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죽음에 대하여.....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10죽음의 문제.hwp

▣ [읽기] : 공자의 사생관
  제자 계로가 스승 공자에게 물었다. "어떻게 귀신을 섬겨야 합니까?"  이에 스승은 되묻는다. "사람 섬기는 일이냐? 귀신 섬기는 일이냐?" 그 물음을 분명히 파악하기 위함이며 제자에게 자기 물음에 다시 깊이 생각해보게 함이다. 이에 제자는 "감히 죽음을 여쭈는 것입니다."
  사람 섬기는 일은 산 이에게 하는 일이고, 귀신 섬기는 일은 죽은 이를 받들어 제사 드리는 일을 뜻하는 것이다. 이에 공자님께서 명답을 내 놓으신다. 아니 답이 아니라, 삶과 죽음에 대한 본질을 파악하라는 더 큰 의문을 제자에게 던지신다.

○"삶을 알지 못하는 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 (未知生 焉知死)-11선진편
                                                    
  과연 공자는 삶도 알지 못하고 더더욱 죽음도 알지 못하였을까? 계로와 공자님의 말씀에 정자(程子, 이천)은 이렇게 주석한다. "낮과 밤은 생사의 도리이다. 생의 도를 알면 사의 도를 알 것이요, 사람 섬기는 도리를 다하면 귀신 섬기는 도리를 다할 것이니, 삶과 죽음, 사람과 귀신은 하나이면서 둘이요 둘이면서 하나이다." (死生人鬼 一而二 二而一者也)
  생사의 문제를 과연 공자는 알았을까 몰랐을까? 그것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다만, 우리들로 하여금 삶에 충실하고 가까운 사람들-부모 형제 친구 이웃-에게 도리를 다하며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은연히 말씀하신 것이다. '죽음을 모르신다' 하셨지만 모르신 것은 아닌 것 같다. 공자는 제자 안회의 죽음에 통곡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 하늘이 날 버렸구나. 하늘이 날 버렸구나”
(噫! 天喪予, 天喪予!)-11선진편

  안회는 살아서 학문을 좋아했건만 평생을 가난하게 살다가 너무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버렸다. 그런 제자가 안 되었기에 너무나도 불쌍해서 통곡하신 것이겠다. 죽음 이후가 기쁨이고 안락이라면 그렇게 불쌍하진 않았을 것이다. 죽음은 현재와의 영원한 단절이고 사라짐인가 보다.
  공자님께서는 이렇게도 말씀하셨다.

○"아침에 도를 들을 수 있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朝聞道, 夕死可矣)-04이인편


  대체 도(道)가 무엇이길래 죽어도 좋다 했을까? 죽음과도 맞바꿀 수 있는 도(道)는 무엇일까?



▣ [생각만들기] :  나에게 죽음이란?     나에게 도(道)란?

  TED 강연으로 크게 알려진 캔디 창(Candy Chang)은 도시를 좀 더 편안하고 명상적인 장소로 만드는 예술가, 디자이너, 그리고 도시 설계자이다. 그녀는 2009년 사랑하는 어머니를 갑자기 여의게 되고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왔던 시간에 대해 깊이 감사하게 되고, 잊고 살았던 삶의 의미를 찾으며 중요한 것을 잃지 않고자 했다. 그래서 친구들의 도움으로, 버려진 집 담벽에 ‘Before I die, I want to ~(나 죽기 전에 무엇을 하기를 원한다)’라는 낙서판을 만들었다. 무엇을 기대해서가 아니었다. 그냥 죽음 앞에서 삶의 중요한 의미가 무엇인가를 묻고 싶었던 것이다. 이렇게 방치된 공간은 희망과 꿈을 다시 찾게 해주는 사색적이고 건설적인 공간으로 변했다. 이 낙서판은 전 세계적으로 번져 갔다. “나 죽기 전에, 나는 완전한 나 자신이 되고 싶다.(Before I die, I want to be completely myself.)” 등등.
  그녀는 말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가치 있는 것 중 두 가지는 시간(Time)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Relationships with other people)입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사람들은 꺼리지만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당신의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죽음에 대한 고찰은 삶을 명확하게 해줍니다.” 
(Thinking about Death clarifies your Life.)


▣  [생각만들기]
: 버킷리스트와 ‘Before I die, I Want to ~  ’ 쪽매맞춤과
  삶과 죽음의 가치를 드러내는 일언명구(一言名句, 캐치프레이즈)  

  죽음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가르쳐 준다. 죽음에게 삶의 길을 물어보자.

 

▣  [생각나누기]  : 버킷리스트와 ‘Before I die, I want to ~’
                                                      
(나 죽기 전에,  ..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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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성의 전당 2018.08.09 16: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저는 지성의 전당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죽음에 대해 관심 있어 하시는 것 같아 댓글을 남겨 보았습니다.

    '불멸의 자각' 책을 추천해 드리려고 합니다.
    인문학 도서인데, 한번 검토 부탁드립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아래는 책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인식할 수가 있는 ‘태어난 존재’에 대한 구성요소에는, 물질 육체와 그 육체를 생동감 있게 유지시키는 생명력과 이를 도구화해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의식과 정신으로 나눠 볼 수가 있을 겁니다.

    ‘태어난 존재’ 즉 물질 육체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역할을 다한 도구처럼 분해되고 소멸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육체를 유지시키던 생명력은 마치 외부 대기에 섞이듯이 근본 생명에 합일 과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와의 동일시와 비동일시 사이의 연결고리인 ‘의식’ 또한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보충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단절작용을 ‘죽음’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존재의 일부로서, 물질적인 부분은 결단코 동일한 육체로 환생할 수가 없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의식’ 또한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간이자 전제조건으로서, 물질로서의 근본적 정체성, 즉 나타나고 사라짐의 작용에 의한 영향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타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으며, 태어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불멸성으로서, 모든 환생의 영역 너머에 있으므로 어떠한 환생의 영향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에 대한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자 실체로서, ‘있는 그대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체에 의한 작용과정으로써 모든 창조와 소멸이 일어나는데,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는다는 것입니까?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을 하고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윤회를 합니까?

    정신은 물질을 이루는 근간으로서의 의식조차 너머의 ‘본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윤회의 영역 내에 있는 원인과 결과, 카르마, 운명이라는 개념 즉 모든 작용을 ‘본체’로부터 발현되고 비추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태어난 ‘한 사람’, 즉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로 여기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은 스스로 자율의지를 갖고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태어나고 늙어지고 병들어지고 고통 받고 죽어지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임을 외면하기 위해 카르마라는 거짓된 원인과 결과를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거짓된 환생을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거짓된 속박, 즉 번뇌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환영 속의 해탈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거짓된 자기견해 속의 환생과 윤회는,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려면 반드시 비교 대상이 남아 있어야 하며, 대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 어떠한 자율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는 꿈속의 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뚜렷하고 명백하다 할지라도 ‘나뉨과 분리’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나’에 대한 그릇되고 거짓된 견해만을 바로잡았을 뿐입니다.


    www.uec2018.com

09. <세한도>에서 읽는 군자의 절의(節義)

09세한도와 논어.hwp

읽기 : <세한도>속의 이야기

<세한도>(국보 180)는 제주도에 유배 온 지 5년이 지난 추사(秋史) 김정희가 나이 59(1844) 때 그린 것이다. 척보면 그다지 잘 그렸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안견, 겸재, 단원, 혜원 등 내노라는 전문화가의 그림과 비교해서 그렇다는 것이지, 아마추어인 선비들이 그린 문인화 중에서 최고봉으로 손꼽을 만하다. 특히 이 그림이 담고 있는 심의(深意)를 알고 나면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보물(국보 180)이 되었다.

