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2 인자와 지자

논어와 놀기 2020. 4. 20. 16:29 Posted by 문촌수기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라고 시인은 노래했다. 비바람이 두렵다면 꽃은 피어 날 수도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진가가 드러난다. 그래서 젊을 때에의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 했다.

공자도 많은 수난을 겪으면서 천하를 떠돌았다. 그래도 운명에 굴하지 않고 세상에 고개 숙이지 않았다. 그런 스승을 따라 다녔던 자로(子路)가 하루는 공자에게 불평하였다. “군자도 곤궁해질 때가 있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군자는 곤궁함을 굳게 버티지만, 소인은 곤궁해지면 아무 짓이나 한다.” (君子固窮, 小人窮斯濫矣)《논어》위평공 편에 나오는 얘기다.

 

04‧02 子曰: “不仁者不可以久處約, 不可以長處樂. 仁者安仁, 知者利仁.” (불인자불가이구처약, 불가이장처락, 인자안인, 지자리인)
~"인하지 못한 자는 오랫동안 곤궁한데 처할 수 없으며 장구하게 즐거움에 처할 수 없으니 仁者는 仁을 편안히 여기고,
智者는 仁을 이롭게 여긴다."


The Master said, "Those who are without virtue cannot abide long either in a condition of poverty and hardship, or in a condition of enjoyment.
The virtuous rest in virtue; the wise desire virtue."

인자안인 지자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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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연 안중근!
안의사가 조국을 위하여 정의를 구하고 仁을 이루어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 속에서 붓을 들어 전한 글씨가 이것이다. '불인자불가이구처약'
~"인하지 못한 자는 오랫동안 곤궁한데 처할 수 없다."
안의사야말로 眞군자요 대장부이다.

불인자불가이구처약, 안중근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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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리인편 01 어진 마을이 아름답다.

논어와 놀기 2020. 4. 20. 16:28 Posted by 문촌수기

경기도 용인시에 처인구가 있다. 바로 <논어>의 구절 '處仁'인가해서 찾아보니 과연 그랬다. 그 마을이 새삼 친하게 다가온다. 마을 이름이 어찌 공자님의 말씀으로 되었는지 그 유래는 모르나 '사랑에 거처한다'는 이름 만으로도 끌린다. 사랑이 머무른 곳이니 아름다운 마을이겠다. 어진 마을을 골라 사는 것도 지혜로운 일이다.

04‧01 子曰: “里仁爲美. 擇不處仁, 焉得知?” (자왈 리인위미,택불처인,언득지)
"마을 인심이 어질고 후하니 아름답다. 가려서 仁厚한 마을에 살지 않는다면 어찌 지혜롭다고 하겠는가? "

The Master said, "It is virtuous manners which constitute the excellence of a neighborhood. If a man in selecting a residence do not fix on one where such prevail, how can he be wise?"

리인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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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6 사람이 너그러워야

논어와 놀기 2020. 4. 20. 16:23 Posted by 문촌수기

군자는 어떤 사람일까? 禮儀를 차린다는 것은 어떤 행위일까? 모름지기 시중(時中)해야한다. 때에 적합한 행동과 자리에 맞는 처신을 해야한다. 잔칫집에서 기뻐하고 상가집에서는 슬퍼한다. 희노애구애오욕 칠정에 선악이 따로 없다. 나쁜 행실에는 성내고 미워하며 웃어른 앞에서는 흐트러질까 두려워하며 마땅히 지녀야 할 것을 욕심내는 것은 선하다.
때에 따르는 것은 人爲가 아니라, 自然 아니던가? 본래 자연으로 돌아가자.

03‧26 子曰: “居上不寬, 爲禮不敬, 臨喪不哀, 吾何以觀之哉?” (거상불관, 위례불경, 임상불애, 오하이관지재)
~"윗자리에 있으면서 너그럽지 않으며, 禮를 행함에 공경함이 없으며, 초상에 임하여 슬퍼하지 않는다면 내가 무엇으로 그를 관찰하겠는가?"
The Master said, "High station filled without indulgent generosity; ceremonies performed without reverence; mourning conducted
without sorrow;-wherewith should I contemplate such w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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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5 예쁘고도 착한 사람

논어와 놀기 2020. 4. 20. 16:21 Posted by 문촌수기

표리부동한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외모가 아무리 예뻐도 마음씨가 곱지 못하면 미운 털이 박히고 꼴값이 된다. 사람의 얼굴은 얼이 새겨진 꼴이다. 고운 얼이 고운 꼴을 만들고 나쁜 생각들이 밉상 얼굴을 만든다.
고운 마음이 예쁜 사람을 만든다.

