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이야기

노래와 그림 그리고 수업 이야기 2021. 9. 1. 09:20 Posted by 문촌수기

내게 거의 매일 아침마다 먹는 음식이 있다면?
사과이다. 아침 공백에 좋다며 아내가 빠트리지 않는다. 밤에 먹어도 괜찮다는 이야기는 근래에 들었다. 아무렴 어때? 먹고 싶을 때 먹으면 되지.
시절음식이 곧 보약이란다. 이것도 時中인가? 때에 적합하게 행동하는 것이 군자의 중용이란데, 군자의 보약은 때맞춰 먹고, 싶을 때 먹는 것이라고 농담해본다. 사과에는 담긴 영양소도 많지만, 이야기도 많다. 이야기도 재밌다. 재미도 보약이다.
에덴 동산 아담의 사과, 파리스의 심판, 윌리암 텔의 사과, 뉴톤의 사과, 잠자는 숲 속의 미녀, 스티브 잡스의 애플...

1. 성경ㅡ에덴 동산 아담의 사과
주간동아, 원포인트 시사 레슨 에서

성경의 선악과는 왜 사과가 됐을까
라틴어로 악을 뜻하는 malum과
사과를 뜻하는 mālum의 언어유희

독일화가 루카스 크라나흐의 ‘아담과 이브’(1530년 경). 선악과를 사과로 형상화 했다.

인류 역사를 변화시킨 세계 3대 사과가 무엇이냐를 놓고 여러 이야기가 오간다. 세 여신이 내놓은 제안 가운데 아프로디테의 것을 골랐다 트로이 전쟁을 초래한 파리스의 사과. 아들 머리 위에 놓인 사과를 화살로 맞춰 스위스 독립운동의 불을 지폈다는 빌헬름 텔의 사과.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깨달았다는 뉴턴의 사과. 19세기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펼쳐진 미술혁명을 예고한 세잔의 사과. 컴퓨터와 인공지능(AI) 연구의 길을 열었지만 독이 든 사과를 먹고 자살해 애플 컴퓨터의 로고가 된 앨런 튜링의 사과….

여러 사과가 그 후보에 오르지만 첫 번째를 장식하는 사과는 똑같다. 히브리 성경(구약) 창세기에 등장하는 ‘이브의 사과’다. 창조주가 먹지 말라 금했건만 뱀의 유혹에 넘어간 이브(하와)가 먹고 이어 아담에게도 권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됐다는 그 금단의 과일이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는 순간 갑자기 창조주가 나타나 사과가 목에 걸리는 바람에 생겼다고 해 남성의 울대뼈를 ‘아담의 사과(Adam’s apple)’라 부르는 전통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그렇지만 성경책을 아무리 뒤져봐도 사과는 등장하지 않는다. 선악과라는 표현도 없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라고만 등장한다. 구약성경의 주무대인 팔레스타인 지역에선 가장 흔한 과일인 무화과를 선악과로 받아들였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에 그린 ‘천지창조’에서도 선악과가 열리는 나무는 무화과나무다.

미켈란젤로, 원죄와 에덴동산의 추방

그런데 왜 선악과가 사과로 고착된 걸까. 히브리 성경은 그리스어 번역을 거쳐 5세기 초 히에로니무스(영어명 제롬)의 주도 아래 라틴어 번역이 집대성됐다. 로마가톨릭에서 정경(正經)으로 삼았던 불가타성경이다. 불가타성경에서 문제의 나무는 ‘리늄 시엔티에 보니 에 말리(lignum scientiae boni et mali)’로 번역됐다. 히브리어와 마찬가지로 '선과 악을 구별하는 지혜의 나무'라는 뜻이다.
문제는 그 나무의 열매를 뜻하는 단어에 있었다. 히브리 성경에선 모든 종류의 열매와 그 즙까지 의미하는 페리(peri)라는 단어를 썼다. 사과를 비롯해 무화과, 석류, 포도, 쌀, 밀 등 모든 열매를 포괄하는 단어다. 히에로니무스는 이를 라틴어 말룸(ma–lum)으로 번역했다. 이 단어는 사과라는 뜻과 함께 배나 복숭아처럼 실한 과육 속에 씨를 품은 과일을 통칭한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라틴어에서 이 단어의 장모음 a를 단모음으로 발음하는 malum은 ‘악(惡)’을 의미한다. 그 형용사형인 malus는 '나쁘다'는 뜻이고, a를 장모음으로 발음하는 ma–lus는 사과나무다.
결론적으로 ‘악’이란 단어와 ‘사과(나무)’라는 단어의 표기 및 발음이 유사한 것에서 영감을 얻어 일종의 ‘펀’(pun·다의어와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언어유희)을 구사한 것이다. 이런 말장난이 인류 원죄를 강조하는 중세 기독교시대를 거치면서 ‘악한 과일=사과’라는 의미로 고착됐을 개연성이 크다. 아담과 이브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 나무에 열린 열매를 먹은 사건이야말로 인류 원죄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존 밀턴이 1667년 간행한 ‘실낙원(Lost Paradise)’에서 문제의 과일을 2번이나 사과(apple)로 명명한 점도 ‘선악과=사과’ 확산에 기여했다.
기독교 전파 과정의 산물이란 해석도 있다. 사과는 북유럽신화와 켈트신화에서 신들에게 영원한 청춘을 안겨주는 열매로 신성시됐다. 이런 이교도적 신앙을 약화하고자 일부러 사과를 금단의 열매로 격하했다는 것이다. 이유가 뭐가 됐든 선악과는 인류 역사를 바꾼 사과가 될 수 없다.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2. 신화ㅡ파리스의 심판

루벤스, 파리스의 심판


3. 역사ㅡ윌리암 텔의 사과,
14세기 초엽으로 스위스는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고 있는 식민지였다.
오스트리아 총독인 '게슬러'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야만성을 띄고 있는 사람이였다. 그는 길가에 높은 나무막대기 위에 오스트리아 왕을 상징하는 모자를 걸어 놓고 지나가는 사람마다 경례하도록 강요했다.
때마침 '윌리암 텔'이 여섯살 난 아이를 데리고 그 앞을 지나치면서 절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이의 머리 위에 사과를 얹고 텔로 하여금 활을 쏘게 하였다.
활을 잘 쏘는 그였지만, 아이가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주저할 수 밖에 없었다. 차마 아들을 향해 활을 당길 수 없었던 윌리엄은 몇번인가를 망설이고 망설인 후에 화살을 활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서서히 고개를 들어 아들을 보았다.
아들은 편안하고 밝은 표정의 미소를 짓고 있었고, 윌리엄은 활을 들어 크게 심호흡을 한 후에 활을 당겼다. 화살은 활 시위를 떠나 정확히 사과의 한 가운데에 명중되었다.