죄를 짓고 귀양 간 사람을 자주 찾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행여라도 당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까 두려울 것이다. 방문이 잦았던 여러 제자들도 세월이 흐름에 따라 발걸음이 점차 뜸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관(譯官)이었던 제자 이상적(李尙迪, 18041865)은 통역관으로 청나라로 다녀올 적마다 귀한 책들을 구해서 스승에게 보내드렸다. 이에 스승은 제자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하여 고마움을 전하고자 그림을 그려서 주었다. 그림 속에는 자신의 처한 상황과 제자의 한결같은 마음을 그려내고 기록하였다. 이 그림이 세한도이다.

  세한도는 그림과 글자로 크게 두 개 영역으로 나누어 있다. 그림은 반듯하게 자란 세 그루 잣나무, 세파에 휘어지고 늙은 한그루의 소나무 아래에 허술하게 지어진 집이 한 채 보인다. 추운 때라는 세한(歲寒)’이라는 화제가 없어도 참으로 써늘한 기운과 찬바람이 불어온다. 집도 낯설다. 우리의 와당도 아니고 초당은 더욱 아니다. 낯선 지붕 뿐 아니라 둥근 창도 낯설다.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집이 아니라 빈 축사나 창고와 같다. 갈필(渴筆)로 그린 소나무는 메마르게 늙어있고 잎이 다 떨어지고 줄기가 꺾인 상태에서 겨우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빈 집과 소나무는 마치 추사 자신을 그린 듯하다. 그렇다면 추운 겨울철에도 푸른 잎을 간직한 채 곧게 뻗어 있는 세 그루의 잣나무는 누구일까? 허물어 질듯 한 빈집을 바로 곁에서 든든하게 받쳐주는 가운데의 잣나무는 외로울 적에도 곁을 떠나지 않고 귀한 책들을 보내 왔던 제자 이상적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왼쪽의 두 그루 잣나무는 누구란 말인가? 유배당한 죄인을 멀리 않고 차와 그림으로 교유를 이어간 초의선사와 소치 허유이지는 않을까? 억지 추측이지만 나름 재미있는 상상도 해본다.

그림의 오른쪽에는 예서체로 세한도(歲寒圖)’라며 화제(畫題)를 쓰고, 제자 이상적에게 이 그림을 준다는 의미로 예서의 기운을 간직한 해서체로 우선시상(藕船是賞)’완당(阮堂)’을 썼다. ‘우선이에게 드리네. 완당이이라는 뜻이다. ‘우선(藕船)’은 제자 상적의 호이다. 그림과 글씨를 감상하다가 눈길을 왼쪽으로 가면서 자칫 놓치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꼭 눈여겨 보고 가야할 곳이 있다. 바로 가장 오른쪽 하단의 붉은 색 장무상망(長毋相忘)’ 유인(遊印) 낙관(落款)이다.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는 뜻으로 스승과 제자의 아름다운 정을 새겼다. 나에게도 이렇게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며 약속한 제자가 있었던가? 스승이 있었던가? 그런 친구 있었던가?

이 그림은 보면 볼수록 문자향(文字香)과 서권기(書卷氣)’를 강조한 추사의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림을 보았으니 이제 그림의 사연을 적은 발문(跋文)을 읽어보자.

  지난해에 두 가지 <만학>, <대운> 책을 부쳐왔고, 금년에는 <우경문편>이라는 책을 부쳐왔는데, 이는 모두 세상에 흔히 있는 일이 아니요. 머나먼 천리 밖에서 구한 것이며, 여러 해를 걸쳐 얻은 것이요, 일시적인 일이 아니다. 더구나, 세상은 물밀듯이 권력만을 따르는데, 이와 같이 심력을 써서 구한 것을 권력 있는 사람에게 주지 않고, 바다 밖의 한 초췌하고 메마른 사람에게 주었으니,  세상 사람들이 권력자에게 추세하는 것과 같구나. ......(중략)...........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날이 차가워진 이후라야 소나무 잣나무는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 고 하였다. 송백은 사철을 통하여 시들지 않는 것으로서, 날이 추워지기 전에도 하나의 송백이요 날이 추워진 후에도 하나의 송백이다. 성인이 특히 세한을 당한 이후를 칭찬하였는데, 지금 군은 전이라고 더한 것이 없고, 후라고 덜한 것이  없구나. 세한 이전의 군을 칭찬할 것 없거니와, 세한 이후의 군은 또한 성인에게 칭찬 받을 만한 것 아닌가? 성인이 특별히 칭찬한 것은 한갓 시들지 않음의 정조와 근절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또한 세한의 시절에 느끼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 (후략) - 완당(阮堂) 노인(老人)이 쓰다.

[나의 세한도] ~ 세한도 패러디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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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비주얼 씽킹으로 공부하는 논어

08비주얼씽킹과 논어.hwp

What > 비주얼 씽킹(Visual Thinking)이란?

 글과 그림을 함께 이용하여 생각과 정보를 표현하거나 기록하는 것

보여주는 생각’=> 그림으로 생각하기, 생각의 시각화, 시각 사고법

나에게 비주얼 씽킹이란? __________이다.

왜냐하면? ____________________이기 때문에.

나의 생각> 비주얼 중요할까, 씽킹이 중요할까?’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비유해봅니다. 비주얼은 손가락이며, 씽킹은 달 입니다. 그렇다고해서 결코 달이 목표가 될 수는 없죠. 달은 수업에 사용되는 소재(요리재료)에 불과합니다.

 

Why > 비주얼 씽킹은 왜 필요한가?

읽는 시대에서 보는 시대로, 이미지 중심의 훑어보기 문화, 데이터의 단순화된 정리와 정보의 빠른 이해가 요구되는 사회, 한 장의 사진이나 이미지가 주목 받는 SNS 세상, 우뇌가 발달되고 나아가 창의 융합형 인재가 성공하는 세상, 남다른 개성과 창의성으로 생각을 정리 표현하기

 

Why > 비주얼 씽킹의 효과는?

비주얼 씽킹은 '생각의 그림'입니다. 그림은 마음 속 그리움을 보여주는 것이구요.

How > 비주얼 씽킹 언어를 표현하는 틀 : 8개의 씽킹맵(Thinking Maps)
그리고 다양한 형식의 맵핑 활동지

실습1>비주얼 씽킹 언어 : 글자, 숫자, 기호, 인물, 배경(시공간), 사건, 글상자, 화살표 등

 

실습2 > 핑거맵 두들링(손가락 그림 그리기) : 오행(五行)과 오상(五常)

오행(五行) : 동양 철학에서 우주 만물의 변화양상을 5가지로 압축해서 설명하는 이론. 5행이라는 것은 인간 사회의 다섯 개 원소로 생각된 ((((()의 운행변전(運行變轉)을 말한다. ()이라는 것은 운행의 뜻이다. ~참조: 오행 상생상극도

오상(五常) : 유교에서 ()ㆍ의()ㆍ예()ㆍ지()ㆍ신()의 다섯 가지 기본적 덕목이다.

