의 영취산에서 설법을 하실 적에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습니다. 이 떨어진 꽃비 가운데 부처님께서는 범천(梵天)왕이 내린 '금비라'라는 꽃을 집어 들고 한참이나 대중들에게 보이고 계셨습니다. 제자들과 대중들은 스승의 그 까닭을 몰라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부처님과 서로를 번갈아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유독 마하가섭만이 스승이 집어드신 꽃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고 있었습니다.
스승께서는 꽃을 집어드시고[拈花], 제자는 빙그레 웃는[微笑] 가운데에 스승과 제자간의 이심전심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정법(正法)은 수제자 마하가섭에게 전해지게 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과 수제자 마하가섭 간의 이심전심은 염화미소 이야기 말고도 두 차례 더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중인도 비사리성의 다자탑에서 설법하실 적에 옷은 남루하고 얼굴은 거친 거지 행상의 수제자 마하가섭이 대중을 헤치고 부처님께 다가 왔습니다. 대중은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제자가 말없이 스승님 전에 절을 올릴 적에 스승 역시 말없이 당신의 자리를 반으로 양보하여 가섭제자에게 내어 줍니다. 마하가섭은 말없이 스승과 나란히 앉았습니다.

마지막 이심전심의 이야기는 부처님께서 쿠시나가라 성 사라수 아래에서 돌아가신 후에 나타납니다. 먼 길을 떠나 스승의 입멸을 지켜보지 못한 제자 마하가섭은 서둘러 돌아와 가까스로 스승의 다비(茶毘, '화장'에 대한 불교말)에 참여하게 됩니다. 아무리 불을 붙여도 그때까지 다비 장작더미에는 불이 붙지 않았습니다. 마침 마하가섭이 도착하여 부처님 발아래 무릎을 꿇고 엎드려 흐느꼈습니다.

"세존이시어 어찌하여 이리도 빨리 가시옵니까?"

그러자 부처님의 관이 열리며 부처님께서는 두 다리를 내보이셨습니다.

지고지순(至高至純)의 진리와 정법은 굳이 문자를 빌리지 않아도, 말을 하지 않아도 이렇게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집니다. 불교는 바로 마음을 찾아 마음으로 전하고 결국 마음마저도 버리고 잊게 하는 종교인가봅니다.

'내 마음 아실 이, 내 혼자 마음 날 같이 아실 이'를 다시 한번 찾아봅니다. 나와 내 아내는 서로 이심전심을 할 수 있는 사이인지...........지금쯤 잠들었을 아내의 침실로 돌아갑니다.

12월 10일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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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마음을 읽는 크리스마스

마음을 찾아서 2013. 1. 1. 21:53 Posted by 문촌수기
Category: 마음을 찾아, Tag: 여가,여가생활
09/18/2004 10:43 pm
♥마음 - (8) 마음을 읽는 크리스마스

12월. 오랜만에 서울로 나갔습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백화점 앞의 나뭇가지는 비어 가벼울 틈도 없이 꽃불로 장식되어 지나는 이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구세군의 자선냄비와 종소리는 이웃에 대한 사랑의 정을 전하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애타는 사랑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남편에게는 훌륭한 금시계가 있었지만 시계줄이 없어 늘 호주머니에 넣고 다닙니다. 아내는 이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견줄 수 없는 찬란한 금발을 가졌지만 그 머릿결을 장식해줄 아름다운 머리장식빗 하나 없습니다. 서로는 무척 사랑하지만 안타깝게도 너무 가난합니다. 그래도 크리스마스가 되어 가난한 부부는 서로에게 사랑의 선물을 전합니다.

"여보, 당신의 아름다운 금발을 위해 보석이 박힌 이 장식빗을 샀어요."
"전 당신의 소중한 시계를 손목에 채워드리기 위해 이 금시계줄을 샀어요."

아, 그러나 이를 어쩝니까?
남편은 소중한 금시계를 팔아 아내를 위해 보석 박힌 장식빗을 선물했습니다.
아내는 화려한 금발을 팔아 남편을 위해 금시계줄을 선물했습니다.
이런 서글픈 이야기가 어디 있습니까?

