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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이 좋은 날, 일일시호일 저자거리에서 나물을 파는 할멈은 맑은 날이나 비오는 날이나 매냥 슬픈 얼굴을 지었습니다. 그러다가 장마지거나 가뭄이 지면 나날이 눈물을 흘리며 앉아 있었습니다. 저자길을 자주 지나던 스님이 그 모습을 보고는 무릎을 굽혀 이 울보 할멈에게 물었답니다. "어찌 할멈은 매냥 우시오. 그 사연이나 함 들어봅시다." 슬픈 마음을 하소연할 길 없어 답답하던 터에, 때 마침 자비롭게 물어보는 스님이 여간 고맙지 않았습니다. 할멈은 신세 타령을 늘어 놓습니다. "아, 글쎄. 이내 신세 어찌나 박복한지요. 영감 일찍 저 세상 보내고 어렵게 어렵게 두 딸년을 키웠건만, 큰 딸은 짚신장수한테 시집가고, 작은 딸은 우산장수한테 시집을 갔지 뭡니까? 가뭄이 길어지면 작은 딸네 우산이 안 팔릴 것이고, 장마 때가 되면 큰 딸네 .. 2023. 10. 20.
7번국도와 아시안하이웨이 6번 포항에서부터 7번국도를 타고 강릉으로 왔다. 오늘 길에 아시안하이웨이 6번 노선을 안내하는 큰 이정표를 두번 봤다. 그러나 촬영에 실패했다. 카메라 준비가 늦었다. 도로명을 새긴 안내판은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튿날 강릉에서 주문진으로 다시 올라가는 7번국도 이정표는 AH6 글자만 적혀있다.아시아지역 32개국 간의 협정으로 21세기판 실크로드인 아시안 하이웨이 이정표가 국도 7호선에 설치됐다. 대한민국 부산광역시에서 시작해서 북한, 러시아, 중국, 카자흐스탄을 경유하여 벨라루스에서 끝나는 아시안 하이웨이 간선노선이다. 러시아-벨라루스 국경선에서는 유럽 고속도로 30호선(E30)과 직결하여 폴란드, 독일, 네덜란드, 영국, 아일랜드까지 이어진다. 정확히는 카자흐스탄-러시아 서측 국경에 E30이 .. 2023. 10. 14.
사이와 그 너머 모네가 "포플러 연작"을 그린 것은 당시 유럽에 유행했던 '자포니즘 (Japonism)'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일본의 목판화 (우키요에) 를 본 모네는,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후지산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사물의 사이 그 너머로 보이는 모습'을 그리는 것은 당시 유럽에선 그려지지 않던 풍경이었다. "사이와 그 너머, between and beyond, 間과 超, inter et ultra, Meta" 지금 여기에 있는 나, 그것에 감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나와 너 우리 사이에, 지금을 넘어서 내일은, 여기를 벗어나 저기에, 무엇이 있는지를 찾는 것은 더더욱 소중하다. 2023. 10. 6.
괴테와 롯데 서울 근처에 3,40년을 살면서, 잠실에도 종종 와 봤다. 딸 신혼살림 집도 근처라서 경부고속도로를 달려오며 자주 올려다 보던 롯데월드타워를 오늘에사 처음으로 와 봤다. 마침 '하늘이 열린다'는 개천절이라, 마치 하늘로 오르는 사다리 밑에 서 있는 듯 하다."어, 그런데 여기에 왜 괴테상이 있지?" 폰으로 검색하니, LOTTE 롯데의 회사명이 괴테에서 비롯되었다 한다. 독일 베를린 티어가르텐 공원에 있는 괴테상을 3D 스캐닝과 컴퓨터 작업 등을 통해 그대로 본떠 제작한 뒤 한국으로 옮겨온 것이란다. 롯데의 창업주인 신격호 회장이 청년기 때, 괴테의 을 읽고, 첫 사랑 샤롯데(Charlotte)를 향한 베르테르의 참된 사랑에 큰 감명 받았다. 1941년 식민지 백성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자수성가하였으며, 해.. 2023. 10. 4.
태극기 게양 어제 아침 헬스장 다녀왔다. 아파트 경비실입구, 내 키보다 낮은 자리에 태극기가 게양되어있다. 낯선 모습에서 알게됐다. "아하 , 국군의 날이구나!" 담임을 할 적에는 아이들에게 국기게양을 잊지말라고 해놓고선. 도덕윤리 선생하며 누구보다도 뿌리찾기교육을 강조하며 국가정체성 함양교육에 매진했으면서. 퇴직하고나니 감이 떨어졌나보다. 그제나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그냥 그날이라 여기며 살아간다. 하기사, 일없는 無事한 날에 감사하다. 분리배출장을 정리하시는 경비 아저씨께 감사하다고 인사드렸다. 어질러진 곳을 정리해주시고 잊고 사는 것을 깨우쳐 주시고 모르게 사는 것을 알게 해주시고 추석연휴에 남들 놀때 근무하시니 이리 저리 여러모로 마냥 감사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오랜만에 태극기를 찾아 게양했다. 내일이.. 2023. 10. 2.