그렇게 화살은 게슬러의 의도와는 달리 아이의 머리 위의 사과를 뚫고 지나갔고, 순간 눈이 휘둥글해진 총독은 텔을 쏘아보고 있었다.
텔이 또 하나의 화살을 손에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슬러는 윌리엄텔이 2개의 화살을 준비한 것을 보고,
만일 실패하는 경우에는 윌리엄텔이 자신을 쏘아 죽이려 했음을 알고 윌리엄텔을 풀어주려 하지 않는다. 게슬러는 텔을 결박하여 연행해 가게 하지만, 폭풍이 내리는 틈을 이용하여 텔은 탈출에 성공한다.
그후 바위산 위에서 윌리엄 텔이 폭군 게슬러를 쏘아 죽이고, 스위스에는 평화가 찾아온다는 내용의 희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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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조선일보―윌리엄 텔 이야기
[흥미진진 이야기 보따리] "아들 머리 위 사과를 활로 쏘라" 폭군의 명령에 용감한 사냥꾼은…
입력 : 2015.08.25 09:25

과거 스위스 국민이 지금처럼 자유롭고 행복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게슬러라는 폭군이 사람들을 다스렸을 때만 해도 스위스 사람들의 생활은 무척 처참했습니다.
하루는 게슬러 왕이 광장에 커다란 장대를 세우고 자신의 모자를 그 꼭대기에 걸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성안으로 들어오는 자는 누구나 그 앞에서 절을 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사람들은 할 수 없이 그 모자에 절을 했지만 단 한 사람, 윌리엄 텔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팔짱을 낀 채 꼿꼿이 서서 그 흔들리는 모자를 비웃는 것은 물론, 게슬러에게도 절대 고개 숙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게슬러는 이 얘기를 전해 듣고 몹시 화가 났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고 반역의 길을 걸을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무례한 사내를 벌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윌리엄 텔의 집은 산중에 있었으며 그는 이름난 사냥꾼이었습니다. 나라 안에서 그만큼 활을 잘 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게슬러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냥꾼의 재주가 도리어 재난을 불러일으키게 할 잔인한 계획을 꾸몄습니다.
게슬러는 윌리엄 텔 아들 머리 위에 사과를 올리고, 이 과일을 화살로 맞추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는 가슴이 뛰고 손발이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그는 폭군에게 자신의 솜씨를 이런 식으로 시험하지 말라고 애원했습니다.
만약 어린 아들이 움직이면 어떻게 될까요? 화살을 쏘는 자신의 손이 떨리기라도 한다면, 화살이 명중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당신은 제 아들을 죽일 생각이십니까?"
게슬러는 비웃으며 말했습니다.
"더는 아무 말 마라. 너는 화살 하나로 사과를 맞추어야 한다. 만약 실패하면 내가 보는 앞에서 내 병사들이 네 아들을 죽일 것이다."

그러자 윌리엄 텔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화살을 활시위에 걸었습니다. 그는 곰곰이 생각하고 나서 조준을 했습니다. 드디어 화살이 날아갔습니다. 윌리엄 텔의 아들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습니다. 소년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활 솜씨를 믿고 있으니까요.
화살은 '휙' 하는 소리와 함께 공중을 가로질렀습니다. 화살은 사과의 한가운데를 정확하게 맞춰 떨어뜨렸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윌리엄 텔이 그곳을 떠나기 위해 발길을 돌리자 그의 외투 안에 감춰두었던 화살 하나가 땅바닥에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그것을 본 게슬러가 소리쳤습니다.
"이놈! 그 두 번째의 화살은 어찌 된 것이냐?"
"폭군이여! 이 화살은 만약 내 아들이 다치기라도 한다면 당신의 심장을 쏠 생각으로 갖고 있었던 것이오."

>> 생각 꾸러미
폭군은 결국 자기 꾀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만약 윌리엄 텔이 명중시키지 못했다면 폭군의 목숨도 장담하지 못할 상황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윌리엄 텔은 위급한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대응했기 때문에 어느 것도 잃지 않고 아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위기를 이겨내려면 지혜와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에게도 용기와 지혜가 있습니까?

스코프 제공 |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 50(제임스 M. 볼드윈 글·이정헌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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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307년 빌헬름 텔의 사과
입력 | 2005-11-18 03:01:00 ㅡ 동아일보

자식의 머리에 올려놓은 표적을 향해 활시위를 당길 수 있는 강심장이 몇이나 될까.
1307년 11월 18일 스위스 알트도르프 마을 광장.
활을 잡은 빌헬름 텔은 묵묵히 아들을 바라봤다.
“저는 아빠를 믿어요.”
멀리 서 있는 아들 발터의 눈빛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활쏘기를 포기하거나, 빗맞히면 어차피 둘 다 죽어야 한다. 할 수 있는 건 오직 온 정신을 집중하는 것뿐….
화살은 머리 위에 놓인 사과를 정통으로 쪼개 버렸다.
빌헬름 텔은 합스부르크가의 지방관(地方官) 게슬러가 걸어 놓은 모자에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가 체포된다. 그 벌로 자식의 목숨을 걸고 활을 쏘아야 했던 텔은 결국 게슬러를 죽여 복수한다.
지배자에게 밉보여 자식을 향해 활을 쏘는 이야기는 유럽에선 드물지 않다.

노르웨이에는 11세기에 개암나무 열매를 아들의 머리에 올려놓고 활을 쏴야 했던 사냥꾼 이야기가 전해진다. 덴마크 역시 12세기에 아들 머리 위의 사과를 명중시킨 명사수의 전설이 있다.
그 가운데 유독 빌헬름 텔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독일 작가 프리드리히 실러 덕분이다.
실러는 친구인 대문호 괴테에게서 빌헬름 텔의 이야기를 듣고 희곡으로 만든다. 포악무도한 지방관에 맞서 조국을 해방시킨 영웅의 이미지를 심었다. 개인적인 복수 차원의 살해는 공동체를 위한 애국적인 암살로 격상된다.
희곡 ‘빌헬름 텔’이 완성된 건 1804년. 유럽이 한창 정치적 격변기에 있던 시절이었다. 처음엔 그 정치적인 폭발력 때문에 극장 상연이 거부됐다.
빌헬름 텔의 이미지는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여러 차례 각색됐다. 수백 년 전 스위스의 명사수는 정치적 목적에 따라 때로는 자유의 상징으로, 때로는 테러리스트로 극과 극을 오갔다.
전해오는 이야기엔 활을 쏜 날짜까지 나와 있지만 역사학자들은 여전히 빌헬름 텔이 실존 인물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엔 실재(實在)한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스위스 국민의 60% 이상이 실존 인물로 믿고 있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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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과학ㅡ뉴턴 사과의 진실은?