실습3 > 스몸비(Smombie) 경고 캠페인과 논어의 교훈

미국의 경우, 지난 10년 동안 스몸비 관련 사고로 응급실을 찾은 사례가 10배나 증가했다. 국내에서도 2016년에 발생한 스몸비 관련 사고는 1360건으로 2011년보다 배 이상 늘었다.

호주보행자위원회는 광고대행사인 'DDB 시드니'에 공익광고 디자인을 의뢰했다. 딜런 해리슨(Dylan Harrison)이 이끄는 창의적인 디자인팀은 "한눈팔지 마라멈춰라, 보아라, 들어라, 생각하라"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각각 소녀, 소년, 어린이를 등장시킨 3부작 신문 광고와 TV 동영상 광고를 디자인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6/02/2017060203135.html

 "Don't Tune Out." - 한 눈 팔지 마라.

Stop-멈춰라.    Look-보아라.

Listen-들어라. Think-생각하라.

4개의 동사는 현대인들에게 반성적 삶을 촉구하는 도덕적 명령이기도 하다.

아래의 친구는 기특하게도 내가 이야기 하는 것을 귀담아 듣고 활동지에 기록하였다.

    *멈추라 ~ 자연훼손, 물질만능, 탐욕과 시기와 다툼을...
*보아라 ~ 자연의 아름다운과 세상 사람들의 고통을
*들어라 ~ 이웃과 친구의 말을, 아기의 웃음 소리를, 진리의 말씀을
*생각하라 ~ 내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그리고, 실천하라(D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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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돈과 도(), 참된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07돈과도-진정한 행복.hwp

[읽기] 빈부(貧富)와 길[]

인생은 한방이다.’이라는 허망한 생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일확천금을 노린다. 심지도 않고 경작하지 않은 채 수확하고자 한다. 은이들도 사이버 도박, 로또(lotto), 비트코인(bit coin)에 빠져 헤매고 있다. 돈도 청춘도 건강도 다 잃어버리는 절망의 젊은이들이 없기를 바란다.

子曰 富與貴 是人之所欲也 不以其道 得之 不處也,

貧與賤 是人之所惡也 不以其道 得之 不去也

(자왈, 부여귀 시인지소욕야 불이기도 득지 불처야
빈여천 시인지소오야 불이기도 득지 불거야) - [이인04]편에서

부귀는 사람들이 바라는 바이나, 로써(정상적인 방법으로) 얻지 않았으면 처하지 말며, 빈천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바이나, 로써(정상적인 방법으로) 얻지 않았다면 버리지 않아야 한다.”

子曰 志於道 而恥惡衣惡食者 未足與議也

(자왈, 지어도 이치악의악식자 미족여의야) - [이인04]편에서

에 뜻을 두고서, 허름한 옷과 거친 음식을 부끄러워하는 사람과는 를 의론할 수 없다.”

飯疎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반소사음수 곡굉이침지 낙역재기중의 불의이부차귀 어아여부운) - [술이07]편에서

  “나물밥 먹고 맹물 마시며 팔을 굽혀 베고 자도 즐거움이 또한 그 속에 있다.
옳지 못한 부귀는 내게 있어서 뜬구름과 같다

      나쁜 방식으로 부를 얻어서는 절대 안 되며, 가난 또한 나쁜 방식으로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도(正道)를 따라 부귀를 얻고 빈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그러나 세상의 일이 다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이 있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처지가 있다. 그렇다하더라도 가난을 부끄러워하는 사람과는 함께 진리의 길을 걸어 갈 수 없다. 일단사 일표음(一簞食 一瓢飮)’할지라도 도를 찾아가는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않겠다는 안회(顔回)와 같은 사람은 되기 어렵지만, 헤진 옷을 입고 거친 밥을 먹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소인배는 되지 말아야 한다.

[생각만들기] 부정하게 부귀를 얻는 방식은 뭘까?

()에 뜻을 두고 부귀를 얻는 방식은 뭘까?

나에게 돈이란? 나에게 도(道)란? > 개인활동

[생각나누기] 물질적 풍요와 도덕적 삶의 행복 > 개인활동

[생각나누기] 물질적 풍요와 도덕적 삶의 행복 > 모둠활동

[생각 더하기] ○안중근의 유묵 ~ 불인자 불가이 구처약
   子: ", 樂, 仁者安仁 智者利仁"
    어질지 못한 자는 오랫동안 곤궁함에 처할 수 없으며, 장구하게 즐거움에도 처할 수 없다. (인자가 인을 편안히 여기고, 지자가 인을 이롭게 여긴다.)-이인편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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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hlgurwn33 2018.07.31 2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99. 참된 행복 선언 기념 성당을 순례하고
    (첫 서원 25주년 기념 성지 순례)

    참된 행복 선언 성당을 둘러보니 정말 좋았다
    참된 행복이 하늘나라이니 천정에 기록 하였나
    참된 행복의 조건을 바닥에서 발견 하였다
    그것은 신, 망, 애덕, 지덕, 의덕, 용덕, 절덕 이였다
    나는 평상시 확인한 것을 여기서 확인하였다
    신, 망, 애덕, 지덕, 의덕, 용덕은 따져서 뭘 하겠나
    절덕만 잘 지켜도 우리는 성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결, 청빈, 순명인 복음삼덕도 절덕에 포함되는 덕이다
    교황님 주교님도 이 길을 가지 않고 행복 할 수 있을까?
    나는 광야하면 지식이 없어 모래 언덕으로만 알았는데
    이스라엘의 광야는 전체가 석회석인 돌산이라니
    그래서 세례자 요한도 예수님도 광야, 광야 하던데
    이스라엘은 전체가 광야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그것도 남한보다 작은 땅을 12지파가 나누어 가졌다니
    남북이 470㎞이고 동서가 135㎞인 손바닥만 한 땅
    모든 것이 하느님의 지혜이고 하느님의 뜻이겠지만
    큰 성전 터를 보고 깜짝 놀랐는데 로마의 국교였을 때
    큰 성전들도 파괴되고 얽히고 설키고 지어진 것들
    예리고도 결국에는 물이 있어서 도시가 형성 되었고
    군사 요충지도 결국에는 물 저장고를 파야만 하니
    지금도 선조 신앙인들의 삶과 희생이 목이 탑니다
    지금도 선조 신앙인들의 하느님 사랑이 목이 탑니다

