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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집 그저께 시인 이상(李箱)의 집을 찾았다. 오랜만에 문이 열려 들어갈 수 있었다. 다행이다. 시인 이상의 아내, 변동림과 화가 김환기의 아내, 김향안의 이야기 ~ 뮤지컬, 라흐 헤스트 ㅡ 조선일보 뮤지컬 ‘라흐 헤스트’는 시인 이상과 화가 김환기, 그리고 두 예술가의 아내이자 수필가와 미술평론가로 주체적인 일생을 살았던 김향안(1916~2004)의 삶을 바탕으로 해요. 김향안의 본명은 변동림인데, 극 중에선 시기를 구분해 시인 이상과의 만남과 이별까지는 ‘동림’역으로, 화가 김환기와의 만남부터 여생까지는 ‘향안’ 역으로 설정합니다. 동일 인물이 2인 1역으로 등장하는 독특한 구성이 돋보입니다. 니다. 문법을 무시하거나 수학 기호를 나열하고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이상의 시는 당시 한국 문학에서 시도된 적이.. 2023. 11. 1.
밥 딜런이 노벨상을 받은 진짜 이유는? https://youtu.be/eiByFXx3-Ig?si=fKcom3VbMnYA-yY4 2023. 10. 30.
덕수궁돌담, 정동길 산책 대한제국의 황궁, 덕수궁과 정동골목길을 산책한다. 서울시청에서 출발한다. 환구단/황궁우 - 서울시청 - 덕수궁(대한문-중화전-석조전-준명당-돈덕전-즉조당-석어당-함녕전-평성문) - 고종의 길 - 서울시립미술관 - 정동감리교회 - 정동극장 - 이화학당(심슨기념관) - 구 러시아공사관(아관파천터)-최초의 수녀원자리 - 돈의문터 - 돈의문박물관 - 경희궁 - 경교장 - (서울시교육청) - 월암공원 - 홍난파가옥 - 딜쿠샤(서울역사박물관) - 사직단 / 또는 독립문광장, 서대문형무소 2023. 10. 29.
정동길 산책 - 홍난파 가옥 홍난파가옥 1930년 독일계 선교사 가옥으로 지어진 이 집은 '고향의 봄', '봉선화', '퐁당퐁당' 등 주옥같은 우리 가곡과 동요를 남긴 작곡가 홍난파가 1935년부터 6년간 거주하면서 말년을 보냈기에 '홍난파의 집'이라 부른다. 1900년대 초반 부근 송월동에 독일영사관이 위치해 있었기에 이 일대는 국내 독일인들의 주거지였다. 홍난파는 이 집에서 지내면서 그의 대표작 가운데 많은 작품을 남겼다. 서쪽 도로를 통해 마당 안으로 들어와 계단을 오르면 현관으로 이어지는 이 집은 지붕이 가파르며 거실에는 벽난로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남쪽 현관과 이어진 복도의 서쪽과 동쪽에는 각각 거실과 침실을 두고 가파른 경사지를 이용하여 거실의 아래쪽에는 지하실을 두었는데, 이는 공간을 알뜰하게 활용하던 당시 서양인 주.. 2023. 10. 29.
정동길 산책 - 경교장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이었던 백범 김구 선생이 1945년 11월에 중국에서 돌아온 후 1949년 6월 26일 안두희의 흉탄으로 암살당하기 전까지 집무실과 숙소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본래 이 건물은 일제 때 금광을 경영하여 거부가 된 최창학이 지은 저택인데 갑신정변 당시의 일본 공사였던 다케조에(竹添)의 성에서 따 죽첨장(竹添莊)이라 했는데, 해방이 되자 친일 행위를 뉘우친다면서 이집을 백범 선생의 거처로 제공하였다. 김구는 이 집의 이름을 만초천 위에 놓은 다리 이름인 경교(京橋)에서 따와 경교장으로 바꾸었다. 1948년 4월 19일 김구가 반공 학생들의 반대 시위 속에서도 남북협상을 위해 길을 떠난 곳도 바로 이곳에서 부터이다. 우여곡절 끝에 1967년 삼성 소유로 넘어갔다. 이후에도 병원 확장 등의.. 2023. 10. 29.