위대한 과학자 아이작 뉴턴이 정말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중력을 발견했을까. 뉴턴의 사과나무 일화의 출처가 최초로 공개됐다. 영국 왕립학회가 뉴턴의 사과나무 이야기에 대한 원문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일명 ‘사과나무 일화 논란’은 이제 끝날 것으로 보인다. ● 중력과 사과나무의 인연은 1660년대 중반 20대 초반의 대학생 뉴턴은 흑사병 때문에 학교가 휴교를 해서 집에 머물렀다. 이 기간에 뉴턴은 정원의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중력의 법칙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사과나무 일화다. ‘사과’는 뉴턴과 중력의 법칙을 관한 얘기에서 마치 신화 같이 통용된다. 하지만 이 일화는 그동안 과학사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릴 정도로 분분했다. 뉴턴 본인이 사과나무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는 얘기가 있다. 또 계몽사상가 볼테르가 뉴턴이 죽던 해에 처음을 사과나무 이야기를 했으며 그는 뉴턴의 조카 캐서린에게서 그 이야기를 들었다는 식의 말도 나온다. ● 1726년 오후, 뉴턴이 한 말 영국왕립학회가 이 같은 논란을 해소할만한 문서를 최근 공개했다. 이 문서는 뉴턴과 친분이 두터웠던 영국의 과학자 윌리엄 스터클리(William Stukeley, 1687-1765)가 쓴 ‘아이작 뉴턴경의 삶에 대한 회고록(Memoirs of Sir Isaac Newton’s life)’이다. 스터클리는 뉴턴의 어린 시절부터 말년까지를 기록한 문서들을 묶어서 1752년에 영국왕립학회에 제출했다. 영국왕립학회는 이 오래된 문서들을 전자북으로 공개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했다. 사과나무 일화는 이 문서의 42쪽에 나온다. 1726년 봄 어느 날 오후 저녁을 먹고 난 후 뉴턴과 스터클리가 나눈 대화를 자세히 기록한 것이다. ● 사건의 전모 당시 이 두 사람은 사과나무 아래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뉴턴은 중력의 개념이 이와 동일한 상황에서 자신의 머리에 갑자기 떠오르게 되었다고 스터클리에게 말했다. 즉 왜 항상 사과가 옆이나 위가 아니라 아래로 떨어지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그에게 중력 법칙을 발견하도록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이런 글이 있다. “그(뉴턴)가 깊은 생각에 잠겨 앉아있는 그때에 사과가 떨어졌다. 그는 왜 사과는 옆이나 위가 아니라 수직으로 떨어지는 것인지를 생각했다. 그 이유는 분명히 지구가 사과를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물질에는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야 한다.” ● 원본이 존재한다는 게 중요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예술사학자 마틴 켐프(Martin Kemp) 교수는 이번 일에 대해 “사본이나 복사본이 아니라 원본을 존재한다는 것은 역사학자들에게 매우 귀중한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왕립학회 도서관원 케이스 무어(Keith Moore)는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관찰하면서 그 뒤에 숨은 원리를 추측해내는 뉴턴의 얘기에서 “뉴턴이 과학적 방법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고 정리했다. 그는 “사과의 모양은 지구처럼 둥글다. 또한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는 아담과 이브의 얘기를 떠올리게 했을 것이다. 신앙심이 깊었던 뉴턴은 이 둘 간의 유사성을 발견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향집 울즈소프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는 뉴턴의 일화는 유명하다. 이 일화의 진위를 놓고도 의견이 분분하다. 다만 1666년의 어느 날 갑자기 사과가 뉴턴의 머리 위에 떨어졌고, 잠시 뒤 “유레카”의 순간이 뉴턴에게 떠오른 그런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나지는 않은 듯하다. 그렇다고 사과와 만유인력의 법칙이 완전히 무관하다고 딱 잘라 말하기도 쉽지 않다. 뉴턴은 생전에도 수차례 지인들에게 사과 일화를 얘기했다. 이 이야기를 한두 다리 건너 전해들은 사람 중에 계몽주의의 위대한 선구자 볼테르도 있었다. 뉴턴과 동시대에 살면서 뉴턴으로부터 직접 그 일화를 전해 들었다는 문서도 없지 않다.
그 내용은 대충 이렇다. 사과가 수평 방향으로 또는 위로 움직이지 않고 지구 표면으로 떨어지는 것은 지구가 사과를 당기는 힘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좀 더 높은 가지에 달린 사과도 똑같은 힘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구가 당기는 힘, 즉 중력이 달까지 이르지 않는다고 할 수 없지 않은가? 뉴턴은 이런 생각을 발전시켜 달이 지구 주변에 붙들려 있으려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힘이 작용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달은 끝없이 지구를 향해 떨어지는 사과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다.
이는 훗날 《프린키피아》3권에 소개된 뉴턴의 이른바 포탄 사고실험과 연결된다. 포탄이든 사과든 별 차이가 없으니까 우리는 그냥 사과라 하자. 뉴턴은 높은 산에 올라가 사과를 던지는 사고실험을 했다. 사과나무에서 가만히 떨어지는 사과는 나무 바로 아래에 떨어진다. 만약 뉴턴이 그 사과를 집어 들고 사선으로 (지면과 적당한 각도를 이루면서) 던지면 사과는 갈릴레오가 예측한 대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다가 결국 땅에 다시 떨어진다. 뉴턴이 사과를 더 세게 던지면 (세게 던진다는 말의 물리적 의미는 초속도를 크게 한다는 말이다.) 사과는 더 멀리 날아갈 것이다. 여기서 뉴턴은 아주 극단적인 생각을 한다. 만약 사과를 아주 세게 던져서 그 비거리가 지구 둘레 정도에 해당하면 어떻게 될까?