어떤 이들은 이 가난한 부부의 이야기를 변함없는 사랑을 교훈적으로 전해주는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평합니다. 그러나 난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아니, 부부간의 사랑하는 마음도 좋지만, 이렇게 서로의 마음이 통하지 않다니...... '. 그래서 이 서글픈 부부의 사랑이야기는 나를 애타게 하고 내 마음을 답답하게 합니다. 이 이야기는 겉으로 보기엔 상대에 대한 자기 희생적인 사랑을 담고 있는 아름다운 비극이지만, 속 깊이 들여보면 자기 중심적인 사랑의 표현은 결국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비꼬는 풍자입니다.
이들 부부는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은 지극했을지언정 결코 서로의 사랑하는 마음을 읽었다고는 할 수 없겠습니다.

사랑. 사랑? 그건 무엇입니까?
어떻게 사랑해야합니까?
지극하여야만 님을 진정 사랑한다 할 수 있습니까?
자기 희생적이어야만 님을 진정 사랑한다 할 수 있습니까?

먼저 사랑하는 님의 마음을 읽어봅시다. 그리고 그 마음을 알고 내 마음을 전해봅시다.
금시계줄과 장식빗을 전하는 크리스마스보다 이심전심(以心傳心)하는 크리스마스를 여러분들에게 선물합니다. 아름답고 행복한 크리스마스가 다가옵니다.

12월 09일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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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마음 달래니...

마음을 찾아서 2013. 1. 1. 21:53 Posted by 문촌수기
Category: 마음을 찾아, Tag: 여가,여가생활
09/18/2004 10:40 pm
♥마음 - (7) 마음 달래니...

기말고사 나흘째 날입니다. 종례 후 아이들이 하나 둘 떠나고 몇몇이만 교실에 남아있습니다. 마지막 내일을 준비해야하지만 오늘이 아쉬운 듯 이런 저런 이야기로 교실은 남아 있습니다. 어제 시험 본 윤리 채점 결과를 알리기 위해 교실에 들어갔는데, 한 아이가 눈시울을 붉히어 슬픈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왜 울고 있니?" 짐작으로 물었습니다.

위로하는 친구가 대신 답합니다.

"시험에 어떤 문제를 모두 정답으로 인정한다 했는데..... 그러면, 어렵게 맞춘 친구는 그만치 손해잖아요. 그래서 슬픈가 봐요."

그런가 봅니다. 몰랐습니다. '모두가 맞다'하면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줄, 나이 든 난 몰랐습니다. 그렇지만, 여린 친구에게 이렇게 달랬습니다.

"만약 말이야..... 네가 틀렸는데 '모두가 맞다'고 인정했더라면 넌 정말 좋아 했을꺼야. 인생을 살면서 넌 늘 맞고 다른 친구들은 틀렸다고 생각하지 말거라. 언젠가 네가 틀릴 때가 있을텐데... 마음을 고쳐 달려봐. 생각을 바꿔 보면 이건 기쁜 일일 수도 있어. 자, 눈물 닦어." 하며 두 손 엄지로 두 눈망울에 고인 눈물을 훔쳐 주며 달랬습니다.

"어잉! 셈, 호주머니에 껌이 있네. 이걸 씹어봐. 달콤할꺼야."

욕심 많고 착한 아이는 눈물 채 마르지 않은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후라보노 껌을 받아주었습니다. 위로하던 친구에게도 껌을 전했습니다. 하느님이 내 호주머니 속에 껌을 남겨 주셨는지, 마술처럼 그냥 생겼는지.... 복되게도 남아 있는 두 개의 껌을 받아주는 내 아이들이 고맙습니다. 예쁜 아이들입니다.
마음을 달래니 눈물이 미소로 바뀌었나 봅니다. 빙그레 웃는 얼굴이 곱습니다.

내 마음도 그렇게 달래어 봅니다.

"아름다운 세상, 고운 세상 "

12월 07일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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