    ※ 참된 행복 선언 기념 성당 바닥에 모자이크로 새겨진 글(라틴어) : FIDES(신덕), SPES(망덕), CHARITAS(애덕), PRVDENTIA(지덕), IVSTITIA(의덕), FORTITVDO(용덕), TEMPERANIA(절덕), LAVS TIBI CRISTE(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참조.
    ※ 곱비신부님 메시지「성모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아들 사제들에게」책 588번 ‘참 행복의 길’ 편【8.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은 복되다.(마태 5장 8절) 내 아기 예수님 안에 하느님께서 현존하신다. 아기의 마음은 하느님의 마음이다. 내게서 인성을 취하셨지만 그분은 하느님이시다. 따라서 아기 속에서 뛰고 있는 심장은 하느님의 심장이다. 이 어머니의 팔에 안겨 있는 아들에게서 하느님을 뵈어라. 뛰고 있는 이 심장에서 하느님 심장의 고동을 느끼면서 사랑하는 법을 배워라. 마음의 순수함은 완전한 사랑에서 태어난다. 따라서 사랑하는 사람만이 깨끗한 마음에 이를 수 있고, 마음이 깨끗한 사람만이 하느님을 뵐 수 있다. 9. 평화를 이룩하는 사람들은 복되다.(마태 5장 9절) ‘평화’ 자체이신 아기가 너희를 위하여 여기 계신다. 그분의 이름이 곧 ‘평화’이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 그분의 생명이요, 온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것이 그분의 계획이다. 홀로 그분께서만 평화를 가져오실 수 있고, 오직 하나의 가정을 이루도록 하느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이의 마음을 평화롭게 하실 수 있다. 그분을 거부한다면 세상은 결코 평화를 알지 못할 것이다. 12. 홀로 그분만이 너희의 참 행복이다. 참 행복의 길을 가르쳐 주시는 분도 그분이니, 누구든지 그 길을 걸어야 구원과 평화에 이를 수 있다. 그분은 조그만 아기의 모습으로 너희에게 진리와 생명의 길을 보여주시는, 영원하신 ‘아버지의 말씀’이시다. 그분은 아버지께서 영원으로부터 흐뭇해하시는 외아들이시다. 그분은 또 이 동정 어머니의 아들이시니, 그분을 그분 영광의 성전으로 모셔가는 오늘, 나는 너희 모두에게 되풀이해서 말한다 : 그분의 말씀에 귀를 귀울여라.】참조.

  2. chlgurwn33 2018.07.31 2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메시지 받은이 황옥희 데레사,「성모성심 메시지」책 ‘10. 천당가는 길(진복팔단)을 설명해줄 것이다.’ 편 3. 진복삼단【「연옥 가는 영혼의 탄식노래 : 연옥 불 찾아드니 뜨겁고 뜨겁다. 천당 길 못가고 성모님의 전달로 지옥은 면했으나 견딜 수 없는 혹독한 형벌, 하기 좋은 말로 연옥이라도 간다지만 불꽃같이 타는 연옥, 타고 타는 불 속이다. 속히속히 공로 세워 천당에 가세.
    연옥 불 만난 것은 내 탓이요, 내 탓이다. 세상에서 내가 왜 옳다고 판단하고, 해로운 소리 못 참아 받고, 내 잘못을 남에게 책임 지웠던고! 연옥 형벌이 뜨거워서 훌훌 뛰고 껑충거린다.
    마음을 태우느냐? 영혼을 태우느냐? 연옥불은 뜨겁다. 뜨겁도다. 연옥 불, 연옥의 일 초 동안이 이 세상 백 년만큼 지루하도다. 연옥의 하루가 이 세상 천 년과 맞먹는구나.
    길고 긴 연옥 보속 십 년을 기다려야 하네. 세상에선 고통이라 할 것도 아닌데 그 고통 못 참아 받고 연옥 불을 만났도다. 세상에선 고통이라 할 것도 아닌데 그 고통 못 참고서 연옥 보속 만났도다. 십 년 동안 연옥 불에 타는 도다. 타는 도다.
    내가 세상에서 재산만 모으려 했고 자녀 교육도 그렇게 시켜놓았으니 미사 한 대도 옳게 못 받는구나. 자녀들아, 미사 한 대 넣어다오. 나는 뜨거운 불 속에서 고통당한다.
    삼십 년, 사십 년을 연옥 보속하는 영혼, 백 년, 이백 년을 두고 고통 중에 영혼들이 불 속에 타고 있다. 세상 사람들아, 교우들아, 미사 한 대 넣어다오. 미사 한 대 넣어주면 그 공로 얼마나 많으랴.
    나는 어느 마을의 교우인 줄 아느냐? 성삼 영광이 드러난다면 성 본명 가르쳐주고 상주 본당에 따른 교우라고도 볼 수 있다.(86페이지 8째 줄부터 87페이지 21째 줄까지)」】참조.
    3. 진복삼단【「지옥 가는 영혼의 탄식노래 : 천주님요, 천주님요, 첨만 번 용서하셔서 저의 이 지옥 불 보속을 세상에 있는 교우들과 외교인들에게 알려주시도록 지옥에서 10년 동안 부르짖으오니 이름은 박태원이요, 본명은 예로니모이며 45세에 죽었도다.
    자녀는 네댓 되고 때가 되면 가르쳐주겠지만 맏아들은 현재 나이 35세이며 둘째 아들은 냉담자로 악한 표양을 주고 있다. 셋째는 딸인데 외교인한테 출가해서 장부한테 혹독한 고통을 당하며 성당에도 못 나가고 냉담자가 되어 있다. 넷째는 아들인데 아직까지 열심치 못하고 냉담자가 될까 말까 하고 있다.
    다섯째 자녀는 지옥에서 부르짖는 내 기도를 성모님이 은총으로 도와주시어 주를 공경하지만 어머니가 열심이 없고 아직도 냉담 지경에서 가끔 한 번씩 성당에 다니는 것뿐이다. 나이는 50이 넘었는데 본명은 최 누갈다라 하는지 누리시다라 하는지 방금 들었는데 잘 모르겠다. 살던 동네는 영광이 드러난 후 가르쳐줄 것이다.(97페이지 1-22째 줄까지)」】참조.
    ※ 인터넷 굿뉴스 성경본문검색「행복」: 구약성경 총132절 + 신약성경 총53절 = 구, 신약 총185절 참조.
    ※ 묵상집 ‘63. 참된 행복’ 편 참조.

  3. chlgurwn33 2018.08.22 1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30. 참된 행복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마태 5장 6절)
    그렇습니다 주님 믿습니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르도록
    옳은 일을 갈구하는 사람이라면
    어찌 만족이 따르지 않겠습니까?
    다만 내가 얼마나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사람이 될지
    나는 그것이 의문일 뿐입니다
    !!!.............................................
    부디 이 주림과 목마름으로
    하루만이라도 제대로 깨어있게 하시옵소서!
    목말라 하고 주리다 산상수훈을 깨닫습니다

    ※ 묵상집 ‘82. 7) 산상 설교〈참된 행복〉풀이’ 편 참조.

06. 소확행(小確幸)과 안빈낙도(安貧樂道)

06소확행과 안회의 안빈낙도.hwp

2018 트랜드 : 소확행(小確幸)

세상 많은 사람들, 돈을 행복의 기준으로 여기고 있다. 돈이 많으면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있고,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고, 나누어 줄 것도 많아서 좋다. 그러나 돈은 쉽게 얻지도 못하고 남들 같이 많이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남과 비교하다보면 늘 내가 덜 가진 것 같다. 그래서 더 많이 갖기를 바란다. 돈은 내가 많이 가지면 남의 것은 줄어들고, 남이 더 많이 가지면 내 것이 줄어든다. 결국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커지게 된다. 돈 때문에 다툼이 일어나고 사건이 발생하고 불행해지는 경우도 많다. 결국 돈이 진정한 행복을 가져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반면 행복의 기준을 마음에 두는 사람도 있다. 마음은 아무리 나누어도 내 것이 줄어들지 않는다. 생각하기에 따라 마음은 쉽게 키울 수도 있고 줄일 수도 있다. 2018 트랜드로 소확행이라는 말이 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얻자는 말이다. 크고 멀리 있는 행복을 쫓는 것이 아니라, 내 가까이에 쉽게 얻을 수 있는 행복이 있다. 그것이 소확행이다.
 