이게 가능하다면 사과는 지면에 닿지 않고 계속해서 지구 주위를 돌게 될 것이다. 즉, 지상계의 사과가 천상계의 위성이 되었다. 사실 지금의 인공위성도 이렇게 지구 주위를 (물론 케플러의 법칙에 따라 타원궤도로) 돌고 있다.
지상계의 사과와 천상계의 달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면 이는 놀라운 결과이다. 왜냐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에서는 천상계와 지상계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즉, 천상계와 지상계에는 전혀 다른 법칙이 적용되었다. 뉴턴은 자신의 새로운 중력법칙으로 천상계와 지상계를 하나로 통합해버렸다. 사과든 달이든 만유인력의 법칙이 적용되면 땅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영원히 지구 주위를 돌기도 한다. 서로 다른 법칙이 적용되는 두 개의 분리된 세상이 있다는 것보다 그 모두에 적용되는 하나의 ‘보편적인’ 법칙이 있다면 누구라도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그래서 뉴턴의 중력법칙을 ‘보편중력의 법칙(Law of Universal Gravitation)’이라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만유인력의 법칙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 만유(萬有)는 어디에나 있다는 뜻이니까 universal에 해당하는 단어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만유인력의 법칙이라는 말보다 보편중력의 법칙이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만유인력이라는 말 자체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만유인력이라는 말을 초등학교 때부터 들었지만 이 말에 universal이라는 뜻이 있는 줄은 대학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말로 설명하면 이렇다. 질량이 있는 두 물체 사이에는 두 물체의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두 물체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당기는 힘이 보편적으로 작용한다. 그 비례상수는 중력상수 또는 뉴턴상수라 부른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이른바 ‘역제곱의 법칙(inverse square law)’이다. 힘의 크기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내용이다. 지구가 태양에서 두 배 멀어지면 지구-태양 사이에 작용하는 중력이 네 배로 작아진다. 거리가 세 배 멀어지면 힘은 아홉 배 작아진다. 태양계의 행성이 태양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타원궤도를 돌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역제곱 법칙 때문이다. 역제곱 법칙을 수학으로 표현하면 힘이 거리의 (-2)제곱에 비례한다고 표현할 수 있다. 여기서 왜 하필 거리의 지수가 (-2)인가가 역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하다. 행성의 궤도가 태양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안정성) 행성이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오려면 (닫힘성) 수학적으로 두 가지의 경우만 허용되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거리의 지수가 (-2)인 경우이다.
만약 중력이 거리의 세제곱 또는 1.5제곱에 반비례했다면 지금 우주의 모습은 상당히 달랐을 것이다. 지구가 태양 주변을 안정적으로 돌지 못했다면 우리 같은 생명체가 생겨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전혀 다른 환경에서 전혀 다른 생명체가 생겨났을 수는 있다.)
한편 이 지수가 정확하게 (-2)인 것은 우리 우주의 공간이 3차원인 사실과 깊은 관계가 있다.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이렇다. 태양으로부터 일정한 거리 R에 100개의 똑같은 행성이 균일하게 퍼져 있다고 생각해 보자. 이 행성들은 태양을 중심으로 반지름이 R인 가상의 구면 위에 놓여 있을 것이다. 만약 거리가 두 배, 즉 2R만큼 떨어진 곳에 있는 가상의 구면을 생각해 보자. 이 구면의 넓이는 반지름이 R인 구면의 넓이보다 네 배 클 것이다. 왜냐하면 넓이는 길이의 제곱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이 구면에 원래 구면과 똑같은 밀도로 행성을 배치하려면 네 배, 즉 400개의 행성이 필요할 것이다. 구면 자체가 네 배로 넓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거리 R은 애초에 임의의 값으로 잡을 수 있으니까, 태양이 미치는 중력은 반지름 R인 구면 위의 100개의 행성에 미치는 힘이나 반지름 2R인 구면 위의 400개의 행성에 미치는 힘이나 같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 개의 행성이 느끼는 중력은 거리가 두 배 늘어남에 따라 제곱으로 네 배 줄어들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논의를 수학적으로 일반화한 것이 가우스 법칙이다)
만약 우리가 사는 우주의 공간이 3차원이 아니라면 중력의 역제곱 법칙은 바뀔 수도 있다. 이런 SF 같은 논의가 실제로 과학의 연구주제이기도 하다. 3차원 이상의 덧차원(extra dimension)이 아주 미세한 크기로 숨어 있다면 우리가 미처 눈치 채지 못할 수도 있다. 1998년 덧차원 논의가 학계의 뜨거운 주제였을 때 밀리미터 이하의 세계에서도 중력의 역제곱 법칙이 적용되는지가 큰 관심거리였다. 실험적으로 그 이하까지 확인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의 실험결과 하나를 소개하자면 수십 마이크로미터까지 역제곱 법칙이 확인되었다.
반대로 아주 큰 우주적인 스케일에서 역제곱 법칙이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주의 암흑물질 등을 대체해서 설명하기 위해 일부 과학자들은 수정된 뉴턴 동역학(Modified Newtonian Dynamics, MOND) 이론을 도입하기도 한다. 덧차원이나 MOND를 연구하는 물리학자들을 보면 과학하는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엿볼 수 있다. 과학자들은 필요하다면 위대한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조차도 수정할 용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이 법칙이 대체 어느 한계까지 작동하는지를 끊임없이 검증한다. 우리의 경험세계에서 잘 맞는다고 결코 만족하는 법이 없다. 이처럼 끝없이 의심하고 검증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자세가 바로 과학의 혁신을 가능하게 했던 원동력이다.
만유인력의 또 다른 측면, 즉 힘의 크기가 두 물체의 질량의 곱에 비례한다는 점을 다시 살펴보자. 이 결과는 역제곱의 법칙보다 이해하기 쉽다. 태양의 질량이 두 배가 되면 지구가 느끼는 중력은 두 배가 된다. 이 상태에서 지구의 질량이 세 배가 되면 지구가 느끼는 중력은 여섯 배가 된다. 작용-반작용의 법칙에 따라 태양도 똑같이 여섯 배 커진 힘을 느낀다. 이게 뭐가 그리 대단할까 싶은데, 중력의 크기는 “질량에 비례해서” 커진다는 점이 중요하다. 질량이 많이 나가는 사람은 그만큼 지구로부터 큰 중력을 받는다. (이 힘을 특별히 ‘몸무게’ 또는 ‘체중’이라 부른다. 몸무게는 질량이 아니라 중력의 크기이다.)
이제 무거운(질량이 큰) 물체와 가벼운(질량이 작은) 물체를 자유 낙하시키는 실험을 생각해 보자.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는 왜 동시에 떨어질까? 무거운 물체는 질량이 크니까 그만큼 지구로부터 더 큰 힘을 받는다. 한편 뉴턴의 제2운동법칙(F=ma)에 따라 질량이 클수록 원하는 가속도를 얻으려면 큰 힘이 필요하다. 예컨대 A라는 가속도를 얻기 위해 가벼운 물체에는 작은 힘을 줘도 되지만 무거운 물체에는 그만큼 더 큰 힘을 줘야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우주에는 정확히 이런 성질을 만족하는 힘이 있다. 바로 중력이다. 중력은 질량에 비례한다. 따라서 A라는 가속도를 얻기 위해 필요한, 질량에 비례하는 그 힘을 중력이 제공해 줄 수 있다.
정리해 보자. 무거운 물체에는 큰 중력이 작용한다. 그 힘으로 무거운 물체를 지구 중심으로 잡아당겨 A라는 가속도를 만들었다. 반면 가벼운 물체에는 그보다 작은 중력이 작용한다. 다행히 F=ma에 따라 작은 힘으로도 A라는 가속도를 만들 수 있다. 무거우면 무거운 만큼 일정한 가속도를 얻기 위해 큰 힘이 필요하지만 중력은 딱 그만큼 질량에 비례하는 큰 힘을 제공한다. 가벼운 물체는 가벼운 만큼 일정한 가속도를 얻기 위해 작은 힘만 필요한데 중력은 딱 그만큼 질량에 비례하는 작은 힘을 발휘한다. 그 결과 질량에 상관없이 지표면의 모든 물체에는 똑같은 크기의 가속도가 작용한다. 가속도는 속도의 시간에 따른 변화이므로 가속도가 똑같다면 임의의 시간에 물체의 속도도 똑같다. 따라서 모든 물체는 동시에 바닥에 떨어진다.
이쯤 되면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가 왜 동시에 떨어지는가 하는 문제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은 문제임을 간파했을 것이다. 위의 논의에는 한 가지 트릭이 숨어 있다. 제2 운동법칙에 들어가 있는 질량과 만유인력의 법칙에 들어가 있는 질량을 암묵적으로 같다고 본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질량을 정의하는 데에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제2법칙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즉 어떤 물체를 특정한 가속도를 얻기 위해 얼마의 힘을 작용해야 하는지 측정하면 그 물체의 질량을 정할 수 있다. 이렇게 정해진 질량을 관성질량이라 한다. 또 다른 방법은 중력을 이용하는 것이다. 물체를 지구가 얼마나 큰 힘으로 당기는지를 비교 측정하면 그 물체의 질량을 정할 수 있다. 사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몸무게를 재는 것도 이 방식이다. 이처럼 중력을 이용해 정의되는 질량을 중력질량이라 부른다.
앞서의 트릭을 다시 말하자면 나는 중력질량과 관성질량을 암묵적으로 같다고 본 것이다. 잘 생각해 보면 관성질량과 중력질량이 같을 이유는 없다. 관성질량과 중력질량은 전혀 다른 두 방식(첫째 방식에서 사용한 힘이 중력이 아니라면)으로 정의된 양이다. 그렇게 정의된 두 양이 같을 이유는 없다. 그런데 왠지 이 둘은 같아야 할 것 같다! 원래 의심이 많은 과학자들은 관성질량과 중력질량이 어느 정도의 정밀도로 일치하는지 지금도 집요하게 (심지어 우주에 올라가서까지) 실험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아직 왜 이 둘이 같은지 아무도 모른다. 누군가 자연의 근본원리로부터 관성질량과 중력질량이 같음을 설명할 수 있다면 순식간에 과학계의 슈퍼스타가 될 것이다.
뉴턴으로부터 200여 년 뒤에 등장한 아인슈타인은 이와 관련된 “생애 최고로 행복했던” 영감을 얻어 결국 일반상대성이론을 완성하게 된다. 그러니까 가벼운 돌과 무거운 돌만 있으면 고대의 아리스토텔레스에서 근대의 갈릴레오와 뉴턴을 거쳐 현대의 아인슈타인까지 이를 수 있다.
그러나 만유인력에는 뉴턴 자신도 만족하지 못했던 점이 있었다.
참고자료
-Steve Connor, The core of truth behind Sir Isaac Newton's apple, Independent,18 January 2010,
https://www.independent.co.uk/news/science/the-core-of-truth-behind-sir-isaac-newtons-apple-1870915.html


-H. Goldstein, Classical Mechanics, Addison-Wesley.
-Wen-Hai Tan et al., New Test of the Gravitational Inverse-Square Law at the Submillimeter Range with Dual Modulation and Compensation, Phys. Rev. Lett. 116, 131101 (2016).
※필자소개
이종필 입자이론 물리학자.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교양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 《사이언스 브런치》,《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을 썼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을 옮겼다. 한국일보에 《이종필의 제5원소》를 연재하고 있다.

5. 동화ㅡ잠자는 숲 속의 미녀,

6. 기술ㅡ스티브 잡스의 애플,
스티브 잡스는 1976년 스티브 워즈니악과 공동 창업한 회사 이름을 애플컴퓨터로 했다. 이름 때문에 비틀스의 소속사인 애플레코드와 소송도 했다. 잡스는 사과 품종인 매킨토시를 제품명으로 했고 집 뜰엔 사과나무를 심었다. 젊은 시절 사과과수원에서 공동체 생활을 했던 잡스는 사과를 가장 완벽한 과일로 생각했다. 제품이 사과처럼 아름답고 완벽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애플이라는 이름을 선택했다고 잡스 주변 인사들은 전했다.