03‧25 子謂韶, “盡美矣, 又盡善也.” (자위소, 진미의, 우진선야.)
~공자께서 소악을 평하시되, "극진히 아름답고, 또한 극진히 좋구나"하셨다.

The Master said of the Shao that it was perfectly beautiful and also perfectly good.

진미우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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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4 공자, 목탁이 되다.

논어와 놀기 2020. 4. 20. 16:19 Posted by 문촌수기

세상이 공자를 몰라 벼슬을 오래 못하고 유랑하였다. 공자는 말하였다.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못하더라도 화내지 않으니 군자답지 않은가?" 제자들에게는 이렇게 가르치셨다.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근심하지 말고, 자기가 남을 알지 못하는 것을 근심하라.” 그리고 "온고이지신하면 남의 스승이 될 만하다."고 하시며 스승의 자격을 전하였다.
공자는 목탁을 들고 흔들었다. 그 소리가 천하에 울렸다.

03‧24 出曰: “二三子何患於喪乎? 天下之無道也久矣, 天將以夫子爲木鐸.” (천장이부자위목탁)
~ (衛나라 儀읍의 국경 관리가 공자를 뵙고) 나와서 말하였다. "그대들은 어찌 공자께서 벼슬을 잃음을 걱정하느냐? 천하에 도가 없어진지 오래되었다. 하늘이 장차 夫子(공자)를 목탁으로 삼으실 것이다."
Heaven is going to use your master as a bell with its wooden tongue."

 * 목탁~스승이 政敎를 베풀 때에 나무 방울을 흔들어 소리를 내며 여러 사람들을 가르침에서 유래하여, 스승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혹자는 목탁은 '길에 순행하는 것'이라서, 하늘이 공자로 하여금 벼슬을 잃고 사방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가르침을 행하기를 마치 목탁이 길을 따르는 것과 같이 할 것임을 말한 것'이라 하였다.

더하기+

목탁~쇠로 입을 만들고 나무로 혀를 만들어 흔들면 소리가 나는 방울
목탁을 든 공자를 상상하며...
▲ 작자미상, ‘의봉앙성’ 1742년. 종이에 연한색. 30.2×51cm. 국립중앙박물관

 ‘의봉앙성(儀封仰聖·봉지를 담당한 관리가 공자를 성인으로 추앙하다)’은 바로 이 ‘목탁’의 유래를 담은 작품이다. 내용은 이렇다. 공자가 위나라에 이르렀을 때 국가에서 내린 땅을 관리하는 관원이 와서 공자를 뵙기를 청했다. 그는 ‘군자께서 우리 마을에 오셨을 때 제가 일찍이 뵙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라는 말로 방문 이유를 밝혔다. 그는 제자들의 안내로 공자를 만나 천하의 올바른 도리에 대해 배움을 얻었다. 여러 빛깔의 군자를 만나 본 경험이 많았던 그는 공자를 한 번 만나는 것으로 그가 어떤 인물인지 단박에 알아봤다. 공자를 만나고 나온 관원은 공자의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들은 선생님께서 세상의 지위를 잃어버리고 떠돌아다니는 것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천하에 올바른 도가 사라진 지 이미 오래되었으므로 하늘이 선생님을 세상의 목탁으로 삼아 참된 도를 전파하고 세상을 교화시키도록 한 것입니다.”
‘논어’ ‘팔일’에 나오는 내용이다. 목탁 이야기를 그린 ‘의봉앙성’은 두 장면으로 분리된다. 오른쪽은 공자가 제자들을 거느리고 액자 같은 병풍 앞에 서 있는 모습이다. 왼쪽은 공자를 만나고 나온 관원이 공자의 제자들에게 덕담을 하는 모습이다. 공자가 세상의 목탁이라는 내용을 강조하는 덕담일 것이다. 어쩌면 그는 자기가 사는 동네에 찾아온 손님에게 예의상 덕담 한 마디를 건넸을 수도 있다. “당신 스승은 괜찮은 분이시군요.” 그러나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단순한 인사치레를 넘어 그들의 이상을 계속 밀고 나갈 수 있는 에너지를 충전받은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들은 몇 년째 불러주는 이 없는 막막한 유랑길을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신세였기 때문이다.