노자는 만족을 아는 자가 부자이다[知足者富].”라고 했으며, 예수는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했다. 논어에서 소확행을 찾고, 가난하지만 참 행복을 누리는 자는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본다.

노자 <도덕경> '지족자부(知足者富)'

공자의 수제자, 안회의 안빈낙도(安貧樂道)

공자에게는 많은 제자가 있었다. 그중에서 공자는 안회(顔回)를 특별히 사랑하였다. 안회의 자()가 자연(子淵)이라서 흔히 안연(顏淵)으로 불린다. 논어속에서 공자는 안회에게 한결같이 칭찬하고 있었다. 편애한 것이 아니라 칭찬을 들어 마땅할 만큼 덕행이 바르고, 학문을 좋아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안회는 30일에 아홉 끼 밖에 못 먹었을 만큼 가난하게 살았으며, 공부에 열중한 나머지 스물아홉에 백발이 되었으며, 결국은 영양실조에 걸려 일찍 죽고 말았다. 공자는 안회의 죽음을 애통해 하며, 세상이 나를 버렸구나 세상이 나를 버렸구나.(, 天喪予 天喪予ㆍ희, 천상여 천상여).” 라며 탄식하였다.

子曰 賢哉 回也. 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
不改其樂 賢哉, 回也 -논어6 옹야편.

(자왈, “현재 회야. 일단사 일표음, 재루항 인불감기우, 회야. 불개기락 현재, 회야.)

   어질도다, 안회여. 한 소쿠리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로 누추한 곳에 지내면서도 다른 사람은 그 근심을 견디어내지 못하거늘 안회는 즐거움을 잃지 않는구나. 어질도다 안회여.”

 

어느 누가 대소쿠리에 담긴 깡보리밥, 표주박에 담긴 물 한모금, 허물어지고 누추하기 짝이 없는 오두막살이를 좋아하겠는가? 비록 안회라 할지라도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안회가 그렇게 가난하게 살았어도 ()를 찾아가는 즐거움을 바꾸지 않았음을 강조하는 말이다. 뜻이 더 높고 큰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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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와 월드컵 단상

논어와 놀기 2018. 7. 2. 17:00 Posted by 문촌수기

지난 주 월드컵의 독일전 2:0 승리는 정말 통쾌했죠!?
그 전날, 출근길에서 길거리 응원을 같이하자며 붙여 놓은 현수막에서 이런 글을 보고 실소를 터트렸습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결정은 우리가 한다."

젊음의 호기가 부러우면서 당돌하기도 하여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죠.
'그래 맞아. 그렇게 친구들 만나고 밤새 즐기는 거지 뭐. '  

그런데도 나는 늦은 밤 새어가며 애태우는 게 견디지 못할 것 같아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제는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이라며 무디어 진 마음 탓인지 모르겠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vQW3tImkBXU

아침에 일어나 스마트폰을 켜고 제일 먼저 검색했어요. 눈을 비벼가면서, "2대 0승!" 다시 눈을 비비고, "누가 이겼단 말인가? 한국이, 한국이???  어???? 정말이네."
1%의 가능성을 한국이 이루었으며, '결정은 우리가 한다'는 그 말이 적중했습니다.  정말
멋진 일입니다. 비굴하게 공을 돌리며 16강에 올라간 어떤 나라는 손가락질과 비난을 받았는데, 우린 16강에 떨어져도 정말 당당했으며 최고의 스포트 정신을 보여주며 드라마를 연출 해내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끝까지 도전하고 최선을 다하는 정신을 보여 주었고, 우리 국민들에게 큰 위로와 기쁨을 주었습니다.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이 바로 이런거구나. 
'죽어도 사는 사람이 있고,
        
살아남아도 죽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 바로 이런구나.

 
아이들에게 <논어> 공부를 하면서 見利思義(견리사의)를 가르쳤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을 보여주면서.

 見利思義(견리사의) 견위수명(見危授命)
"이익을 보거든 (그 앞에서 눈 멀지말고),
     
무엇이 옳은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되라.  
  
(나라의)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드리우라." 

우리 아이들이 이로움보다는 의로움을 먼저 생각하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정정 당당하게 옳은 일을 실천하는 용기있는 젊은이로 키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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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05 부자의 갑질과 무교호례

논어와 놀기 2018. 6. 27. 20:36 Posted by 문촌수기
05. 부자의 갑질과 무교호례(無驕好禮)

  05부자의 갑질과 무교호례.hwp

 

▣ 읽기 : 가난과 부유에 대한 공자의 답변 

공자의 제자인 자공이 묻기를,

"가난하지만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지만 교만하지 않는 자는 어떻습니까?" 하니,
공자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괜찮다. 하지만 가난하지만 즐거워하고 부유하면서 예를 갖추는 자만 못하지." 
 子貢曰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자공왈 “빈이무첨, 부이무교, 하여?”)
 子曰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자왈 “가야, 미약 빈이락, 부이호례자야.”)    - [학이]편

  나는 어릴 때 가난하게 살았다. 이웃에 부잣집 아이가 있었다. 나 보다 조금 어린 그 아이는 종종 바나나를 들고 골목에 나타났다. 가난한 우리들에게 바나나란 천국의 음식과 같이 귀한 것이었다. 같이 놀던 친구들이 우르르 그 아이 앞으로 몰려가서 ‘한 입만, 한 입만’하며 입을 벌리며 따라 다닌다. 나는 속으로 침을 삼켰지만 그 모습을 들키기 싫었다. 그렇게 비굴해지고 싶지 않았다. 그것도 동생뻘 되는 아이한테.....‘저 자식, 다 먹고 나오지, 저걸 왜 들고 나와?’ 자랑하듯 들고 나온 그 놈이 실은 부럽기도 했지만 또 한편 엉덩이를 차버리고 싶었다.
   가난하게 살다보면 남에게 얻어먹기 위해서 아첨해야 하며, 부유하다보면 남들 앞에서 어깨가 올라가고 으스대는 것이 다반사이다. 보통 그렇게들 살아간다. 그러니 가난하지만 아첨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자존심을 지키니 잘했다고 할 수 있으며, 부유하지만 교만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주변을 살필 줄 알고 체면을 지키는 일이니 가상한 사람이다. 어느 누구도 가난하고 천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누구나 빈천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기에 아첨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살아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스승(공자)은 “괜찮다. 그것은 옳은 짓이다.” 라고 했다.
  그러나 스승은 그것보다 더 품격 있는 삶을 가르치신다. “가난하지만 인생을 즐길 줄 알고, 부유하지만 예를 잊지 않아야 한다.”(貧而樂 富而好禮ㆍ빈이락 부이호례). 재물이 많고 적음에 세상의 뜻을 두지 않고 그 큰 도리와 삶의 목표에 뜻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가난했음에도 불구하고 도를 찾아가는 즐거움을 바꾸지 않은 안회처럼. 겸손함과 어진 성품, 예의와 양보 그리고 나눔을 실천하는 자세로 갖는 것이다. 이러한 품격에 도달한 사람이야 말로 현명한 사람이고 삶과 인간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생각하기 : ‘가난하여도 즐길 수 있는 일/것’[貧而樂]은 어떤 것일까?”