정동 인문학 산책 - 돈의문터 ■ 돈의문(敦義門) 터 한양도성의 서대문인 돈의문이 있던 자리이다. 돈의문은 태조 때 처음 세워졌다. 여러 사연이 있지만 새문, 신문(新門)으로 불렸으며 현재의 ‘새문안’, ‘신문로’라는 지명도 여기에서 유래하였다. 1915년 일제는 이곳으로 지나는 전차를 개통하면서 이 문을 해체하고 건축자재는 매각하였다. 경교장을 나와 큰 길이 있는 길로 내려오면 현재 돈의문 터를 찾을 수 있다. 다만 ‘보이지 않는 문’이라는 이름의 공공 미술품이 설치되어 있다. 이 큰 길을 넘어 경향신문사에서부터 구 러시아공사관터, 정동제일교회, 배제학당, 덕수궁까지의 정동골목길과 서소문터에서 숭례문까지 또한 수많은 인문학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23. 10. 29.
성공회 대성당에서 사직단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현장을 찾아가는 길이다. 저녁이면 선생님들의 협의회가 있다. 겸사겸사 아침부터 길을 나서 서울 나들이에 나셨다. 코스 잡기를, 동탄에서 광역급행버스를 타고 을지로입구역 정류장에서 버스하차, 여기서부터 걷기를 시작한다. 서울시민청ㅡ성공회주교좌 성당과 영국대사관ㅡ조선일보미술관ㅡ새문안교회ㅡ한글학회ㅡ주한중국문화원ㅡ사직단 새로 지어진 서울시청과 옛 서울시청(도서관)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곡선과 직선의 대조, 유리와 돌의 대조, 참 어울리지 않은 짝과 같다. 그렇다면 새 것을 옛 것에 좀 더 어울리게 할 순 없었을까? 그래도 어쩌랴. 지나간 것은 지나 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다니....보기에 따라 좋게 보는 사람도 있겠지 뭐. 대한성공회 주교좌 성당 : 높은 곳에서 바라본 주교좌 성당이.. 2023. 10. 28.
대한제국 선포! 환구단 1897년(광무 원년) 고종은 경운궁으로 환궁하여 그해 8월 17일 광무(光武)란 연호를 쓰기 시작하고10월 3일 황제 칭호 건의를 수락하였다. 고종은 자주 의지를 대내외에 널리 표명하고 땅에 떨어진 국가의 위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면 반드시 제국이 되어야 한다고 판단하였으며, 10월 12일 원구단(園丘團)에서 상제(上帝)님께 천제를 올리고 국호를 대한제국이라 고치고 황제를 자칭하면서 즉위하였다. 대한제국이 선포되자 각국은 대한제국을 직접으로, 간접으로 승인하였다. 그중 제정 러시아와 프랑스는 국가 원수가 직접 승인하고 축하하였으며 영국, 미국,독일도 간접으로 승인하는 의사를 표시하였다.[5] 그러나 당시 열강 대부분은 대한제국의 성립을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 제위에 오른 고종은 그 직후인 11월 12일.. 2023. 10. 28.
한양과 서울의 이름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한양에서 시작해서 파란의 역사를 거치면서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세계적인 거대도시 서울로 확장하기 까지. 먼저 그 이름의 유래가 궁금했다. 눈 '설(雪)의 울타리'라는 전설은 참 재미있지만, 허구에 가깝고, 서라벌ㆍ새벌에서 유래했다는 설에는 신빙성이 갔다. [한양이라는 이름] 무엇보다도 조선의 수도, 한양(漢陽)이라는 이름은 늘 불만스럽고 의문투성이다. 우리나라를 뜻하는 한(韓)이 아니고, 왜 중국을 뜻하는 한(漢)을 썼냐는 것이다. 강둑의 북쪽은 햇살을 잘 받으니, 볕 양(陽)가 들어가는 고을 이름을 갖는다는 말에는 공감이 간다. '한강의 북쪽 고을'이라서 한양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설명은 영 마뜩찮다. 아니 성의가 없다. 한강(漢江), 한수(漢水)의 '한(漢)'에 대해 설명.. 2023. 10.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