빵 발림과 발림칼 아침식사로 사과 반쪽먹고, 샐러드, 그리고 버터에 구운 모닝빵 서너조각에 잼이나 스프레드 발라서 핸드드립한 커피한잔으로 먹으면 흡족하다. 아내가 만든 스프레드는 정말 맛있다. 그런데, '스프레드'라는 말이 영 마음에 안든다. 'spread'라면 '펼치다'는 뜻이다. 빵 위에 잼이나 치즈 등을 펼쳐서 발라 먹으니 그렇게 부르겠지만, 우리네 정서로 펼치는 것은 '멍석을 까는 일'과 같다. Excel과 같은 스프레드 시트 컴퓨터 프로그램에 익숙해서인지 더더욱 음식 이름으로는 용납이 안된다. 이 기회에 우리말로 고쳐부르자며 아내랑 식사 중에 상의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빵발림, 빵발리미' 그리고 잼 나이프는 '발림칼'로 부르기로 했다. '뭐, 우리끼리라도'. 그래, 우리말로 고칠 수 있다면 고쳐서 부르자... 2023. 10. 2.
목멱상풍(木覓賞楓) 십경 서울의 남산을 목멱산(木覓山)이라 불렀단다. "왜 목멱산이라 했을까?" 특히나 '찾을, 멱(覓)'이 낯설다. '소를 찾는다'는 '심우(尋牛)'는 들었어도 나무를 찾는다, 나무가 찾는다는 말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 궁금하다. 왜 쉬운 남산을 두고 어렵게 목멱산이라 불렀을까? 그 어원과 출처가 궁금해서 찾아 보았다. '백악(白岳)을 진국백(鎭國伯)으로 삼고, 남산(南山)을 목멱대왕(木覓大王)으로 삼아 남산 정상에 국사당에 모셨기에 목멱산이라 한다'는 글을 읽었다. 그 답에 말꼬리를 또 잡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깐 왜, 목멱대왕이라 불렀냐고요?" 그렇게 꼬리를 물다보니 드디어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이제야 조금은 의문이 풀렸다. '마뫼'에서 목멱이 왔던 것이다. 순우리말로 남쪽을 '마'라고 부른다. 그래.. 2023. 9. 30.
한가한 한가위, Try To Remember 구월에 맞는 한가위. 작년에도 그랬는데, 올해따라 낯설게 느껴지네요. 올 추석에는 갈 곳도 없고 올 사람도 없이 더욱 한가합니다. 문득 Try to Remember를 흥얼거리다가 하모니카로 불었어요. 노랫말처럼 더욱 마음에 와 닿습니다. "Life was slow and oh, so mellow" 그렇네요. 제 삶이 느려지니, 더욱 느긋해시고 유유해집니다. 뭐라고 할까요? '한가한 한가위' 이런 즐거움도 괜찮네요. 온 가족이 행복하고 건강한 한가위 되길 빌어요.이 노래를 부르다보니, 9월(September)에 불러야 할지, 12월(December)에 제 맛일지 궁금증이 일어나네요. 이런 것도 삶이 느긋해져서 생긴 실없는 증상이죠? 하하하. '리맴버, 셉템버, 디셈버, 엠버(ember)' 이런 음운도 재밌.. 2023. 9. 29.
샌드위치에 김치 샐러드 환상 치아바타 샌드위치를 즐겨먹는다. 집에서 손수만든 사과잼도 발라 먹으려다 말고, 어제 담궈 식탁위에 익혀려 놔둔 김치겉절이를 봤다. '저거랑 같이 먹어볼까?'우아! 김치도 샐러드가 되는구나. 기대 이상이 아니라, 환상의 조합이었다. 오래전 중학교에 근무할 적에 미국에서 온 원어민 영어선생님은 유독 김치를 좋아했다. 식판에 밥보다 김치가 더 많이 담아와서는 샐러드같이 먹었다. 맵지않냐고 물었더니, 스파이시한 샐러드를 참 좋아한다며 김치야말로 최고라고 했다. 한가한 한가위의 아침 식탁, 김치 샐러드에 치아바타 샌드위치 그리고 핸드드립 커피 한잔. 모짜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참 좋은 아침이다. 2023. 9.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