 

▣ 안중근의 논어 유묵, 따라쓰기

     빈이무첨 부이무교ᆞ빈이락 부이호례

“가난하되 아첨함이 없으며, 부유하되 교만함이 없다.” -<학이>편
*안중근 의사 유묵
*동경도립 로카기념관 소장
“가난하더라도 인생을 즐길 줄 알고, 부유해도 예의 지키기 좋아한다.” -  <학이>편
*안의사를 존경하여 그의 글씨체를 흉내내어 씀.

▣ 뉴스거리 : 부자의 갑질
  부자나 높은 사람들 중에는 참으로 못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갑질 행위가 그들을 못난 사람으로 만든다. 특히 근래 모 항공사 회장의 두 딸들이 연달아 갑질 논란을 일으켜 뉴스의 초점을 받고 있다. 몇 해 전에는 큰 딸의 갑질 논란으로 그룹 회장인 아버지는 “자식 교육을 잘못시켰다”다며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또 둘째 딸의 갑질 행위로 국민들이 비난과 원성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어릴 적부터 부자로 살면서 잘못 배웠기에 교만을 부려서 온 국민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고 있으며, 얼굴을 못들고 다니는 꼴이 되었다. 가문의 수치가 되었고, 회사에도 큰 오명을 끼쳤다. 나라의 망신이라며 항공사의 이름[社名]에서 나라 이름을 빼고, 비행기에 그려진 태극마크[Logo]를 지우라며 국민청원이 들어가고 있다.
  남의 일이 아니다. 겸손하기는 어려워도 매사에 교만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 더 훌륭한 일은 정말 예의를 좋아하는 부자가 되어야 한다. 부이호례(부자이면서 예의를 좋아한다)는 어떤 행동일까? 어떤 모습일까? 그렇게 예의를 실천할 때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안중근 옥중유묵 <빈이무첨, 부이무교> 임서 
   ~ 잘 써지는 못했지만, 수업교실에 게시하여 안중근 의사의 정신을 흠모하면서 <논어>읽기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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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공자는 이런 삶을 살았다.

04공자 삶의 단계와 나의 삶.hwp

▣ 읽기 : 공자의 인생 단계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자왈 “오십유오이지우학, 삼십이립,
 사십이불혹, 오십이지천명, 육십이이순,
 칠십이종심소욕, 불유구.”) 
         - <爲政第二> LY02-04 위정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하였고, [지학]
서른 살에 자립하였으며, [이립]
마흔 살에 사리에 의혹하지 않았고, [불혹] 
쉰 살에 천명을 알았고, [지천명]
예순 살에 귀로 들으면 그대로 이해하였고, [이순] 
일흔 살에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 [종심]”

나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나의 인생, 생생하게 상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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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길에서 읽는 논어ㅡ안중근 의사의 삶과 유묵

03길에서읽는논어-안중근과견리사의.hwp

▣ 그의 정의로운 전쟁
  1909년(31세) 3월 2일 안중근은 김기용, 강기순, 백남규 등 11인과 동의단지(同義斷指)동맹을 결성하였다. 3월 5일에는 총기를 휴대한 약 300명의 의병을 이끌고 수청 방면으로부터 합십마 부근으로 이동하는 등 의병활동을 하다 이튿날 일진회 회원 박모를 응징하였다. 그해 4월 10일 이토 히로부미는 한국 병탄안을 찬성하였으며 7월 10일에는 일본 정부 각의에서 의결되고 일본 국왕은 그날로 재가하였다.
  그해 10월 9일 이토는 일본 국왕을 만나 3, 4주간 예정으로 만주를 여행한다는 계획을 알리고 18일 중국 다렌에 도착한다. 블라디보스톡에 머물던 안중근은 이 소식을 듣고 우덕순을 만나 이치권의 집으로 함께 돌아와 이토 히로부미 처단 계획을 합의한다. 10월 22일 안중근, 우덕순, 류동하는 하얼빈에 도착하였다. 이때 이토는 아침 뤼순을 출발하였다.
  드디어 역사적인 날. 10월 26일 아침 6시 30분경, 안중근은 새 양복과 모자를 쓰고 묶고 있던 집을 나선다. 7시경에 하얼빈에 도착하여 이토가 오기를 기다린다. 9시경 이토를 실은 열차가 하얼빈역에 도착하여 약 15분간 열차 안에서 코코프체프와 환담하였다. 9시 15분에 이토 히로부미는 하차하였다.
  9시 30분경 러시아 의장대를 사열하고 일본인 환영단으로 향하던 이토에게 당당하게 다가가 ‘저자가 필시 이토일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권총 세발을 발사하여 명중시켰다. 이후 곧장 그를 수행하던 사람들에게도 부상을 입혔다. 안의사는 죄 없는 수행원들까지 부상을 입힌 것에는 비통한 일이라고 재판장에서 말하였다. 그러나 이토의 얼굴을 확실히 알지 못하여 혹시라도 잘못 쏘았다면 일이 낭패가 되기에 그 주변인들이 이토라 여겨서 총을 발사하였다고 하였다. 그는 냉혈한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그는 정의로운 선비였다. 
  러시아 헌병이 안중근을 덮치자 그는 쓰러지면서 권총을 땅바닥에 떨어뜨리고 만국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러시아 말로 “코레아 우레”를 외친 다음, 하늘을 향해 “대한 만세”를 목이 터져라 세 번 외쳤다. 10시에 이토는 하얼빈 역에서 절명하였다. 그는 뜻을 이루었다. “일을 도모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고, 완성하는 것은 하늘의 뜻에 달려있다(謀事在人, 成事在天)”이라 하였는데, 하늘의 뜻도 안의사와 함께 하였던 것이다. 본시 이 글은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이 사마의의 군대를 화공(火攻)으로 물리치려 했으나 소나기가 내려 뜻을 이루지 못하고 탄식하며 했던 말이다. 그러나 안중근은 자기의 의거는 하늘의 뜻이었음을 밝히고 정당성을 부여하며 뤼순 옥중에서 먹을 갈아 이 글을 썼다.
  러시아 당국은 안중근을 일제에 인도하기로 결정하였다. 11시 55분에 거사를 함께 했던 우덕순 조도선도 피체되었다. 11월 1일 뤼순으로 압송되고 11월 3일 오전 10시에 연루 혐의자 9명과 함께 뤼순 감옥에 수감되었다.
  1910년 2월 7일부터 14일까지 중국 여순(뤼순)의 관동도독부 고등법원에서 안중근 의거에 대한 여섯 차례 공판이 열렸다. 2월 7일 1회 공판장에서 안중근은 “3년 전부터 대한의군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이등을 포살코자 했으며, 이 의거는 개인적인 원한이 아니라 한국의 독립과 동양평화를 위해서 독립전쟁의 일환으로 결행한 것이다”라고 진술하였다. 2월 9일 오전 9시 50분 제 3회 공판이 개정되었다. 여기서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의 죄악’ 15개조를 설명하였다. 그러나 재판장에 의하여 중지 당하였다. 2월 14일 재판에서 사형이 선고 되었고, 3월 26일 순국하였다.
    