애플 로고는 처음엔 사과나무 아래 있는 뉴턴을 형상화했으나, 1978년 오늘날처럼 한 입 베어먹은 사과 모양으로 바뀌었다. 1998년 단색으로 단순화하기 전까지 애플이 22년간 사용한 로고는 무지개 색의 사과였다. 이 로고를 두고 영국 과학자 앨런 튜링과 연결짓는 설명이 있다. 튜링은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의 암호 체계를 해독해내어 연합군 승리에 결정적 공로를 세웠지만,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화학적 거세형을 받는다. 수모를 못견디고 튜링은 1954년 청산가리를 주사한 사과를 베어물고 자살했다. 무지개 깃발은 성소수자 상징이라는 점에서 한입 베어 문 무지개 사과가 튜링을 기린 것이라는 해석이다.

애플의 최고경영자 팀 쿡이 10월말 <비즈니스위크> 기고에서 “게이임이 자랑스럽다”고 커밍아웃을 한 이후 반향이 확산되고 있다. 최고경영자가 동성애자임을 공개한 일은 세계 500대 기업 처음이고, 애플은 기업 가치 세계1위의 기업이다.

커밍아웃 이전부터 쿡은 동성애 매체에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게이 1위로 꼽혀왔다. 쿡은 잡스와 달리 기업 경영자로서 사회적 메시지 발언을 삼가지 않아왔다. 쿡은 성소수자에 대한 관심을 넘어 수시로 미국 민권법과 마틴 루서 킹의 인권운동을 언급하며 각종 차별 철폐를 말해왔다. 애플의 로고가 디지털세상의 혁신 아이콘을 넘어 차별 반대 기업의 상징까지 지니게 될지 관심이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원문보기:
https://m.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662517.html#cb#csidxb90ed549c3185958c70cff8360ac17d


TAG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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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5 稱其德也, 그 덕을 칭찬하다.

논어와 놀기 2021. 8. 20. 21:57 Posted by 문촌수기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다. 그러나 칭찬도 지나치면 역효과가 난다. 미치듯 춤추는 고래가 모래톱에 걸려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면 제 몸만 상하고 만다. 지나친 칭찬은 그릇된 행동을 가르치게 된다.
재주가 많아도 교만하면 비난들을 일이 많아진다. 덕이 없으면 칭찬은 사라지고 만다. 재주가 많으면서도 덕이 있으면 들을 칭찬은 배가 된다.

14.35 “驥不稱其力, 稱其德也.”
(기불칭기력, 칭기덕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기마(준마)는 그 힘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덕을 칭찬하는 것이다." (사람이 재주만 있고 덕이 없다면, 어찌 칭찬할 만하겠는가.)
The Master said, "A horse is called a ch’i, not because of its strength, but because of its other good qual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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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아니, 돼지+닭 ~ 피그다그

이런저런 이야기 2021. 8. 19. 12:04 Posted by 문촌수기

동네 신리천 공원길을 산책하다가 간판의 이미지에 먼저 눈길이 끌렸다. 새로운 가게가 들어섰다.
어? 저기 고양이가? 우리 순이같은 고양이가 매력적으로 서있다. 반려묘 캣맘을 위한 가겐가보다.
예쁘게 디자인 되어 가까이 가서 바라본다.

어라? 그런데 고양이가 아니라, '돼지와 닭'이었다. 이런 걸 착시라 하나? 나만 이런 바보같은 눈을 가졌나? 의아해본다.
이미지도 특별했지만 가게 이름도 재미있다. 이런 것을 창의적(creative)이라고 하나보다. '피그(pig)와 닭(다그ㆍdag)', 서로 다른 것의 절묘한 결합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메뉴로 장사하는 가게가 새로 생겼다. 꼭 가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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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3 불억불신, 믿어 주지 않을까?

논어와 놀기 2021. 8. 12. 21:55 Posted by 문촌수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서운해하지 않는다면 군자가 아니겠는가?(人不知, 而不慍, 不亦君子乎?, 학이0101)" 또 말씀하셨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자신의 능하지 못함을 걱정해야 한다.(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학이0116)"
성현의 말씀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필부라서 서운함을 지울 수 없구나. 나를 몰라주는 남을 원망하며, 서운해하는 나 자신을 부끄러워 한다.

14‧33 子曰: “不逆詐, 不億不信, 抑亦先覺者, 是賢乎!” (자왈 불역사 불억불신 앙역선각자 시현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남이 나를 속일까 미리 짐작하지 않고, 남이 나를 믿어주지 않을까 억척하지 않으나 또한 먼저 깨닫는 자가 어진 것이다."
The Master said, "He who does not anticipate attempts to deceive him, nor think beforehand of his not being be- lieved, and yet apprehends these things readily (when they occur);– is he not a man of superior worth?"

불역사 불억불신 앙역선각자 시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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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死無盡生

카테고리 없음 2021. 8. 9. 22:35 Posted by 문촌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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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ㅡ경북매일 신문. 2021.08.05 에서.

조선시대 전설적인 충비(忠婢) 단량(丹良)의 이야기가 지역 예술단의 창작 마당극으로 무대에 오른다.
포항향토무형유산원과 예심국악소리(대표 장임순)는 오는 14일 오후 5시30분 포항시청 대잠홀에서 단량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는 마당극 ‘금줄을 걸어라’를 공연한다. 마당극 ‘금줄을 걸어라’는 현대를 살아가는 영일만 여인들의 삶을 해학적으로 그려가며 그 속에서 생명의 존귀함을 알고 끝내 지켜낸 노비 단량의 이야기를 연기, 춤, 노래가 어우러진 완성도 높은 마당극으로 그려낸다.

예심국악소리 마당극 ‘금줄을 걸어라’ 포스터. /예심국악소리 제공
1452년 수양대군이 정권을 잡기 위해 계유정난을 일으키자 영의정 황보인도 첫째와 둘째 아들, 두 손자와 함께 죽음을 맞게 됐다. 이렇게 황보 씨의 대가 끊길 위기에 처하자 계집종 단량은 젖먹이였던 황보인의 어린 손자 황보단을 물동이에 숨겨 피신했다. 그렇게 서울에서 포항 구룡포까지 천 리 가까이 도망친 이들은 구룡포에 터를 잡고 살게 된다. 이렇게 황보 일가는 단량의 목숨을 건 희생을 시작으로 근 300년간 몸을 낮추고 간신히 맥을 이어갔다. 정조 때가 되어 누명이 풀리고 나서야 황보 씨 가문은 다시 살아났고 단량의 고마움을 기려 비석을 세웠다.
예심국악소리는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충비 단량 공연을 통해 주인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친 노비 단량의 희생정신과 생명 사랑 정신을 되새기고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성동리 뇌성산 기슭에 자리한 광남서원에 세워진 단량비를 널리 알리기 위해 공연을 기획했다. 10여 명의 출연·스태프 진은 섬기던 주인의 대가 끊기지 않도록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고 헌신했던 단량의 이야기를 시민들에게 전하기 위해 오랜 연습을 거쳤다.