 http://m.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C08&nNewsNumb=002288100026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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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1 지나간 일을 굳이 탓하지 않는다

논어와 놀기 2020. 4. 20. 16:17 Posted by 문촌수기

"그대여 아무 걱정 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 합시다
그대 아픈 기억들 모두 그대여
그대 가슴에 깊이 묻어 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떠난 이에게 노래 하세요
후회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한 때 TV 드라마에서 이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훔친 적이 많았다. 같이 보는 아내도 훌쩍인다. 드라마도 세간에 회자되고, 이 노래가 다시 인기를 얻었다. 나이가 들어감인지 이 노래 가사를 아직 다 외우지 못한다. 그래도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이 구절은 소리 높여 부를 수 있다. 그렇다. 지나간 것은 지나갔다. 붙잡는다 해도 돌이킬 수 없다. 회한에 잡혀 있지말고 의미를 찾고 오늘을 살아가자.

03‧21 哀公 問社於宰我. 宰我對曰: “夏后氏以松, 殷人以柏, 周人以栗, 曰, 使民戰栗.” (애공 문사어재아. 재아대왈: "하후씨이송, 은인이백, 주인이율, 왈, 사민전율)
子聞之, 曰: “成事不說, 遂事不諫, 旣往不咎.”(성사불설, 수사불간, 기왕불구)
~ (재아는 하후ᆞ은ᆞ주 삼대가 社의 神主가 같지 않음을 말하였다.)
공자께서 이를 들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재아의 잘못된 대답을 바로 잡을 수 없으므로) "내 이미 끝난 일이라 말하지 않으며, 다 된 일이라 간하지(재논하지) 않으며, 이미 지나간 일이라 탓하지 않는다."

When the Master heard it, he said, "Things that are done, it is needless to speak about; things that have had their course, it is needless to remonstrate about; things that are past, it is needless to blame."

기왕불구 성사불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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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0 즐거움에 젖어도 음란하지 않다.

논어와 놀기 2020. 4. 20. 16:15 Posted by 문촌수기

우계 성혼과 율곡 이이는 파주 임진강변의 같은 고을에서 살은 평생지기의 친구였다.
성인이 되어 친구 송강 정철의 생일잔치에 초대되었는데, 가서보니 기생들이 함께 있었다. 고지식한 성혼은 기생을 못마땅히 여기었지만, 율곡은 웃으며 "물들여도 검어지지 않으니 이것도 하나의 도리라네" 하며 함께 잔치를 즐겼다. 평생의 반려된 친구로 지내다가 율곡이 먼저 세상을 떠났고, 성혼은 그보다 14년을 더 살면서 율곡을 잊지 못해 그의 기일(奇日)이 되면 늘 소복을 입었으며, 율곡의 인품과 우정을 그리워하며 슬픔에 잠기곤 하였다.

 

03‧20 子曰: “關雎, 樂而不淫, 哀而不傷.”
(관저, 낙이불음, 애이불상)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시경의 관저는, 즐거움에 젖어도 음란하지 말고, 슬프면서도 너무 빠져서 和를 해치지 않는다."


The Master said, "The Kwan Tsu is expressive of enjoyment without being licentious, and of grief without being hurtfully excessive."

낙이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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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과 우계의 우정일화.
한국사상현장순례ㅡ이이와 성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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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5 매사 묻는 것이 예의다.

논어와 놀기 2020. 4. 20. 16:13 Posted by 문촌수기

生은 문제의 연속이다. 해결하고 나면 또 다른 문제가 등장한다. 애써 피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게 못 본 채 지나칠 수도 없는 문제가 수두룩하다. 이 수많은 문제들을 어떻게 풀이하는가에 따라 幸ᆞ不幸이 가린다. 삶은 문제 해결의 과정이며, 함수관계이다(Life is the process of solving problems. /L=f(P->S)). 문제 유무가 문제가 아니고, 문제 해결이 문제이다.
문제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견디고 이겨 나가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보다 더 나은 삶을 꿈꾸면서.