▣ 서울 남산, 안중근 의사 기념관
  2004년 안중근의사숭모회와 광복회의 요청을 받아 안중근 의사기념관이 새로 건립되었다. 항일 독립 정신과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얼을 새겨볼 수 있는 역사 교육현장이다. 안중근의사기념관은 단지동맹을 한 12명의 열사를 기리기 위해 12개의 큐브 모양으로 디자인되었다. 겉으로 보면 열둘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하나의 건물이다. 열둘은 하나를 위하고 하나는 열둘을 위한다. 그 하나는 대한독립이었다. 그리하여서 열두동지는 손가락을 끊고 피를 찍어 '大韓獨立(대한독립)'쓰고 맹세했다.  

  이곳에는 안중근 의사가 뤼순감옥소에 갇힌 이후 옥중에서 쓴 유묵과 자서전 등 수십 점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유묵은 약 200여 점이 있을 것으로 짐작되나 40여 점만이 발견되었다. 의사의 필체에서 대장부 기운을 느낀다. 군자와 선비의 인품이 신언서판(身言書判)에 달렸다고 하는데, 안 의사의 휘호를 보면 바로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앙홀을 중심으로 3개의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 및 체험전시실이 구비되어 있다. 전시실에는 안의사 초상화와 생애와 독립운동 등 관련 역사와 사진ㆍ건국공로 훈장과 서한ㆍ공판 당시 신문 보도 내용ㆍ유명 인사 휘호 등이 전시되고 있으며, 학생들의 역사체험 공부를 위해 잘 구비되어 있다. 기념관 내부에는 사단법인 안중근 의사 숭모회 사무실이 있어 안중근 의사에 대한 각종 유물과 자료를 발굴 수집하고 매년 기념식과 학술 심포지엄, 애국순례, 서예 백일장 등의 행사를 개최한다. 기념관 밖에는 안의사의 동상과 유묵 글을 돌에 새겨 정원을 꾸미고 있다. 주변에는 서울시 교육연구정보원, 백범광장이 인접해 있고, 그 아래로 한양도성의 성곽이 복원되어 있다. 이 성곽길을 따라 내려오면 숭례문이 있다.

▣ 안중근 의사의 옥중 유묵
안중근의 유묵(遺墨)은 현재 실물이나 사진으로 50여점이 확인된다. 이중 국내 소재는 26점으로 모두 국가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한 개인의 작품으로 놓고 볼 때 국가보물로 가장 많이 지정되어 있고, 미술 시장에서 거래되는 작품가격으로도 가장 높다.
  안중근의 유묵은 모두 사형 선고일(1910. 2. 14)에서 순국(1910. 3. 26)까지 라는 점, 수신자가 모두 일본인이라는 점은 역사상 어떤 다른 사람의 경우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사례다. 특히 내용이 동양고전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현실고발이나 감계와 같이 자기 체험이나 자각으로 걸러낸 것이라는 점에서 안중근의 유서이자 또 다른 자서전인 《안응칠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옆의 ‘견리사의(見利思義) 견위수명(見危授命)’ - 이익을 보거든 의로움을 생각하고, 나라의 위기를 보거든 목숨을 바치라 - 유묵새김돌 사진은 안중근 의사기념관 앞에 전시되어 있는 《논어》명구의 안중근 유묵글이다. 
  안중근 의사로부터 유묵을 건네받은 사람은 모두 일본인이다. 이들은 여순 옥중 취조 검찰관, 대련세관 세무관, 뤼순 감옥 간수, 경관, 전의(典醫), 경시, 경호책임 헌병, 경수계장, 뤼순초등학교 교사, 일본 교토 정심사 사형수 교화승 및 여타 일본인들이다.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일본인 입장에서는 그들의 최고 지도자를 사살한 사람을 글씨를 받는다는 것이다. 또한 안의사의 입장에서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당시 이런 정황에 대해 그는 《안응칠 역사》에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동양평화론》을 저술하고 있을 그 때 법원과 감옥의 일반관리들이 내 손으로 쓴 글로써 필적(筆跡)을 기념하고자 비단과 종이 수백 장을 사 넣으며 청구하였다. 나는 부득이 자신의 필법이 능하지도 못하고, 또 남의 웃음거리가 될 것도 생각지도 못하고서 매일 몇 시간씩 글씨를 썼다.”
  그렇다면 안중근은 어떤 마음에서 무슨 까닭으로 이들에게 글을 써서 주었을까?
원수까지 반하지 않을 수 없었던 안중근 의사의 인품과 정신세계의 위대성을 읽을 수 있다. 여기서는 그의 유묵 중에서 《논어》의 글을 모두 모아서 그의 인생관과 세계관 등 그의 정신세계를 조망하며, 그로부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야 마땅한가라는 교훈을 얻고자 한다. 글씨는 그 사람의 인격이다. 그는 가히 군자 중의 군자이며 대인 중의 대인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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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거리]-“이 때(구한말 또는 일제강점기)의 나라면 어떻게 살았을까?”
 
▣ [토론하기]-“정의를 위하여 사람을 죽이는 것은 옳은 일인가?”

안중근 옥중유묵(견리사의) 임서
~ 이 족자를 교실에 걸어두고 설명한 다음 수업을 하니, 아이들이 더 감동적으로 받아주어서 감사했다.
~ 젊은 시절, 기회를 붙잡아 배워두길 참 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며 '이건 참 잘했구나'는 생각이 드는 것이 많아지도록 살아야 겠다.

생각만들기> 견리사의 - 이로움과 의로움

안중근 의사를 추모하며.... 대한제국의 역사를 걷는다. 
https://munchon.tistory.com/630 [황보근영의 문촌수기]

길 위의 인문학 5강, 목멱산 자락길에서 만난 안중근(산본고, 인문고전 통통! 강좌)
https://munchon.tistory.com/1141 [황보근영의 문촌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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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02. 공자의 삶과 <논어> 이해

논어와 놀기 2018. 6. 26. 19:15 Posted by 문촌수기

02. 공자의 삶과 논어의 가르침

02공자와 논어-군자고궁.hwp

인류의 스승, 공자의 삶을 그림으로 읽다.

  공자 (孔子 BC 552~BC 479)를 나타내는 가장 간단한 다섯 개의 키워드는 무엇일까? ‘춘추시대, 유학 또는 유교, 공구, 중니. 논어’이다. 풀이하면 중국 춘추시대의 사상가로서, 유교의 개조(開祖)이다. 이름은 구(丘)이며, 자(字)는 중니(仲尼)이다. 그의 사상이 집약된 책이 바로 《논어(論語)》이다. 공자(孔子)라고 할 때의 ‘자’는 존칭으로 스승이라는 뜻이다.

  공자는 노(魯)나라의 창평향(昌平鄕) 추읍(현재의 山東省)에서 하급무사 숙량흘(叔梁紇)과 그의 내연의 아내 안징재(顔徵在)와의 사이에 태어났다. 어머니 안징재는 공자를 낳을 당시 10대의 어린 소녀였다. 60세가 넘은 숙량흘은 안씨의 셋째 딸을 후처로 맞이한 것이다. 아버지는 매우 힘이 세었으며 제(齊)나라와의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그의 탄생에서부터 죽음까지 많은 일화를 남겼는데, 그의 삶을 표현한 그림으로 공자의 일생을 살펴본다.