장임순 예심국악소리 대표
예심국악소리 대표 장임순 씨가 대본을 쓰고 박지명 씨가 작곡을 맡았으며 7명의 어린이들이 연기를 맡아 포항의 소리와 포항의 이야기를 전통 마당극 기법으로 살려 해학적이고 감동 있는 공연을 선사할 예정이다.
장임순 예심국악소리 대표는 “예로부터 금줄은 악귀를 몰아내는 경계의 의미와 신성한 곳을 상징하는 벽사진경(辟邪進慶)의 의미를 담고 있다. 생명의 존귀함을 담고 있는 금줄을 통해 뜻하지 않은 일상의 어려움을 잠재우고 새 생명의 탄생과 생명의 존귀함을 몸속까지 품고 있는 영일만 여인들의 모성애를 통해 다시 일어서는 영일만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고 말했다.
한편, 포항 토속민요 전승의 선구자로 불리는 장임순 대표는 2014년 포항에서는 최초로 포항 토속민요 공연을 시작해 화제를 모았으며 2019년 마당극 ‘석곡뎐’에 이어 두 번째 포항역사 인물로 단량의 이야기를 마당극으로 선보여 포항역사 알리기에 앞장서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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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정 황보 인의 노비 단량, 멸문지화를 막아낸 광남서원의 사연

영의정 황보 인의 노비 단량 멸문지화를 막아낸 광남서원의 사연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성동3리 뇌성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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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7 恥言過行, 말보다는 행실을 먼저

논어와 놀기 2021. 8. 5. 21:54 Posted by 문촌수기

나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말이 있다. "약속하지 말자"라고. 지키지 못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도 살면서 어떻게 약속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그러니 쉽사리 약속하지 말며, 말부터 앞서지 말며, 약속을 했으면 꼭 지켜야겠다.
<중용(中庸)>은 “(할 말이) 남아도 감히 다하지 아니하고, 말이 행동을 돌아보게 하고 행동이 말을 돌아보게 하여야 한다.(有餘不敢盡 言顧行 行顧言)"고 하였다.

14‧27 子曰: “君子恥其言而過其行.”
(군자치기언이과기행)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말을 부끄러워하고, 행실을 말보다 더 한다."
The Master said, "The superior man is modest in his speech, but exceeds in his actions."

어떻게 하면 근심없이 의혹없이 두려움없이 살 수 있을까? 그냥 "내일은 없다."며 말처럼 쉽게 살아간다면 편히 살 수 있을까?

14‧28 子曰: “君子道者三, 我無能焉:
仁者不憂, 知者不惑, 勇者不懼.”
(군자유삼도 아무능언 인자불우 지자불혹 용자불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의 도가 셋인데 나는 능히 그렇지 못하다.
인자는 근심하지 않고, 지자는 의혹하지 않고, 용자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The Master said, "The way of the superior man is three- fold, but I am not equal to it.
Virtuous, he is free from anxieties;
Wise, he is free from perplexities;
Bold, he is free from fear."

군자치기언이과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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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육, Unizine 2006 10월호 기고했던 파일을 옮긴 것입니다.
ㅡㅡㅡㅡ
1.‘디지로그’란?
교육과 오락이 결합된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라는 말처럼 오늘날에는 서로 다른 개념을 결합시켜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는 혼성어가 유행이다. ‘디지로그’도 바로 근래에 유행하는 새로운 혼성어이다. 디지로그(digilog)란 디지털(digital)과 아날로그(analog)라는 서로 상대되는 뜻을 가진 두 개의 개념이 결합된 용어로 IT시대를 대표하는 디지털과 인간관계를 대표하는 아날로그의 결합을 가리키는 말이다.

2. ‘디지로그’ 세대
21세기 정보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디지로그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특히 IT인프라와 모바일 통신기반이 잘 갖추어진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디지로그인(digilog人, digilogin)’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역을 좁혀 바라본 ‘디지로그 세대’는 오늘날의 “대~한민국!” 주인공이며 미래의 통일한국 주역인 우리의 청소년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정보통신기술을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개방적 사고를 지향하고, 믿음과 협동과 인정으로 만나는 관계를 중시하며, 생각을 행동으로 실천할 줄 아는 21세기 문명 세계의 주인들’이다.

3. ‘디지로그’ 형(型) 교육
‘디지로그 형의 교육’ 역시 아직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다만 아날로그형의 전통적인 교수 학습활동에 디지털 형의 ICT(Information Communication Technology)를 적절하게 활용하여 수업을 설계하고 진행하는 교육을 말할 수 있다. 가령, 수업 중에 인터넷 동영상을 보여준 다음 학생들로 하여금 토론을 하게 하거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얻은 정보를 재구성하여 주어진 학습지를 완성하는 등의 ‘아날로그 형과 디지털 형이 결합된 교육’을 말한다.

4. ‘디지로그 세대’를 위해 통일교육
가. 노래, 영상물, 영화로 배우는 통일교육 (discography)
머리보다는 가슴에 호소하는 수업이 바로 ‘노래로 배우는 통일교육’이다. 또한 북한의 영화, 음악 등을 통해 북한사회의 현실을 이해하고, 남북의 이질성을 인정하는 자세를 형성하기 위한 목표로 진행되는 수업이 ‘북한 영상물 시청학습’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디지로그 세대의 기호에 맞춰 분단과 통일환경을 그린 다양한 영화(국경의 남쪽, 태극기 휘날리며, 웰컴투 동막골 등)와 TV영상물 등을 시청한 다음, 통일의지 형성 등의 느낌을 보고서 양식에 맞춰 기록하거나 발표하게 하는 수업이 ‘영화로 배우는 통일교육’이다.
○ 통일 노래, 북한 영상물, 영화 감상문을 학습지에 작성 발표
○ 통일의 노래와 영상을 담고 있는 홈페이지
인터넷 통일학교, 노래로 부르는 통일교실 등
○ 북한의 영상물, 영화, 음악을 접할 수 있는 인터넷 웹사이트
- 사이버통일교육센터, 통일부 북한자료센터
○ 북한 관련 TV영상물 제공 인터넷 VOD 자료실
- KBS 1TV 남북의 창, KBS ‘아름다운 통일’,
MBC TV 통일전망대
남북의 창>
https://news.kbs.co.kr/mobile/vod/program.do?bcd=0031#20210724&1

남북의 창

남북의 창 | KBSNEWS

news.kbs.co.kr

통일전망대>
http://m.imbc.com/program/1000847100000100000

통일전망대 | GO! MBC

방송: 토(아침) 7시20분 - 통일을 조망하는 시선, <통일전망대> <통일전망대>는 북한의 최신 뉴스와 북한 주민의 생활상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시청자 친화적인 방식으로 생생하게 전해드립

m.imbc.com


나. 가상 체험학습(simulation)
분단과 통일의 현장을 직접 견학하거나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또한 직접 견학할 수 있는 공간도 한계가 있다. 이를 보완해주는 체험학습이 바로 ‘가상 체험학습’이다. 가상 체험학습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상상과 사이버 공간을 체험 학습장으로 설정하고 마치 직접 현장을 다녀온 것처럼 보고서를 작성하는 학습방법이다. 가상 체험학습은 가상 시간체험학습, 가상 공간체험학습으로 구분하여 지도할 수도 있다.
- 가상 공간체험 : 사이버공간을 통해 북한 내의 문화재, 평양의 거리및 북한 사람의 삶의 현장 등을 직접 다녀온 것 같이 기행문을 작성
- 가상 시간체험 : 남북한이 통일된 이후의 가상의 미래를 마치 현실세계에서 체험한 것처럼 수필, 일기문 형식으로 작성

○ 통일교육 홈페이지 활용-가상 체험보고서 작성-블로그, 카페 등 탑재
○ 가상(공간) 체험학습 참고 홈페이지 : 북한의 행정구역, 문화재, 명절, 화폐단위, 철도, 도로망 등 북한여행에 대한 기본적 지식 갖기
- 사이버통일교육센터-청소년 통일배움터-가상 북한체험
- KBS 아름다운 통일-03기획마당-사이버 현장체험
- 노래로 배우는 통일교실-통일캠프 교실-북한 문화재탐방
- KBS 아름다운 통일-03기획마당-사이버 현장체험
- 노래로 배우는 통일교실-통일캠프 교실-북한 문화재탐방