03‧15 子入太廟, 每事問. 或曰: “孰謂鄹人之子, 知禮乎? 入太廟, 每事問.” 子聞之, 曰: “是禮也.”(자입태묘, 매사문. 혹왈: 숙의추인지자, 지례호? 입태묘 매사문. 자문지, 왈 시례야)
~ 공자께서 태묘에 들어가 매사를 물으시니, (구경하던) 어떤 이가 말하기를 "누가 추(鄹) 땅의 사람 아들(공자)을 일러 禮를 안다고 했는가?" 공자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말씀하시길 "(매사 묻는) 이것이 바로 禮이다." 하셨다.
The Master, when he entered the grand temple, asked about everything. Some one said, "Who say that the son of the man of Tsau knows the rules of propriety! He has entered the grand temple and asks about everything." The Master heard the remark, and said, "This is a rule of propriety."

매사문, 시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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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묘란 노나라 주공의 사당이다. 이곳에서 공자는 집사로서 제사를 돕는 벼슬을 하고 있었다. 예를 많이 안다고 알려졌는데 매사 윗 분께 여쭈며 집례를 하고 있기에, 누군가가 비아냥거렸다. 공자가 "이것이 禮이다"라고 한 것은 공경[敬]과 삼감[謹]이 지극한 것이 禮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번 여쭈며 진행한 것이다.

문화 발전의 원동력은 질문일 것이다. 인류는 삶 속에서 늘상 호기심과 불만을 가지면서 물음표를 던지고 그 꼬리를 잡았다. 그래서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어 냈다.

호국보훈의 달이다. 한반도와 인류의 평화를 기원하며, '바람 속에 해답이 있다'는 밥딜런의 9개 질문(blowin in the wind)으로 유월을 열어본다.
Q1. 사람은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야 사람이 될 수 있을까?
Q2. 흰비둘기는 얼마나 많은 바다를 날아야 모래섬에 잠들 수 있을까?
Q3. 얼마나 많이 포탄을 날려야만 영원히 사용을 금지할까?

Q8. 얼마나 많은 귀가 있어야 사람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Q9.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야 그가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될까?
~ 산책을 하며 블루스 하모니카를 불렀다.

blowin' in the wind - 하모니카 연주

올해는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국전쟁이 배경이 되었다는 노래 속에도 꼬리를 무는 질문이 있다.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모든 들꽃들 다 어디로 갔을까?"~소녀들이 따갔대요.
"모든 소녀들 다 어디로 갔을까?"~총각들이 데려 갔구요.
"모든 총각들 다 어디로 갔을까?"~군인이 되었다네요.
"모든 병사들 다 어디로 갔을까?"~묘지에 묻혔대요.
(묘지를 덮고 있는 그 모든 꽃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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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3 어디 빌 곳도 없다.

논어와 놀기 2020. 4. 20. 16:12 Posted by 문촌수기

한때 'U시티'라는 용어가 유행한 적이 있다. IT기술을 통해 유비쿼터스 정보 서비스를 제공하는 도시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도시의 각 시설에 센서를 달아 놓고 지능형 교통시스템, 지능형 CCTV모니터링, 원격민원 시스템 등 다양한 IT기반 서비스를 시민들에게 제공하고자 했다.

'유비쿼터스(Ubiquitous)'는 'omni presence, 편재(遍在)' 뜻으로 '(神은) 언제든 어디에서든 모든 곳에 계신다'는 의미를 가진다. 언제나 어디에나 CCTV가 도시의 안전을 지키고 있다면 시민 대다수는 찬성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쳐다보고 녹화한다면 과연 찬성할 수 있을까? 우리는 본질적으로 인류 문명에 다시 물어봐야 한다.
神의 속성을 IT가 기능한다고 해서 인류의 삶이 과연 향상될까? 맹목적 인류는 결국 기술 지배(technocracy)에 종속되고 인간 소외 현상에 빠지고 말것이다. 그러므로 기술지배 세상이 아니라, 敬天하고 愛人하는 道義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
하느님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계시지 않은 곳이 없다. 다만 세상 모든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공기같아 보이지 않고, 너무 낮은 자리에 계시기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 하느님을 두려워하며 사랑받으며 살아가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하늘이 쳐 놓은 그물은 워낙이 넓어서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느 것 하나도 놓치는 것이 없다(천망회회 소이불루, 天網恢恢 疏而不漏)" 노자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참으로 신독하고 경외해야 할 것이다.