1> 균천감성(鈞天感聖) : 공자가 태어날 때 방에서는 하늘의 노랫소리가 들여오고 공중에서는 하늘이 성자의 탄강을 축복하여 화락한 노래 소리를 보내노라는 말이 들여왔다.

2> 조두학례(俎豆學禮) 공자는 5, 6세 때 항상 제사놀이를 즐겼으며, 친구들에게 제사방법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3> 직사위리(職司委吏) : 20세에 처음으로 창고 회계를 담당하는 위리라는 벼슬을 하였다. 회계가 정확했다고 한다.

 

4> 문례노담(問禮老聃) : 공자 나이 34세 때 제자 남궁경숙과 함께 주나라의 노담에게 찾아가 예를 묻고 가르침을 청했다.

 

공자, 노자를 만나다(문례노담 일화) - “나는 새는 잘 난다는 것을 알고, 물고기는 헤엄을 잘 친다는 것을 알며, 짐승은 잘 달린다는 것을 안다. 달리는 짐승은 그물을 쳐서 잡을 수 있고 헤엄치는 물고기는 낚시를 드리워 낚을 수 있고, 나는 새는 화살을 쏘아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용이 어떻게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 위로 올라가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오늘 나는 노자를 만났는데, 마치 용과 같은 존재였다.”

5> 협곡회제(夾谷會齊) : 50세 때. 노와 제가 협곡에서 회담을 할 때 공자가 단으로 올라 왼편의 제경공을 질타하는 모습.

6> 광인해위(匡人解圍) : 56세 때. 위나라에서 진나라로 가는 길에 광 땅에서 포위되었다가 풀려났다.~재진절양(在陳絶糧)

7> 공자귀노(孔子歸魯):68세 때 노나라 대부 계강자가 공자를 초빙하여 노나라로 돌아와 제자 교육과 고전 정리에 전념하였다.

 

8> 치임별귀(治任別歸) : BC.479년 공자가 세상을 떠나자 제자들은 노성 북쪽에 있는 사수가에 장사지내고 정식으로 삼년간의 심상을 입었다. 자공만은 6년 동안이나 무덤을 떠나지 않았다.

 

논어, 삶ㆍ사람ㆍ사랑의 길을 가르치다.

어떤 이는 말한다. 논어논어가 아니라, ‘논인(論仁)’이라고. 이 말은 논어에서는 사람됨의 길을 가르치는데 그 중핵적인 가치와 최고의 덕목이 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디 인() 뿐이랴? ()도 예()도 신()도 지()도 하물며 학()과 군자(君子)도 많이 언급되고 강조되었으니 굳이 논인(論仁)이라고만 말할 수 없겠다. 차라리 논인(論人)’, 사람됨을 말하다라고 말하는 것이 옳겠다.

 

논어20, 이름과 약호

<學而第一> LY01 학이 <爲政第二> LY02 위정 <八佾第三> LY03 팔유

<里仁第四> LY04 이인 <公冶長第五> LY05 공야장 <雍也第六> LY06 옹야

<述而第七> LY07 술이 <泰伯第八> LY08 태백 <子罕第九> LY09 자한

<鄕黨第十> LY10 향당 <先進第十一>LY11 선진 <顔淵第十二>LY12 안연

<子路第十三>LY13 자로 <憲問第十四>LY14 헌문 <衛靈公第十五>LY15 위령공

<季氏第十六>LY16 계씨 <陽貨第十七> LY17 양화 <微子第十八> LY18 미자

<子張第十九> LY19 자장 <堯曰第二十> LY20 요왈

○ 《논어, 최고의 덕 인()을 가르치다.

()이 최고의 덕목이며 중핵의 가치가 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무엇보다 가장 많이 언급되는 덕목이다. 물론 글자 하나를 가지고 빈도가 높다고 해서 그 문장과 경전의 핵심이 그 글자라는 것은 아니다. 가령, 필자가 논어에서 인()과 예() 그리고 군자(君子) 등을 검색하여 출현빈도를 조사해보았다. ()109, ()24, ()75, ()118, ()38, ()65, 군자(君子)107회였다. ()는 인()보다 8회나 더 많이 출현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가 논어의 중핵적인 가치라고는 할 수 없다. 단순히 안다, 알았다의 지(知天命)모른다, 몰랐다의 부지(人不知而不慍)에서 쓰인 는 가치로서의 덕목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ㆍ예()ㆍ학()ㆍ군자(君子)’가 공자나 그의 제자들 입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고 언급되었던 가치들임은 부정할 수 없다.

둘째, 구문적으로 보아도 ()은 여러 덕목들 중 상위의 덕목이다. 적어도 중심이 되며 가장 포괄적인 덕목이다. 다음 글을 보면 사람다움에 이 으뜸이고 예악은 버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 사람 : 인은 사람다움이다(仁者人也)

2) 사랑 : 인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仁者愛人)

3) : 인은 일과 사람 관계에 대한 성실 충실이다. (誠實忠實)

○ 《논어, 군자(君子)를 가르치다.

공자는 천하를 주유하면서 많은 수난을 당한다. 그 수난 속에서도 그는 뜻을 굴하고 세상에 아첨하지 않았다. 수많은 수난 중, 그 절정은 소위 재진절양(在陳絶糧’[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공자가 초()나라 소왕(昭王)의 초빙을 받고 가는 중이었다. 초나라를 가려면 진()나라와 채()나라를 지나가야만 했다. 진나라와 채나라는 공자가 초나라에 입국하는 것을 막으려 했다. 공자가 초나라에 등용되어 강국이 되면 인접한 두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군사를 보내 공자 일행을 포위했다. 시간이 흐르자 식량이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제자들 중에 병에 걸린 환자가 속출했다. 그러나 공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태연한 모습으로 시를 읊고 거문고를 연주했다. ‘재진절양은 그 상황을 그린 작품이다. 제자들에 둘러싸인 공자가 땅바닥에 앉아 있다. 공자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평소와 다름없이 제자들에게 수업을 하고 있다. 공자가 시를 읊자 제자들이 진지한 자세로 듣는다. 그들을 포위한 사람들이 아니라면 그저 한가롭게 소풍 나온 사람들의 야유회 장면을 그린 것 같다. ‘재진절양은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운명을 향해 고개 숙이는 일이 없는 철학자의 평정심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런 공자를 제자라고 모두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위기에 처해서도 한가롭기만 한 스승을 보고 화가 난 자로(子路)가 공자에게 불평하였다.

군자도 곤궁해질 때가 있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군자는 곤궁함을 굳게 버티지만, 소인은 곤궁해지면 아무 짓이나 한다.”  (君子固窮, 小人窮斯濫矣, 군자고궁 소인궁사람의)

논어위평공 편에 나오는 얘기다.

이런 수난의 사건들은 공자가 69세에 고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14년 동안 계속됐다. 그러나 공자는 천하에 도가 행해지고 봉건적인 예악질서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자신의 신념을 결코 저버리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의 이상과 목적은 이상적인 봉건질서의 주창이었다. 모든 사람이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본분을 다하는 것이 이상적인 사회라 여겼다.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공자는 끊임없이 성군(聖君)을 찾아다녔고 정치적 출구를 모색했다. 공자의 이런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비난했다. 이것은 공자가 유랑 중에 견뎌야만 했던 또 다른 환란이었다.

 

 

  학생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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