가. 노래로 배우는 통일교실

http://www.korearoot.net/unikorea/

노래로 배우는 통일교실 - 중고등학교 통일교육

www.korearoot.net

나. 교육부 통통평화학교
http://tongil.moe.go.kr/index.do;jsessionid=nvMsagD50Hxk4JIgxJ3SNV0zUHbd5HaWFsw4TfvePYq7BjS2JUys1MltvHuVVJiH.tongilweb_servlet_engine4

통통평화학교

평화·통일 교수·학습자료, 창의적체험활동자료, 평화·통일교육 행사 소식 제공

tongil.moe.go.kr

통일교육원
https://www.uniedu.go.kr/uniedu/home/cms/page/uniedu/main.do?mid=SM00000865&main=true

통일부 국립통일교육원

통일교육자료제공, 원내/사이버교육, 통일체험마당, 통일교육주간, 공공부문 실적등록

www.uniedu.go.kr


다. 블로그를 활용한 통일교육 (AD형 또는 DA형)
교사는 개인 블로그를 개설하여 ‘북한 이해, 남북관계 이해, 통일주제’ 등의 폴더와 메뉴 등을 구성한 다음, 각종 통일기관 인터넷 홈페이지 이벤트와 행사를 안내하고, 통일과 북한 관련 소식과 자료를 수집하여 스크랩하고, 학생들의 현장체험 학습보고서 제출 등 수행평가 학습활동 결과물과 학생 만화, 게시판 작품 등의 사진 자료를 탑재하여 교육 콘텐츠로 활용한다.
○ 각종 통일자료 홈페이지 웹 스크랩 - 통일교육 블로그에 정리 - 수업중 활용
각종 학습지, 각종 보고서, 학생 작품 등 통일교육 학습 결과물의 디지털 변 환(스캔 또는 디지털 카메라 촬영) - 블로그 탑재 - 정보와 콘텐츠의 공유
○ 통일교육을 위한 블로그
예 ㅡ 문촌수기ㅡ통일그리기, 통일게시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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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살아가며 삶과 사람과 사랑의 이야기를 주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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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근영의 문촌수기

그냥 살아가며 삶과 사람과 사랑의 이야기를 주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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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참여하기와 후원하기
인터넷을 통하여 북한을 돕고 있는 단체의 홈페이지를 검색하고 학생들에게 안내한 다음, 실질적으로 북한을 돕는 후원활동에 참여하게 한다. 후원에 직접 참여하는 비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통일교육의 과정이 거의 끝나고 어느 정도 교육목적이 달성되었다고 판단될 때에 효과적이다.
○ 북한 돕기 기관 홈페이지 검색 안내 - 적절한 동영상 시청 - 영상 소감문 작성 또는 이메일 확인하기 - 홈페이지 후원신청 - 후원금 발송
○ 북한 돕기 기관과 홈페이지 - 우리민족 서로돕기 운동, 월드비전

마. 이메일로 확인하기 (DA형)
‘통일을 위한 노력’이나 ‘북한 어린이 돕기 위한 나의 다짐’을 이메일로 작성 한 다음, 자신과 교사가 함께 받도록 보낸다. 교사는 학생의 다짐을 읽고 학생면담을 통해 격려하고 상담을 하며 실천을 장려한다.
○ 통일교육 학습이 끝난 다음, 학기말 또는 학년말에 여유를 갖고 학생들로 하여금 ‘통일을 위한 노력과 다짐’, ‘통일교육 학습 반성’ 등에 관한 내용을 자신과 교사에게 동시에 이메일로 보내며 약속을 함- 교사는 답신 메일로 격려함.

5. 마치면서
한 민족으로서 동질성 회복을 위해서는 북한을 바로 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 그러면서도 북한 문화가 우리와 상이함을 이해하도록 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북한을 이해하고 민족 갈등을 긍정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부동이화(不同而和)’의 자세가 필요하다.

비록 같지 않지만 화합하는 부동이화의 자세는 통일관이 서로 다른 보수와 혁신세력의 화합, 기성 세대와 청소년 세대의 어울림,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만남, 다양한 교과의 통일을 위한 노력을 촉구하는 정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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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4 爲己之學, 배워서 남 주나?

논어와 놀기 2021. 7. 24. 21:51 Posted by 문촌수기

코로나19 창궐로 연기된 도쿄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양궁의 금메달 소식은 국민들을 크게 위로하였다. 특히 17살 고등학생의 패기 넘치는 "코리아 파이팅!" 함성은 경기장을 쩌렁하게 울렸다. 호방한 기세는 상대를 압도하였다. 메달보다 더 큰 활기를 국민들에게 전했다. 궁도는 스포츠 이전에 인격 수양법이었다. 집중력을 키우고, 세상을 읽는 도리를 가르쳐 주었다. 옛날의 선비들이 익혀야 했던 교육과목을 육예(六藝)라 하였다. 예(禮ㆍ禮容), 악(樂ㆍ음악), 사(射ㆍ弓術), 어(御ㆍ馬術), 서(書ㆍ서도), 수(數, 수학) 등 6가지 기능이다. 육덕(六德, 知仁聖義忠和), 육행(六行, 孝友睦婣任恤)과 더불어 경삼물(卿三物)이라고 했는데 이것으로 인재를 선발할 때 표준으로 삼았다 한다.

활을 쏘았는데 적중하지 못했다면 소인배들은 활과 화살 탓하고, 바람을 탓하거나 남 탓을 한다. 그러나 대인은 바람을 읽지 못한 나를 탓하고, 활과 화살의 특성을 알지 못한 내게서 문제점을 찾고 고쳐 나간다.
오랜만에 붓을 들어 나의 '반구저기(反求諸己)'를 돌아본다. '도리어 나에게서 구하라.'는 -맹자의 말씀이다. 다시 수양하고자 활을 들고 과녁 앞으로 가야 겠다.

14‧24 子曰: “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 (고지학자위기, 금지학자위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옛날에 배우는 자들은 자신을 위하였는데, 지금의 배우는 자들은 남을 위한다."

고지학자위기, 금지학자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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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들이 꼭 알아야 할 일은, 우리 집안도 난민이었고 이산가족이었다는 사실을!

그러니깐 나의 할아버지께서는 해방된 조국에서 이산가족으로 사셨다는 거야.
나의 <통통이의 이야기> 속에 우리 운암가족사를 넣었어.
그리고 이건 가족사 뿐 아니라, 언젠가는 다시 찾아야하고 그때까지 잊지 말아야 할 민족사이지. 바로 간도땅, 운암 할아버지,
나의 아버지께서 청소년 시절까지 사셨던 고향(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쳥현)이야. 주인공 통통이를 치훈이의 아들로 여기고 읽으면 될거야. 그럼, 이야기 속의 할아버지는 누구지?

  •  

분단의 고통은? ㅡ 할아버지의 슬픈 이야기

할아버지는 한숨을 쉬시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휴우~. 한국전쟁은 수백만 명이 죽었고 천만 명에 가까운 이산가족을 발생시켰단다. 그 당시 인구로는 세 명 중 한 명이 전쟁으로 가족을 잃거나 헤어졌다는 얘기지. 아마 이 지구상에 부모 형제, 부부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소식을 알 수 없고, 소식을 전할 수도 없으며, 만날 수도 없는 나라는 아마 우리 밖에 없을 거야.”
“할아버지, 이산가족이 뭐예요?”


통통이가 해맑게 물었습니다.

“이산? 이산? 어디서 들어본 이름 같은데…….”


통통이가 궁금해 할 때, 누나가 손뼉을 딱 치며,

“앗! 정조대왕님 맞죠! 그런데 정조대왕의 가족은 아니죠? 그죠?”

역시 상상력이 좋은 우리 누나답다.