0313...子曰: “.. 獲罪於天, 無所禱也.”
(획죄어천 무소도야)
~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어디 빌 곳도 없다."
The Master said, "Not so. He who offends against Heaven has none to whom he can pr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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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지은 죄는 사람이 지은 법을 어긴 것이기에, 법에 따라 벌을 받으면 용서받는다. 하늘에 지은 죄는 무엇일까?
사람에게 지은 죄를 감추어서 세상 사람들도 모르게 한 죄, 어디에나 계신 하느님을 부정하고 자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은 죄, 하느님과 관계를 단절한 죄 아닐까?
어떻게 용서 받을 수 있을까? 양심에 따라 고해하고 용서를 구하며 하느님과 관계를 복원하는 일이어야 한다. 나는 하느님 안에 있고, 하느님은 내 안에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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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2 살아 계신 듯이 모셔라.

논어와 놀기 2020. 4. 20. 16:11 Posted by 문촌수기

사는 동네에 세계문화유산 융건릉이 있어 참 좋다. 아내와 자주 들린다. '이보다 더 좋은 공원이 어디있을까?' 여긴다. 이 곳에 들리면 푸른 숲이 속인을 씻기고 편안하게 맞이한다. 갈 적마다 나는 선조들에게 고마워 한다. 나는 정조가 되어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찾는다. 그 마음을 지니고 들어가면 더욱 감개무량하다.
먼 발치에서 찾아 오는 아들을 반겨 볼 수 있게 정자각을 왼쪽으로 비켜 배치하였으며, 보다 가깝게 내려 보고자 사초지와 능침영역을 낮췄다. 물론 뒤주에 갇혀 어둡게 돌아가신 아버지를 불쌍히 여겨 환하게 세상을 내려 보시라고 능침을 조성한 아들의 배려였을 것이다.
나는 왕릉에 갈 적마다 신교(神橋)를 찾는다.
정자각 바로 그늘 진 곳에 있다보니 남들은 거의 찾지 않고 지나치더라도 눈 여겨 보지 않는다. 다른 어떤 조성보다 이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아들(후손)이 제사를 드리려 올 적에 능침에 계셨던 아버지(선조)는 神의 영역에서 내려와 神橋를 건너셔서 정자각 제단의 신위에 앉으신다. 그 순간부터 돌아가신 아바마마와 살아있는 아들의 만남이 시작된다. 신교는 바로 신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을 이어주는 다리이며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이다. 그만치 실감나는 조성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 융릉 앞의 상설 배치 안내에도 그런 중요한 神橋 배치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역사를 배우든 제사를 지내든 살아서 만나는 것과 같이 실감나야한다.

03‧12 祭如在, 祭神如神在. 子曰: “吾不與祭, 如不祭.” (제여재 제신여신재)

~(先祖) 제사를 지낼 적에는 (先祖께서) 계신 듯이 하셨으며, 신을 제사지낼 적에는 신이 계신 듯이 하셨다. 공자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제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제사를 지내지 않은 것과 같다."

He sacrificed to the dead, as if they were present. He sacrificed to the spirits, as if the spirits were present.

제여재 제신여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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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리의 의미
동서를 막론하고 다리는 영역을 나누는 중요한 경계가 분명하다. 금천교는 속계ᆞ인간계에서 신과 인간이 만나는 제향공간으로 진입하는 경계로 속진을 씻어내는 의미를 지닌다. 궁궐 입구에서도 금천교가 있어 비속계와 존엄계를 나눈다.
신교(神橋)는 능침영역과 제향영역을 나누는 경계이자 연결고리가 된다.

융릉의 신교
융릉, 정자각 오른쪽으로 능이 훤하게 열려 보인다.
융릉(사도세자) 상설도
상설도와 해설, 어디에도 신교는 없었다.
융릉 안내도에는 정자각 바로 뒤에 신교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상설도 해설에서는 신교에 대한 언급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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