“허허허허…… 그래 너희들 정조 임금님 이름도 알고 잘 배웠구나. 통통이가 말한 이산가족은 이리저리 흩어져서 서로 소식을 모르고 살아가는 가족이라는 뜻이지. 그래서 이산(離散)은 슬픈 거란다. 그런데 통통아, 너는 어떨 때 가장 아프니?”
“주사 맞을 때가 아파요. 치과에서 이를 뽑을 때 무섭고 아팠어요.”
“저도 그래요 할아버지.”


누나가 맞장구를 치자 할머니도 한마디 하셨어요.

“하하하. 할머니는 너희 아빠를 낳을 때 가장 아팠단다. 엄마들은 그렇게 아파하면서 아이를 낳지만, 그때가 가장 행복했단다. 호호호.”
“가장 아프면서도 가장 행복했다고요?”

통통이는 할머니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어요. 알 듯 모를듯하다면서 고개를 이리저리 갸우뚱거렸어요.

“그래, 주사를 맞거나 이를 뽑을 때 아픈 것은 잠시이지만, 참으로 오래가는 아픔이 있단다. 지워지지 않는 고통의 기억이 바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지. 너희들은 그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겠지? 그래도 상상은 할 수 있을 거야. 너희가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을 잃어버렸을 때를 상상해봐.”
“맞아요.”
“그래요. 많이 고통스러울 거예요.”

통통이와 누나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할아버지가 옛날이야기를 하나 해줄까?”
“예, 할아버지! 신나요. 재밌는 이야기해주세요.”


통통이는 할아버지의 무릎 가까이로 다가갔어요.

“평화도 이리 와서 들어보렴. 그런데 재밌는 이야기는 아니란다. 슬픈 이야기지.”
“괜찮아요. 할아버지. 저는 슬픈 이야기가 감동이 있어서 더 좋아요.”


누나가 말했어요.

‘쳇, 슬픈 이야기에 무슨 감동이 있다고?’ 통통이는 속마음을 감추고 할아버지 말씀에 귀를 기울였답니다.

“이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의 이야기란다.”
“예,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럼 ‘왕 할아버지’라고 불러야 해요?”

통통이가 웃으며 말했어요. 누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어요.

“에이~ 아니겠지, 아니죠? 할아버지”
“허허허. 고조할아버지란다.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증조(曾祖)’ 또 그 위를 ‘고조(高祖)라고 하는 거야.”


통통이는 알았다는 듯 나섰어요.

“아하, 높을 고(高), 높은 할아버지네.”
“그렇구나. 높은 할아버지. 허허허”


드디어 통통이는 아빠한테서 배운 ‘높은 고(高)’자를 써먹으면서 또 어깨를 으쓱 올렸습니다.

할아버지의 옛날 이야기는 이랬습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러니깐 고조부 식구는 고향을 떠나 중국 땅 만주에서 살았답니다. 그때의 우리나라는 일본에 나라를 빼앗겨서 핍박을 받으면서 살았습니다. 나라도 없으니, 우리 백성들은 가난하였고 꿈을 이루기도 어려웠고 이름마저도 빼앗기고 살았던 거죠. 그래서 일제의 지배
에서 벗어나 북쪽 땅 만주로 피난을 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난민이라고 부르죠. 난민이 되어 춥고 거친 만주 땅에서 가난하게 살았지만 그래도 자유로웠습니다. 그곳에서 독립을 위해 싸우는 우리의 독립군들에게 숨을
곳을 내어주고 심부름도 하면서 우리나라 독립운동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면서 살 수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우리가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해방이 찾아왔어요. 고조부모님은 식구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답니다. 모든 식구가 다 같이 조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고조부는 먼저 어머님만 모시고
자녀들을 데리고 남쪽 고향으로 내려오셨어요.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통통이 할아버지 식구들은 남한에서 살고 있답니다. 그런데 큰 문제가 생겼어요. 우리 조국 한반도가 그만 둘로 나눠졌답니다. 일제를 쫓아내면서 우리는 바로 독립한 것이 아니라 북위 38도 선을 경계로 북쪽은 소련이
점령하고, 남쪽은 미국이 점령하면서 한반도의 허리가 갈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만 오도 가도 못하는 분단선이 그어지고 말았죠. 그래서 고조부는 만주에 사는 아버지와 헤어지고 동생들과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만주는 공산국가 중국 땅이어서 남한으로 돌아올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고조부의 동생 한 분만 고향 땅 가까이에 가신다며 북한의 해주까지 내려 오셨다가 더 이상 오지 못하고 그곳에서 돌아가셨답니다.

결과적으로 고조할아버지 가족들은 대한민국과 북한과 중국으로 떨어진 이산가족이 되었습니다.
부부이면서도 서로 죽는 날까지 함께 살 수 없었고, 부자지간에게도 함께 만날 수 없었고, 형제들끼리도 평생을 헤어져 사시다가 돌아가셨답니다.
이렇게 남북의 분단은 통통이의 할아버지에게 큰 슬픔을 안겼답니다. 생각해 보세요. 사랑하는 부부가 함께 살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는 비극이 어디 있습니까? 하늘의 견우와 직녀도 일 년에 한 번, 칠월 칠석 날에는 만난다는데 말이죠. 통통이는 아는 체 하며 말했어요.

  •  

“그러니깐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는 이산가족이란 거죠?”

그러자 누나가 금방 끼어들며 말했습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뭐냐? 고조부라고 해야지. 고조부모님은 결국 이산가족이 된 거죠?”

누나가 얄밉기도 하지만 통통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그렇지. 너희들의 고조부님께서는 아버지랑 동생들과 헤어져서 평생을 사셨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더욱이 그 어머니는 사랑하는 남편과 자녀들과 헤어져 소식도 모르고 사셨으니, 돌아가시는 날까지 얼마나 고통이 컸을까, 상상할 수 있겠지?”

말씀하시는 내내 할아버지는 두 눈이 촉촉이 젖어 있습니다. 할머니의 뺨에도 눈물이 흘러내렸어요
. 누나도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 냈습니다. 통통이도 가슴이 울렁거렸습니다. 이산가족의 슬픔을 이제야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 愛別離苦, 애별리고-사랑하는 이와 헤어져야 하는 고통. 인생 8고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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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말고 되찾아야 할, 간도와 백두산

백두산을 중심으로 그 북쪽 땅을 간도라고 합니다. 일찍이 고구려와 발해의 땅이었고 이후에도 우리 조상들이 개척하여 농경지를 만들어 살아오던 곳이 었습니다. 통통이의 고조부모님이 사셨던 곳이며, 윤동주 시인의 고향이고 안중근 의사 등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활동 장소였습니다.
을사늑약(1905년)으로 대한 제국의 외교권을 뺏은 일제는 청나라(지금의 중국) 와 간도협약(1909년)을 맺으면서 우리 조상들이 살던 간도 땅과 백두산 천지의 일 부를 청나라에 넘겼습니다. 강제로 맺은 을사늑약이 무효가 되기 때문에, 대한 제 국의 참여 없이 일본과 청이 맺은 간도협약도 당연히 무효가 되는 것입니다. 북한도 남한의 동의 없이 중국과 비밀리에 조중변계조약(1962년)을 맺었습니다. 이 조약으로 백두산과 천지를 경계로 하는 국경선이 확정되었고 백두산과 천지의 반을 중국 땅으로 넘기고 말았습니다.
북한 땅에서 바라본 백두산 관광객들. 이들 대부분은 한국인들입니다. 중국 땅으로 백두산에 올랐습니다.
남북이 통일되면 간도와 백두산을 다시 우리의 땅으로 찾아올 수 있을까요? 대단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중국이 쉽게 내놓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냥 포기하고 덮어 버리면 안 됩니다. 통일 한반도의 주인공인 남북 어린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고, 바로잡아가야 할 역사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계속 관심을 갖고 연구를 이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언젠가는 우리의 영토와 역사를 되찾을 수 있을 겁니다.

  • 백두산 천지 ~ 안타까운 것은 중국 땅에서 한반도 방향으로 촬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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